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긴 여운을 남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종소리

런던에서 먹어 본 인생 첫 타파스

by Charley

복잡하고 정신없었던 버킹엄 궁전을 뒤로하고 오는 길에 스쳐 지나가듯 보았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들러 보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와 같은 방향이었고, 또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백조들을 보지 않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내가 여름 내내 즐겨 보았던 드라마 <멋진 징조들(Good Omens)>에 따르면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공인된 스파이들의 접선 장소라고 하니 더욱더 흥미가 생길 수밖에!


공원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런더너들

금요일 오전, 공원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런더너들을 구경할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기대한 것보다는 번잡스러운 분위기였다. 런던 한 복판의, 그것도 버킹엄 근처의 공원이기 때문에 관광객이 많은 것이 당연한 일인데 드라마의 이미지를 떠올리느라 잠시 현실을 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공원 부지가 꽤 커서 특정 스팟을 제외하면 여유 있게 둘러볼 정도는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랄까.

뭐니 뭐니 해도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팟은 백조들을 볼 수 있는 이 호수일 것이다. 백조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는 관광객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우리 동네에 있는 공원에는 가끔 오리들이 찾아오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물새를 본 적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백조들이 둥둥 떠있는 연못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미운 오리 새끼 동화를 떠올리며 백조 새끼는 정말 못생겼나 찾아보기도 했고 말이다. 정말 단순하고 별거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보는 것은 늘 새롭기 마련인가 보다.


문득 백조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영국에 있는 백조와 흑조는 특별한 소유자의 표시가 없는 한 모두 여왕의 소유라는 것. 그런데 이 사실을 몰랐던 외국인 이민자가 백조를 사냥해서 잡아먹었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벌금을 물었다는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화창한 초여름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게 안녕을 고하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웅장하고 아름다운 외관의 성공회 성당으로, 런던을 여행 중이라면 한 번쯤은 들러 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이기도 하고 그 안에 안치된 역대 왕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위인들을 찾아보는 것이 꽤 의미 있는 여행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었지만 나는 무명용사의 무덤과 찰스 다윈의 무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무명용사의 무덤의 경우 참혹한 전쟁 중에 스러져간 수많은 병사들을 기리는 상징으로, 로열 웨딩이 있을 때조차 그 무덤만은 절대 밟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찰스 다윈은 뭐랄까. 진화설을 발표함으로써 크리스천들의 질타를 받은 인물이 성공회의 상징과도 같은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쿨한 것이 성공회 스타일인가 싶어서 다른 교파의 크리스천으로서 매우 흥미로웠다.


**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방문할 경우 미리 바우처를 구입해서 가더라도 입장 대기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여유 시간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꼭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서 상세한 내용을 들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종소리. 성스럽고 아름답다.




이 근방을 지나다닐 때 마다 아쉽게 느껴졌던 점이 바로 빅벤이다. 런던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를 떠올리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빅벤인데, 2019년 6월 현재 대대적인 보수 공사 중이어서 저렇게 꽁꽁 싸매어진 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 물론 역사적으로 빅벤의 수리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기는 하다. 오히려 저 모습을 본 것이 더욱 진귀한 일일 수도 있고 말이다. (앞으로 나의 남은 인생 동안 빅벤에 이런 대 수리가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 그렇지만 숱한 드라마나 일러스트, 사진에서 보았던 빅벤을 나만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여간 억울한 것이 아니었다. 내후년쯤에 런던에 다시 방문해야 할 이유가 하나 생긴 셈이다. 하하.




이것 저것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그렇지만 새로운 장소에 대한 탐험심은 줄어들지 않았기에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버로우 마켓에 왔다. 스트릿 푸드와 식자재로 유명한 시장이어서 나름의 기대를 했는데 정말 사람이 너무너무 많아서 초입부터 완전히 지쳐 버렸고, 결국엔 시장을 이탈하여 미리 검색해서 알아봐 두었던 타파스 레스토랑으로 바로 직진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 안에서 인파에 시달리다 멘탈이 붕괴된 탓에 시장 내부의 사진이 없다.)


음식에 있어서는 악명 높은 곳이 영국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신중에 신중을 더해 고른 오늘의 레스토랑은 바로 LOBOS 버로우 점이다. 소호에도 지점이 있긴 한데, 버로우 마켓 쪽 가게의 분위기나 인테리어가 훨씬 힙한 것 같다. 아늑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느낌이랄까. 열차가 지나가는 다리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서 공간이 협소하고, 가끔은 열차 소음으로 덜컹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 공간이 가진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왠지 해리 포터의 계단 및 방이 떠오르기도 했고 말이다.


여기서는 이베리코와 해산물 메뉴를 주문했는데 두 가지 음식 모두 매우 훌륭했고, 맥주 한 잔을 곁들여서 간단한 식사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국 음식에 대한 편견이 약간 깨졌다고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타파스는 스페인 요리이다.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아무튼..... 영국에서의 식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우선 LOBOS에 한 번 들러 보는 것을 추천한다.


* 매니저인지 사장인지 모를 분이 정말로 유쾌한 사람이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주었다. 외국에 있을 땐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두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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