과거제로 보는 정치인이 초심을 잃는 이유

『책문』세부 내용 소개

by 샤를마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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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내용 소개

정치에는 두 가지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첫째, 새 술도 맛이 변한다는 점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을 익히 들어봤을 겁니다. 세대 교체, 혁신을 상징하는 문구이죠. 정계에서는 종종 젊은 정치인 혹은 국민이 큰 기대를 거는 '때묻지 않은 거물(교수, 기업인 등)'이 돌풍처럼 뜹니다. 그런데 그 돌풍은 이내 누그러지고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계의 보수적인 분위기, 특권의식 등이 새 술마저 맛을 변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정의와 권력은 정비례 관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론은 사회적으로 옳지 않고, 국민의 여론이 사회적으로 옳은 상황에서 갈등하는 정치인을 생각해봅시다. 전자를 택하면, 국민에게 비난을 받지만 정계에서의 입지는 탄탄해질 겁니다. 그런데 후자를 택하면, 국민에게 찬사를 받지만 정계에서의 입지는 좁아질 겁니다. 정치인은 사회 정의를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행해야 하는데, 정치인끼리의 이해관계로 권력의 서열을 만들며 생긴 모순입니다. 이 두 가지 아이러니는 인간 사회 어디서든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정치에서 유독 두드러집니다.

과거에 합격한 지식인도 정치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과거에 합격한 지식인들도 정계에 입문했을 당시에는 '새 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정계에 깊이 몸담으면서 초심이 변해버린 사람도 있었고, 초심을 지키려다가 꺾여버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과거에서는 모범 답안을 훌륭하게 썼지만, 막상 현실은 모범 답안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죠. 정치의 그늘을 읽게 하는 것, 『책문』의 숨은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며 정치의 그늘을 읽어봅시다.

AKR20231218058900053_01_i_P4.jpg 1447년(세종 29년) 문과중시에 제출된 정종소(鄭從韶)의 답안지로, 현존하는 최고(最古) 과거 시험 자료이다. 같은 시험에 성삼문과 신숙주도 응시하였다.
세종의 책문: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성삼문의 대책(답변): 군자가 등용되면 나라가 잘 다스려져서 편안해지고 소인이 등용되면 위태로워져서 망합니다. 사람을 쓰는 것은 국가의 큰 권한이니 쓰고 버리는 기틀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숙주의 대책: 적합한 인재가 있는데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그 말을 따르지 않거나, 그 말을 따르더라도 그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비롯 법을 하루에 백 번 바꾼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 김태완, 『책문』, 현자의마을, 2015, p.21(각 책문에 들어가기 전 핵심 구절을 앞에 정리해두는데, 본문에서는 pp.24-26, 32, 48에서 찾을 수 있다.)

세종의 책문은 박식함 그 자체입니다. 여기에서는 글이 길어질까봐 책문의 전체 내용을 싣지 않았습니다만,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을 묻기 위해 각종 역사적 사례(한 문제, 송 태조, 고려)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므로 응시자는 답안을 쓸 때 세종이 역사적 사례를 언급한 '의도'까지 읽고 그에 대한 해석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채택된 답안은 대책이라고 부르는데, 책에서 소개한 대책은 성삼문과 신숙주의 답변이었습니다(다른 한 명으로는 이석형이 있었습니다.). 두 인물은 박식한 국왕의 눈에 든 박식한 인재였습니다.

촉망받는 인재인 두 인물의 운명은 달라졌습니다. 성삼문은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하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세조 대에 목숨을 잃었고, 신숙주는 '변절됐다'는 세간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오랜 정치 인생을 이어갔습니다. 어릴 적의 필자도 한국사를 공부했을 때, '성삼문 = 충신, 신숙주 = 간신'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책문』으로 두 인물을 다시 만났을 때, '신숙주의 변절에 대한 비난이 과도하지 않았나?'라며 생각을 되짚게 되었습니다. '역사 이래 변절자가 어디 신숙주뿐이었을까?'라는 저자의 말(책의 p.62)이 뇌리를 스치더군요. 필자도 학창 시절 때와 지금의 사상이 많이 다릅니다. 앞으로도 달라질 것입니다. 한 개인조차도 생각의 변화, 전향을 겪는데 국정을 맡는 사람도 변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의외로 강직한 줄만 알았던 성삼문도 잔꾀를 부렸습니다. 그 사실이 재밌으면서도 '역시 인간은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습니다. 1447년 문과중시에서 가장 뛰어난 답안을 제출한 사람이 8명이나 나와버리는 바람에 '동점자 가르기'를 위한 재시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재시험은 시를 짓는 능력으로 판단했는데, 성삼문은 '지적을 했던' 이석형의 글귀를 조금만 바꾸고 시를 내 장원에 급제했습니다. 요즘같으면 표절 행위가 되어서 법적 공방까지 벌일 사안인데, 두 인물은 서로 웃어넘겼습니다(책의 pp.74-76 참고). 성삼문이 잔꾀를 부린 이 일화는 신숙주에 대한 비난이 정말 과도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 지점이 되었습니다.

중종의 책문: 오늘과 같은 시대에 옛날의 이상 정치를 이룩하고자 한다면, 먼저 무엇에 힘써야 하겠는가?

조광조의 대책: 근본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도의 실현을 정치의 목표로 삼고 마음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아 성실하게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도는 뿌리를 하늘에 두되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통해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의 방도가 되는 것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모든 일이 참된 마음에서 나와야만 행정이 실효를 거두고, 기강이 떳떳하게 서며, 법도가 법조문에만 치우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 위의 책, pp.150, 156-158.

사회의 고질병을 해결하기 어려우면 '강력한 개혁'이라는 극약 처방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조광조가 그러한 인물이었습니다. 조광조는 중종 10년인 1515년에 시행된 알성시(謁聖試, 국왕이 성균관의 문묘에 참배한 것을 기념하여 시행된 특별 시험, 책의 p.148)에서 급제하여 정계로 진출했습니다. 이후 그는 중종의 신임을 받으며 도학정치로 대표되는 강력한 개혁을 주도했으나, 기묘사화가 일어나며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순간에 몰락해버린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광조를 실각시킨 인물 또한 중종이었습니다.

인간은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 본능은 더 두드러집니다. 정계는 기득권으로 대표되는 곳입니다. 따라서 개혁은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개혁이 강할수록, 반발 또한 강해집니다. 중종도 개혁을 원해서 조광조를 비롯한 젊은 인재를 등용한 것인데, 예상한 것보다 개혁의 강도가 강했기에 불편을 느껴 숙청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로마에서는 포에니 전쟁 이후 자영농이 토지를 잃고, 귀족은 대지주를 소유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자, 호민관으로 선출된 그라쿠스 형제가 강력한 개혁에 나섰습니다. 개혁의 골자는 곡물을 싼값에 판매(곡물법)하고 토지를 분배하는 것(농지법)이었는데 하나같이 기득권의 몰매를 맞기 좋았습니다. 결국 그라쿠스 형제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개혁은 실패했습니다. 이처럼 새 술이 묵은 술의 맛까지 바꾸려고 하는 개혁은 성공보다는 좌절될 확률이 높습니다. 묵은 술은 묵은 맛을 유지하려는 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광해군의 책문: 지금 당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임숙영의 대책: 지금 전하께서는 나라의 진짜 큰 우환과 조정의 병폐에 대해서는 문제를 내지 않으셨으니 신은 전하의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전하께서 마땅히 먼저 근심해야 할 것이란 중궁의 기강과 법도가 엄하지 않은 것, 언로가 열리지 않은 것, 공평하고 바른 도리가 행해지지 않은 것, 국력이 쇠퇴한 것이라고 신은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전하께서는 당연히 이 문제들을 먼저 언급했어야 한다고 신은 생각합니다. …(중략)… 기어코 해야 할 말을 다한 까닭은 장차 나라가 망할 것이 가슴 아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나라를 이롭게 한다면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한 것입니다.

- 위의 책, pp.418, 423, 437.

여러분이 광해군의 입장이 되어 임숙영의 대책을 본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임숙영의 대책은 독설이 섞인 직언입니다. 통치자는 직언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된다지만 쉽지 않습니다. 당장 어머니의 잔소리만 들어도 기분 나빠하는 게 인간입니다. 기분 좋은 말을 듣고 싶어하죠. 실제로 광해군은 임숙영의 대책을 읽고 크게 분노하여 '합격자 이름을 지워버리는' 삭과를 명했습니다. 신하들의 만류로 삭과는 취소됐지만, 책문의 요지를 벗어난 대책은 채택하지 말라는 '뒤끝'을 보였습니다(책의 pp.439-440).

본래 임숙영의 대책은 장원에 급제될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 의견이 있어 병과(11~33등)로 격하됩니다. 즉, 최상위권의 답안이 아닌 상위권의 답안, 여러 합격자의 답안 중 하나에 불과했던 건데, 광해군은 그마저도 거슬려서 삭과를 단행했던 것입니다. 한 답안에 대해 누구는 장원에 올려야겠다, 누구는 삭과를 해야겠다와 같은 상반된 반응을 보인 것은 관점의 차이에 따른 결과입니다. '국왕에 대해 서슴없이 비난하는 글'을 국왕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날카로운 글'이라며 예찬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인 국왕이 본다면 얼굴부터 붉히게 될 겁니다. 인간의 솔직한 면모는 '정직, 신뢰'의 이미지를 형성하지만, 솔직함이 '직언'이 되어 높은 분께 향한다면 도리어 역풍을 맞는 아이러니가 됩니다. 그 아이러니가 임숙영의 대책에 대한 광해군의 반응에서 확실히 드러납니다.

과거와 관련된 '마냥 웃고 보지 못할' 비화들을 살펴봤습니다. 과거는 명실상부 지식인의 등용문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등용문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간절해집니다. 그런데 그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면 초심을 잃기 마련입니다. 초심을 잃는 요인은 두 가지로 정의 가능합니다. 하나는, 고생을 해서 얻은 결과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심리의 발현,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에서 실망감으로의 변화입니다. 과거에서 합격한 사람들은 당대에 가장 뛰어난 지식인 중의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특권의식에 젖거나, 원하는 뜻을 펼치지 못한다면 '등용문에 들어가기 전의 초심'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신인도 기득권으로 변질됩니다. 신인이 기득권이 되고, 그 기득권을 쇄신하기 위해 다시 신인을 등용하는 '뫼비우스의 띠'가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면에서 인류 사회는 부조리하고, 그렇기에 나 자신을 의식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힙니다(책의 p.488). 이 말은 기득권의 부조리함에 대한 자각으로도, 내가 속한(부여받은) 사회적 지위의 근거를 찾는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지금도 새 술이 신선한 맛을 유지하고, 정의가 가장 큰 권력으로 기능하는 세상은 아닙니다. 인간 사회와 관련한 풀리지 않는 고민을 『책문』을 통해 사유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 글도 필자 나름대로 그것을 고민하고 분석한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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