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것은 악령일까, 아니면 격변한 2020년일까?

호스트: 접속금지 (HOST, 2020)

by Charley

재택 근무가 한창이던 2020년의 어느 날, 영화 평론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 2020년 최고의 호러영화 중 하나로 선정한 <호스트(HOST)>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접한 평론가들의 리뷰가 전반적으로 매우 호의적인 편이었고 거기에 더해 신선하다는 후기가 굉장히 많았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개인적인 소감은 어떠했는지 기록해 보고자 한다.




<호스트>의 주 내용은 할리와 친구들이 강령회를 시도하다가 그 과정에서 진짜 사악한 악령이 나타나면서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죽음을 겪는 것으로, 러닝타임이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만큼 시놉시스는 매우 간단명료한 편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흔한 스토리이기도 하다.


온라인 강령회(?)를 시작하기 전 행복했던 한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스트>가 신선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2020년 기준, 현재 우리의 달라진 생활 상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데에 있다. 2020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인류의 생활양식이 크게 바뀐 격동의 한 해였다. 영화의 배경인 영국 또한 그런 격변지 중 하나로, 등장인물들은 자가 격리를 하느라 실제로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온라인 화상 회의 앱인 ZOOM을 통해 강령회를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 또한 등장인물들의 노트북, 스마트폰 등을 통해 제공되는 매우 제한된 영상만을 볼 수 있는데, 고정된 노트북 화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그 주변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잊고 있던 공포감이 확 몰려오며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근의 COVID-19 사태로 인해 ZOOM을 자주 이용하게 된 직장인이나 학생들의 경우 화면에 보이는 익숙한 인터페이스로 인해 영화의 내용이 머나먼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 어딘가에서 일어났을 법한 일로 느껴져서 몰입하기에 더 좋을 것 같다.)


초반과 많이 달라 보이는 친구들의 표정

<호트스>의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무력감" 역시 호러영화로써의 관전 포인트이다. 이 전에도 말한 적이 있다시피, 나는 특유의 무력감 때문에 오컬트 영화를 즐겨 본다. <호스트>의 경우에는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 너머에서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고, 그저 그 자리에서 도망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애타게 이름을 부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다는 데에서 기인하는 등장인물들의 무력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COVID-19이 우리에게 남긴 무력감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손쓸 수 없이 번저가는 죽음 앞에 한 없이 무력했던 2020년을 보내지 않았던가. 가상의 이야기 보다 현실의 삶이 더욱 코즈믹 호러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묘한 기분이 든다.

아니 이런 필터가 진짜 존재한다면서요. 이거 대체 왜 써요...? 현실이 더 무섭다더니.


마지막으로 영화의 빠른 전개 역시 <호스트>가 가진 장점이다. 총 러닝타임이 57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쓸데없는 데에 허비할 시간이 없었는지, 느슨하게 풀어지는 장면은 물론이고 점프 스케어 장면 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사용하는 법이 없다. 숨은 의미나 복선 등을 고민할 필요 없이 보여지는 그 자체 만으로도 공포 영화의 재미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최적의 콘텐츠라고나 할까.


다만, 전자기기의 화면으로 이루어진 장면으로만 구성된 파운드 푸티지 식 연출 방식은 이미 <언프렌디드: 친구 삭제>나 <서치> 등의 영화에서 이미 사용되었기 때문에 "격리"라는 상황이 크게 와 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선함"을 배제하더라도 짧은 러닝타임과 준수한 완급조절이라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므로, 호러 영화의 팬이라면 한 시간 정도를 할애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나는 작년에 이 영화를 볼 방법을 찾다가 결국 호러 영화 전문 OTT인 "Shudder"를 구독하는 귀찮음을 감수했다. 그러나 앞으로 <호스트>를 볼 사람은 나와 같이 귀찮은 절차를 따르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올 1월 중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격이 급하면 귀찮은 일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말이 딱 맞는 경우가 아닐 수 없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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