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입사도 어렵지만 퇴사도 어렵다

by 무명

이직하려고 지원서를 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실 수 있나요?"

"아.. 네."


'YES 무새'인 나는 늘 그랬듯 알았다고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그만둔다 말하고, 사무실 들어가 노트북 반납하고, 선배들과 작별인사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닌데... 시간이 촉박할 텐데... 뒤늦게 걱정이 몰려왔다. 사실은 모두 핑계다. 퇴사 절차는 반나절이면 끝난다. 인사는 차차 하면 된다. 그보다는 밤낮없이 일하느라 지친 몸을 달래고 싶었다. 이 기회에 2주 정도는 집에서 푹 쉬자고 내 몸이 간절하게 속삭였다.


이직자 입장에서 이직할 회사에 '시간을 더 달라'라고 말하긴 쉽지 않다. 여기저기서 제발 와달라고 요청을 받는 일부 능력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직이 간절한 '을'이기 때문이다. 난 이직이 간절하지 않았다. 을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고 '갑'도 아니었다. 갑과 을 사이 어디쯤일까. 그렇다면 할 말은 해야지.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하고 전화 앱을 켰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엄마가 편찮으시다고 2주만 시간을 달라고 할까. 뻔한 레퍼토리다. 지금 회사에서도 쉬고 싶을 때 많이 써먹었는데 선배나 부장이나 모두 거짓말인지 알면서도 넘어간 눈치였다. 솔직하게 말해볼까. 사회생활에서 솔직함은 무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진즉에 깨달았다. 고민 끝에 결심했다.


쉬는 건 죽어서 하자... 바로 사직서를 내기로 했다.


"드릴 말이 있습니다."

내 전화를 받은 선배는 "그리로 갈게." 두 마디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선배가 출입하는 기관 기자실에서 내가 있는 기자실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선배와 광화문 인근 카페로 갔다. 커피만 마시던 선배는 넌지시 어느 회사로 가는 건지 물었다. 말해주지 않았는데 이미 내가 이직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안함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복합적인 감정이 겹쳐 대답하지 못했다.


"꼭 가야 해?"

선배가 다시 물었다. 지금 잘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같이 더 해보면 어떠냐고 했다. 순간 고민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퇴근 이후에 따로 시간을 할애해 내가 쓴 기사를 봐주던 선배였다. 당시는 다음 날 쓸 기사 아이템을 찾느라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던 때인데 선배랑 만나는 날만큼은 마음이 편했다. 개인교습 이후에 내일 발제할 기사 윤곽을 잡아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내게 전수해 준 선배는 개인교습이 끝나면 술까지 사줬다. 상당히 많이 마셨지만 늘 1차만 했다. 한날은 술자리에서 내게 "지금까지 많은 후배들을 퇴근 이후에 가르쳐 봤는데 너처럼 끝까지 붙어 있는 놈은 처음"이라고 했다. 대부분 한 두 달이면 나가떨어졌다고 했다. 난 1년째였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습니다."

내가 왜 이직하려고 하는지 설명하자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날 잡지 않았다. (이직한 이유에 대해선 나중에 밝힐 생각이다.) 선배는 부장에게 미리 언질을 해둘 테니 말을 잘해보라고 했다. 시간을 두고 부장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퇴사하려고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다. 선배에게 부장이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선배는 내일 말해보라고 했다.


다음 날. 발제를 하고 부장에게 전화했다. 역시나 받지 않았다. 사표를 제출하러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전화가 왔다.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출입처 1층에 있던 카페에서 만났다. 부장은 왜 퇴사하려고 하냐고 물었다. 선배에게 말했던 진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몸이 좋지 않아서 쉬려고 한다고 둘러댔다. 부장은 다 그런 시기를 겪는다면서 한 열흘 쉬었다 오라고 했다.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떴다.


당장 다음 주부터 이직한 회사로 출근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부장에게 내일 회사로 들어가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또 답이 없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회사로 갔다. 기자들은 보통 출입처로 출근하기 때문에 당직이 아니면 회사에 들어갈 일이 잘 없다. 국장단과 부장들은 내근이다. 자리에 있어야 할 부장이 없다. 편집국장에게 인사하자 건물 밖 흡연장으로 날 데리고 갔다. 국장은 퇴사하려는 이유를 물었고 난 또 둘러댔다. 국장은 좀 쉬었다가 돌아와도 된다고 했다. 나는 그냥 쉬고 싶다고 했다. 국장은 아쉽지만 의견을 존중하겠다면서 내일 사직서 작성해서 들고 오라고 했다.


이날 퇴근까지도 부장은 연락이 없었다. 답답했다. 내겐 첫 회사, 첫 부장이었다. 마음껏 취재할 수 있게 시간을 두고 지켜봐주던 사람이다. 결과물은 졸작이었는데도 잘했다고 다음에 더 잘해보라고 응원해 주던 사람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했다. 그날 저녁 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나에게 배신자라고 했다. 중간중간 욕설도 섞였다. 너무하다 싶었지만 이해도 됐다. 그 순간.


"너 이 바닥에 다시는 발 못 붙이게 할 거야."


부장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화도 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차라리 잘됐다.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회사에 노트북을 반납했다. 내 첫 퇴사 여정은 이렇게 끝났다.


과거에는 '언론고시'라고 부를 정도로 기자 명함을 갖기 쉽지 않았다. 채용하는 인원은 적은데 지원자는 많아서다. 내가 입사할 땐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경쟁은 치열한 편이었다. 입사도 힘들었는데 퇴사도 힘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