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벨 집으로 (Annabelle Comes Home, 2019)
컨저링 1편에서 애나벨을 처음 만났으니, 어느덧 애나벨을 알게 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거의 6년이 꽉 차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여러 컨저링 유니버스의 영화 속에서 애나벨은 섬뜩한 외모와 지극히 악마다운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빠트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애나벨의 활약을 기대하며 애나벨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애나벨 집으로>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지만, 기대에 훨씬 못 미쳐서 크게 실망을 하고 말았다.
요즘은 호러 영화에서도 스토리텔링이 매우 중요해졌다. 그저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것 만이 호러 영화가 가진 미덕이 아니라 최근에 개봉했던 어스나 유전처럼 보고 나서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는, 탄탄한 스토리와 무서운 장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영화여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컨저링 유니버스는 애초에 스토리에 무게를 두는 스타일이 아니긴 하다. 그 대신 집이라는 장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탈바꿈시켜서 호러계의 수작을 꽤 여러 편 만들어 냈다. 문제는 애나벨 집으로는 그 둘 중 아무 데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메인 스토리는 정말 단순하다. 워렌 부부가 없는 집에서 그들의 딸인 주디와 베이비시터인 메리 엘렌, 그리고 메리 엘렌의 친구 다니엘라가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워렌 부부가 수집했던 온갖 악령이 깃든 물건들이 애나벨의 힘에 의해 되살아 나면서 집 안팎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게 되어 버린다는 것. 그런데 사실 이것은 모두 다니엘라의 개인적인 바람이 불러일으킨 인재이다. 돌아가신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단순히 심령술사의 집에는 혼령이 많겠지 하는 생각으로 워렌 부부의 컬렉션 룸에 들어가 영혼을 부르고, 모든 물건들을 만져보다가 애나벨을 봉인된 장에서 꺼내 주면서 재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호러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민폐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애나벨 집으로 처럼 하지 말라는 일을 했다가 큰 일을 당하는 류의 플롯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스토리의 호러 영화는 50년도 더 전부터 늘 존재했기 때문에 식상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미 비슷한 류의 영화가 수 백, 수 천 편이 넘게 쏟아져 나왔는데 2019년에도 이런 스토리를 차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일한 태도인 것 같아서 더욱 별로이다.
이 영화에는 위에서 언급한 빈약한 스토리 외에도 매우 중대한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 하나는 영화가 지나치게 산만해서 무서운 장면 마저도 지루하다는 것이다. 물론 워렌 부부의 컬렉션에서 나름 무서운 악령들을 골라서 영화화시킨 것이겠지만 등장하는 악령의 수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긴장감을 늦추고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어 버렸다. 호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히 완급을 조절하면서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잘 유지시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애나벨 집으로는 완전히 망한 영화이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너무 평온한 일상 때문에 영화가 전체적으로 늘어지는 편이고, 해가 진 후에는 여러 종류의 악령이 말 그대로 쉴 새 없이 계속 몰아치기만 해서 오히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놀라는 장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깜짝 놀라는 것과 무서운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명색이 셀프 타이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애나벨의 임팩트가 너무 미약했다는 점이다. 컨저링 시리즈에서 잠깐씩 얼굴을 내 비추었을 때부터 시작해서 본인의 앞선 시리즈까지 애나벨은 세계관 내에서도 굉장히 강력한 악마였다. 평범한 성직자는 애나벨을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려졌고, 애나벨은 미친 듯이 날뛰며 관객들에게 공포를 선물해 주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제목에만 애나벨이 붙어 있을 뿐 애나벨의 역할이 너무나 미미하다. 봉인에서 풀려나서 워렌 부부의 집에 갇혀있던 다른 악령들을 깨우는 것 외에 애나벨이 한 것이 대체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주디를 침대 아래로 잡아당기거나 그 혐오스러운 얼굴로 깜짝 등장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역할이 없었다.
거기다 마지막에 본체인 사탄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긴 하지만 주디가 손에 든 십자가로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애나벨..... 갇혀 있는 동안 많이 약해졌구나! 하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애나벨의 활약을 보러 영화관을 찾은 나에게는 가장 불만스러운 부분이다.
이번 애나벨 시리즈는 컨저링 유니버스의 숨 돌리기, 혹은 로레인 워렌 추모용 영화 같다는 것이 나의 총평이다. 약간 무서운 영화를 찾는 사람이나, 호러 영화를 즐겨 보지만 어떤 등장인물도 죽는 꼴을 못 보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만 그 외의 호러 팬들에게 추천할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