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의 탈을 쓴 과거로부터의 메시지

서스페리아 (Suspiria, 2018)

by Charley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 리메이크작을 보고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작 특유의 분위기와 색감을 사랑하던 나에게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다. 거기다 등장인물과 콘셉트를 제외하면 1977년 작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리메이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작과 리메이크작을 별개의 영화로 생각해 본다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나쁘지 않은 호러 영화이기도 할까?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는 비비드한 색감과 조형미를 강조하는 화면 구성으로 모든 장면 장면이(심지어 등장인물이 살해당하는 장면 까지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배경, 등장인물의 의상 등에서 컬러감을 최대한 배제하고 어두운 조명을 사용함으로써 바더 마인호프/적군파의 테러가 판을 치던 분단 시기 독일의 우울을 담아냈다. 거기에 더해 어딘지 모르게 비밀이 가득해 보이는 댄스스쿨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들은 끊임없이 긴장감을 조성하며, 영화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음산하고 비에 젖은 눅눅한 공기가 피부로 와 닿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이 부분은 사실 꽤 마음에 든다.


거기다 영화의 극 초반부부터 마녀들이 숨김없이 각종 사건들을 벌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댄스스쿨을 운영하는 선생님들의 정체를 알 수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원작에 비해 멀쩡하고 친절한 인간의 가면을 쓴 마녀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깔깔거리며 주술로 인간을 죽이고 농락하는 모습이 꽤 소름 끼친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더 위치>에 등장하는 마녀 집회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올가의 고문 장면은 너무나 끔찍해서 영화를 보고 나올 때까지 그 생각이 멈추지 않을 지경이었다. 원작에서는 단순히 배경에 지나지 않던 "춤"이 저주를 이행하는 매개로 사용된 것도 꽤 신선했고 말이다. 수지의 춤에 맞춰서 이리저리 기하학적으로 비틀리는 올가의 육체는 선혈이 난무하는 영화의 막바지 장면보다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호러 영화의 팬으로서,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가 좋은 호러 영화인지 묻는다면 의문을 표시하고 싶다. 나치의 악몽이 아직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분단된 독일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사회적, 역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원작의 빈틈 있는 스토리를 보강한 조금 더 완벽해진 호러 영화로서의 서스페리아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던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으나 그 이야기를 왜 굳이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를 통해 전달해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할까. 고어한 장면이나 무서운 장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분단된 국가의 현실과 나치로 인한 죄책감 등이 영화의 주요 메시지로 떠오르면서 앞선 모든 호러 영화의 요소는 힘을 잃고 만다. (사실 호러 영화로만 놓고 보면 그렇게 무서운 편도 아니다. 충격적인 장면이 몇 개 있는 것이지 시종일관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고 깜짝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흔히 고전이 된 영화의 리메이크 작을 볼 때면 다들 원작을 떠올리면서 무언가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는 그러한 나의 기대를 완전히 깨부수었다. 영화가 가진 메시지를 중요시하거나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겠지만, 원작의 분위기를 좋아하거나 호러 영화에 열광하는 호러 팬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영화는 아닌 것 같다는 것이 최종 감상이다.


++ 나는 Goblin이 맡은 원작의 사운드트랙을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않는데, Thom Yorke의 사운드트랙은 Goblin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던 것 같다. 곡 자체는 매우 아름다워서 플레이리스트에 올려 두고 자주 듣고 있지만, 영화의 장면과 어우러져서 몰입도를 높이고 순간적으로 관객을 확 사로잡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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