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정신병을 통한 불안 장애자의 멘탈 치유기

미드소마 (Midsommar, 2019)

by Charley

악령이 깃든 한 가정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 <유전>을 통해 나만의 호러 영화 거장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 <미드소마>를 보고 왔다. 2시간 27분의 상영시간이 말해 주듯 호흡이 아주 긴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른 생각들을 몇 가지 적어 보려고 한다.




대니는 우울증에 걸린 동생이 부모님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주 비극적인 일을 겪으며 죽음과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캐릭터로, 하나 남은 기댈 곳인 남자 친구 크리스티안과의 관계 역시 안정적이지 않다. 사실 크리스티안은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뿐 가족의 일로 힘들어하는 대니를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심지어는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우리는 대니 역시 이런 사실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 속의 다양한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정서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 기댈 수 있는 것이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위로가 필요해서 연락을 할 때면 자신을 귀찮아할까 봐 망설이고, 크리스티안이 잘못한 순간에도 그가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본인이 잘못했다며 먼저 사과를 한다. 가족의 일로도, 정서적으로도 대니에게 필요한 것은 그녀에게 공감해주고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존재이지만 그녀의 주위에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연인 마저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또 한 명의 희생자로 마을 주민이 아닌 크리스티안을 고른 대니의 선택이 어느 정도 이해됐다. 나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데다 부정을 저지르기까지 한 남자 친구보다는 나의 고통에 함께 소리 내며 울어주는 이 작은 미치광이 공동체가 오히려 그녀가 원하고 바라 온 관계에 더욱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훨훨 태워 버리고 나서 짓는 대니의 미소는 이제 그녀가 이 전에 매달려왔던 비이상적인 관계나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았고 말이다.

이후에 대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서로의 모든 것에 공감하고 감싸주는 기묘한 집단 안에서 새로운 안식과 행복을 얻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동기화 버튼이라도 누른 듯 대니가 울부짖자 같이 울기 시작하는 마을 사람들

그래서일까. 언뜻 보면 영화의 결말이 자신을 기만한 연인에게 시원하게 복수하는 내용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에겐 완전한 치유와 성장의 대서사로 느껴졌다. 단지 그 과정과 방식이 매우 과격하고 사이코패스 틱 했을 뿐. (나는 여전히 크리스티안이 산채로 불에 타 죽을 정도의 악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간에 <미드소마>는 꽤 괜찮은 영화인 것 같다. 보는 사람의 시점과 취향에 따라 해석이 갈릴 수는 있지만 그와 별개로 개인과 집단의 광기를 다양한 소재를 통하여 잘 보여주었고, 이 영화가 소름 끼치고 기분 나쁜 이유 역시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선택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얻으며 이 전의 트라우마를 모두 벗어 버리기 전까지, 정서적으로 극한 상황에 몰렸다고 생각될 만큼 괴로워하는 대니의 모습이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가족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발작을 하고 남자 친구와 그의 무리로 대변되는 그녀가 현재 속한 집단(관계)으로부터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이런 대니의 시각에서 영화가 진행되다 보니 영화를 보는 매 순간이 너무 괴로웠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나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떤 끔찍한 장면 보다도 숨이 멎을 듯이 꺽꺽거리며 울부짖는 그녀의 목소리가 가장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두 시간 반 동안 가장 많이 본 대니의 표정. 플로렌스 퓨는 정말 타고난 배우인 것 같다.

고어하다는 리뷰를 먼저 접하는 바람에 영화를 보는 내내 언제 흉측한 장면이 나오나 두려움에 떨었지만 다행히도 걱정한 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인간의 사체를 너무 날것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준 덕분에 무서운 느낌보다는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시체 훼손 장면도 여러 번 등장하지만 드라마 <한니발>로 단련된 심장이 이번에 빛을 발했다.




단순히 호러 영화라고 분류하기에 <미드소마>는 호러의 색깔이 그리 짙지 않은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관객들을 무섭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주인공이 내면의 트라우마와 장애를 이겨나가는 과정을 보다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가 가진 호러의 요소 대부분은 대니가 불안 장애를 극복해내는 과정, 내지는 도구로써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약간 아쉽다는 코멘트를 남기려고 하던 순간, 어쩌면 이런 것이 아리 에스터 식의 "아트 호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의 행보를 반가워하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벌써부터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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