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 저도 아닌 맹맛의 호러 영화

변신 (2019)

by Charley

호러 영화 중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은 누가 뭐래도 <변신>이었다. 몇 개월 전 극장에서 예고편을 보고 내적으로 '유레카'를 외쳤던 나는 영화의 개봉일만 손꼽아 기다렸고, 결국 친구를 꼬셔서 개봉일에 <변신>을 보러 극장을 찾았다. 그러나 영화는 전체 러닝 타임의 정확히 1/3 지점 까지만 호러영화 다웠다. 나머지 2/3은 어땠냐고? 등장인물들의 반복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해결되는 것 없이 겹겹이 쌓이는 자극 때문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친구에게 미안해졌을 정도로 말이다.




초반부는 꽤 훌륭했다. 오프닝의 구마 의식과 앞 집 남자의 저주 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이상 행동은 꽤 섬뜩했고, 무엇보다도 가족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소름 끼치는 행동을 하는 악마와 그 때문에 점차 서로를 믿지 못하고 피폐해져 가는 가족의 관계를 그려나가는 방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여기 까지만 해도 정말 걸작 호러 영화가 또 한 편 탄생했구나 하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러나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완전히 변해 버린다.


제발 그렇게 다 같이 모여 있으면 안되겠니?

호러 영화가 무서운 이유의 7할 정도는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주인공에게 닥쳐오는 시련은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변신>의 등장인물들은 줄곧 관객들에게 밤고구마를 물 없이 서 너개 씹어 삼킨 기분을 느끼게 하려고 작정한 것처럼 행동한다. 상식적으로 저 상황이라면 모든 가족이 한 공간에 계속 붙어 있어야 하는데, 그 사단을 겪고 나서도 무슨 물건을 가지러 간다 뭘 한다 하면서 수시로 뿔뿔이 흩어진다. 흩어졌다가 무슨 일을 겪을지는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그래서 악마가 등장해서 가족들을 농락할 때도 놀랍지 않고, 공포보다는 오히려 답답함과 짜증이 치밀었다.


작중의 악마가 사람의 외향과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 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다른 의심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등장인물들의 태도 또한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그러다가 "속았지? 사실은 진짜가 아니었어!" 하는데 이것을 반전이랍시고 만든 것인지 아니면 호러 영화 관객의 지능을 무시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거기다 불필요한 장면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그중에서도 특히 백윤식이 분한 발타자르 신부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은 군더더기의 정점으로, 통째로 들어낸다고 해도 영화의 중심 스토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대체 발타자르 신부의 역할은 뭘까? 단순히 중수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구마 의식을 시도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라기엔 너무 거창하다. 당장 구마 의식을 하지 않으면 가족들이 다 죽을 판인데 굳이 국내도 아닌 외국에서 구마 신부를 섭외하고, 가족 중 유일하게 악마와 대적할 수 있는 본인이 직접 신부를 픽업하러 공항까지 나간다. (그동안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는데도!) 그리고 그렇게 모셔 온 권위 있는 구마 신부가 뭘 해보기도 전에 악마의 술수에 말려들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직접 악마를 쫓아내기로 마음먹는다니! 아니, 자기 가족들의 생사가 달려있는데 이런 장황하고 알맹이 없는 트라우마 극복의 배경 설명이 꼭 필요하냔 말이다. 해외로 나가려던 중수가 형의 전화를 받고 그대로 돌아와 바로 구마 의식을 했다고 관객들이 "트라우마 때문에 신부도 관둔다던 놈이 어떻게 저길 가서 구마 의식을 할 수가 있어! 말도 안 되는군." 생각할리가 만무하다. 쓸데없이 내용을 장황하게 하고 러닝 타임만 늘린 꼴이다.


만약에 실제로 카톨릭의 구마 의식 중에 그런 것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중수의 목숨을 건 구마 의식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데, 악마를 자기 몸에 가두고 죽으면 악마가 소멸이 된다니 정말 밑도 끝도 없다. 꼭 비교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검은 사제들>은 적어도 성경에 나온 예수의 행적을 들어서 그들의 행위가 왜 정당성 있는 것인지, 왜 굳이 돼지를 들고 강으로 달려갔어야 하는지 관객이 납득하도록 설명해 준다. 이런 작은 디테일이 영화의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법이다.


게다가 이 긴박한 와중에 갑자기 천리안이라도 생긴 것인지 멀리서 들것에 실려 가면서 "중수야, 안된다"를 외치는 발타자르 신부나, 후광과 함께 무릎을 꿇고 숨을 거둔 중수를 담아내는 멀티 앵글은 전형적인 '영웅 만들기' 류의 신파스러운 감성이어서 현대인의 생각으로는 따라가기가 매우 벅찼다.




이 영화는 차라리 악마의 행적과 그것을 쫓아내기 위한 구마 의식에 충실하거나, 가족들이 불신으로 와해되는 것을 더욱 깊이 있게 담아내거나, 아니면 <콘스탄틴>처럼 주인공의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액션 극으로 가던지 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그 모든 요소 요소들을 한 편에 욱여넣다 보니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맹맛의 결과물이 나온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초반의 오컬트스러운 분위기와 배우들의 열연이 너무나 만족스러웠기에 마무리가 더욱 아쉬운 영화이다. 괜찮은 호러 영화를 찾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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