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한 액션과 퇴보한 개연성, 무난한 마무리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2019)

by Charley

고백하자면 엔드게임 때문에 기분이 계속 상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을 보러 가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계속 찝찝했다. 그래서 얼마나 잘했나 보자 싶은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은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약간은 삐딱한 마음으로 1회 차 감상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1. 일단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첫 번째 생각은 개연성이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등장했던 때에 비해 캐릭터들의 성격이 확연히 변한 경우도 있어서 이미 알고 있는 인물마저도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거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일단 바로 전작에서 내내 리즈를 짝사랑하던 피터가 갑자기 엠제이를 좋아하는 상태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설정이다. 아무리 조연이라지만 스토리가 매끄러워지도록 약간의 서사를 부여해 줄 수는 있지 않은가. (설마 3000분 맞추느라고 못 넣은 건 아니겠지. 3000에 의미 부여하는 게 난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나만 감수성 메마른 사람인가.) 언젠가 피터와 엠제이가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수줍어하는 엠제이를 보니 너 정말 내가 알던 엠제이가 맞냐고 따져 묻고 싶을 정도였다.

네드는 전작에서 스파이더맨을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면서 본인의 매력을 톡톡히 보여 줬는데, 이번엔 그냥 스파이더맨의 도움을 기다리는 시민 1로 전락해 버렸다. 똑똑하고 유능한 사이드킥 역할로 갈 줄 알았는데 이게 뭐람. 벤 삼촌 역할을 토니 스타크로 대체한 거야 이미 지난 일이니 그렇다 쳐도, 기존에 스파이더맨을 도와주던 조력자 캐릭터마저 아이언맨의 등장인물인 해피 호건으로 대체된 것 같아서 기분이 꽁기꽁기 했다.

거기다 메이 숙모는 전작에서만 해도 조카의 일에 매우 과보호적인 태도를 고수하며 피터의 안위에 굉장히 신경 쓰는 걸로 등장하는데, 이제는 블립(파스스) 당했다 돌아온 조카에게 스파이더맨 활동을 적극 권장하는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이건 정말 인지부조화를 불러일으킬 정도. 5년의 시간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인가. 그렇다면 인정!

그리고 개연성이 없어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 중에서도 가장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는 부분 중 하나는 토니 스타크가 피터 파커에게 이디스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수트 하나를 만들어 줄 때도 왕초보용 프로토콜 모드를 넣었던 사람이 토니 스타크인데 아직 철도 다 안 든 미성년자에게 대량 살상이 가능하고 민간인을 마음대로 사찰할 수 있는 시스템을(그것도 모든 권한에 액세스 가능하도록 해서) 남겼다는 것이 너무 상식 밖이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실제로 피터가 그걸로 가장 먼저 한 일은 클래스 메이트들의 메시지를 훔쳐본 것일 정도로 그는 아직 어린애에 불과한데 설마 아이언맨이 이걸 몰랐겠나? 아니, 애초에 토니 스타크가 프로젝트 인사이트 2 급인 시스템을 굳이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별로다. 울트론의 교훈은 잊으셨나요? 토니 스타크가 잘해보려고 만들어 낸 것들이 살짝 삐끗해서 메인 이슈가 되는 mcu 영화가 정말로 많은데, 이걸 굳이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이걸 아무 안전장치 없이 얘 한테요, 진짜로?

대체 미스테리오가 하는 행동의 동기는 무엇인가? 이디스를 얻어내기 위해 연기를 한 것 까지야 그렇다 치는데 그 이후의 행보를 보면 아이언맨의 뒤를 이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슈퍼 히어로가 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빌런인 그가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막연하게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믿게 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영화에서 전혀 풀어주지 않으니, 겉 멋만 그럴싸하게 든 중2병 빌런 행이 되는 것이다. 이디스를 빼앗고 부자가 될 동료들을 위하여, 치어스! 하긴 하는데 그걸로 해킹을 해서 돈을 빼내는지, 아니면 무기화해서 파는 건지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고 그냥 슈퍼히어로 연극을 하는 것이 다이다. 난 또 이디스를 손에 넣은 다음에는 그걸로 엄청난 슈퍼 빌런 짓을 할 줄 알았지. 전에 하이드라 놈들이 프로젝트 인사이트로 잠재적인 적들을 한 번에 제거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런데 이디스 같은 것을 손에 넣고 한다는 것이 고작 영웅 놀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하긴. 애초에 내가 만든 역작에 병신 같은 이름을 붙이고 나를 자르다니! 이러면서 빌런 짓을 시작하는 것부터 설득력이 없긴 하다.


2.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의문점이 있는데, 대체 왜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의 후계자인지 mcu 세계 속 사람들은 다 아는 것 같은데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스파이더맨은 스파이더맨이고 아이언맨은 아이언맨인데, 언론에서도 아이언맨의 빈자리를 스파이더맨이 채우는 것처럼 질문하고 피터 파커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하며 부담감을 느낀다. 멀쩡한 별개의 히어로들을 왜 그런 식으로 엮어내야 하는지 개인적으로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심지어 새 수트를 설계하는 피터 파커의 모습은 영락없는 토니 스타크이고, 토니의 절친인 해피가 그것을 보고 살짝 감동받는 것 같은 장면도 연출되었는데 그 부분은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의 후계자로 땅땅 인정받는 장면 같아 보여서 정말로 왜!?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그 장면의 사운드트랙마저 Back in Black.) 아니 mcu에서 아이언맨의 후계자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할리 키너가 등장하는 것이 더 타당하고 말이 되는 것 아닌가. 각각 인기 많은 히어로들은 좀 따로따로 갑시다!!

너무나 생전의 토니 스타크 같았던 피터 파커의 모습

똑같이 아이언맨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적어도 홈커밍에서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다른 히어로와는 다른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했었는데, 파 프롬 홈은 그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전작보다 퇴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게 아이언맨도 좀 적당히 써먹어야지, 영화 전체가 아이언맨의 그늘 아래 놓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놓으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아무리 엔드게임 직후의 영화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 했다.


3. 스파이더맨의 인기에는 평범한 소시민인 피터 파커와 뉴욕 시민을 지키는 스파이더맨 사이의 갭과 그로 인한 인간적인 고뇌가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mcu의 스파이더맨의 경우 시작부터 아이언맨 수저를 잘 타고나는 바람에 평범한 소시민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토니 스타크의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새로운 수트를 척척 만들어 내고, 무기화가 가능한 엄청난 시스템을 물려받기도 하고, 힘들 때면 날아와 줄 비행기가 있는 파 프롬 홈 속 스파이더맨을 보면 소시민으로써의 어려움은 앞으로도 느낄 일이 없을 것 같다.

거기다 스파이더맨이 뭔가 고뇌하고 부담을 느껴야 한다면 내가 아이언맨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가 아니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라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로 인한 개인적인 부담과 압박감이 차라리 어울리지 않나. 벤 삼촌이 없어도 이런 면을 드러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서 안타깝다.


4. MCU 세계관에 존재하는 기업은 스타크 인더스트리 뿐인가 보다. 홈커밍의 빌런 벌쳐는 토니 스타크가 지원하는 대미지 컨트롤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빌런이 된 것으로 나오고, 파 프롬 홈의 미스테리오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직원이었다가 해고당한 것이 빌런 활동을 하는 직접적인 계기이다. 이 정도면 토니 스타크와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스파이더맨 세계관 속의 빌런 메이커 아닌가? 제작진이 얼마나 게으르고 무능하면 이런 일이 매번 반복될까 싶어서 짜증이 난다. 이건 뭐 생각하기 귀찮은 순간마다 토니 스타크가 땜빵으로 들어오는 수준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에도 인기 있고 매력적인 빌런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데.. 스파이더맨의 탄생에 토니 스타크의 영향이 미친 것도 모자라서 메인 빌런까지 다 토니 스타크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야 하나 싶어서 답답하다.


5. 우리의 꼬맹이 피터 파커는 대체 언제 다 자랄까. 액션 시퀀스를 보면 스파이더맨으로써의 능력이 크게 성장한 것이 느껴지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내내 철부지 소년 같은 면모가 부각되어서 약간 실망스러웠다. 이제 이쯤 되면 내면적으로 성숙한 스파이더맨을 만날 수 있겠지 하고 영화 관을 찾았건만 그동안 시빌 워, 홈커밍, 인피니티 워, 엔드게임 등 수 없이 많은 범지구적, 우주적 사건을 거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약간 철이 없지만 귀여운 소년의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을 보니 지루하기까지 하더라. 만일 스파이더맨이 출연한 영화가 홈커밍과 파 프롬 홈 단 두 편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터는 아직 어리고 히어로 활동을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잖아 하면서 알아서 납득했겠지. 분명히 나는 홈커밍에서의 지극히 소년스럽고 그 나이 때의 걱정을 하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실제 영화 상에서의 시간은 얼마 흐르지 않았을지 몰라도 나는 이미 다섯 편째의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섯 편의 영화가 진행될 동안 캐릭터의 내적 성장이 미적지근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제작진이 안일한 거라고 말해 두고 싶다.




위의 글이 모두 불만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파 프롬 홈이 마냥 나쁘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몇 가지 부분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 부분에 대해 간단히 말해 보자면,


1. 시리즈의 직전 영화에 비해 캐릭터의 성격이 매우 달라진 경우도 있고, 스토리에 개연성도 없어서 중심을 잡기 어려웠을 텐데 훌륭한 연기력으로 그런 틈새가 느껴지지 않도록 해 준 파 프롬 홈의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섬세한 연기력을 가졌으면서도 몸까지 잘 쓰는 배우인 톰 홀랜드와 전부터 느낀 거지만 미친놈 연기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제이크 질렌할은 그들의 역량을 100% 이상 발휘해 냈다. 개인적으로 빌런의 동기와 목적이 너무 허접하다고 생각하는데, 제이크 질렌할의 꽉 찬 사이코패스 연기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그 구멍을 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죽어가는 순간마저 너무나 쌍놈이어서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2. 개인적으로 타노스의 핑거 스냅이 있은 후 5년 뒤에 사라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을 완전 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파 프롬 홈에서 매우 잘 수습한 것 같다.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그것을 부르는 용어도 생기고(블립),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단체(모임)가 설립되는 등의 모습이 현실적이어서 좋았다.

아내가 블립 당한 줄 알고 장례식까지 치렀는데 알고 보니 그냥 바람나서 도망간 거였다는 등의 실제 있을 법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나온 것도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어쨌거나 5년 뒤 설정은 다른 마블 영화들에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빅엿이다. 5개월도 긴데, 5년이라니. 그런 측면에서 보면 파 프롬 홈이 상당히 선방한 것 같다.


3. 스파이더맨의 활강 액션 씬이 만족스러울 만큼 늘어났다. 이거야 말로 스파이더맨의 시그니쳐라고 생각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스파이더맨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액션은 정말 원 없이 보고 나온 듯. 그래서 사실 액션 시퀀스만큼은 스파이더맨이 mcu에서 등장한 다른 어떤 영화보다 만족스러웠다. 최고! 스토리에 개연성만 더 챙겨줬으면 수작이 나왔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4. 쿠키에서 친근한 얼굴인 데일리 뷰글의 J. 조나 제임스가 등장해서 너무 반가웠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절보다는 많이 늙으셨고, 이제는 왠지 위플래시의 플렛처가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여전히 스파이더맨 한정 핵 못돼먹은 모습을 보여주셔서 좋았다. 다음 시리즈에서 데일리뷰글이 등장하려나? mcu 피터도 사진기자 알바를 시작하려나??? 그런데 정말 쿠키는 어떻게 수습할 생각인 건지 모르겠다. 설마 아이언맨의 후계자여서 스파이더맨도 시크릿 아이덴티티 따위 없이 아이 앰 스파이더맨 이러고 돌아다니는 건 아니겠지...




전반적으로 보면 부족한 개연성을 제외하면 그렇게 나쁜 영화는 아니었다. 개연성을 중요시하고, 거기에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아이언맨의 개입이 너무 잦은 것을 경계하는 나는 홈커밍에 비해 조금 더 낮은 점수를 주긴 했지만, 엔드게임 사가를 마무리 짓는 영화로써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엔드게임에 너무 실망을 해서 인지 그보다는 더 낫게 느껴질 정도.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르므로 나의 개인적 견해에 실망하거나 기분이 상하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