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초기 스타트업 10개와의 협업 회고록
작년까지 부업을 정말 열심히, 그리고 틈틈이 해온 결과 10인 이하, Pre-A 스테이지 이전의 소규모 스타트업 10개와 다양한 목표를 갖고 협업해 왔는데요, 업무적으로 봤을 때 가장 많았던 협업 요청은 아래 3가지 정도였습니다.
1. 시장에 내놓을만한 수준의 상품/브랜드로 재정의
2. 침투 시장을 정의하고 확산 계획을 세우는 GTM 전략 수립
3. 인지도와 매출 증대를 위한 효율적인 마케팅 실행안
새해가 된 지 훌쩍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회고하는 이유는 위 3가지가 매우 잘 수립되고 진행되어도 어떤 조직은 잘 되고, 어떤 조직은 잘 되지 않았다는 lesson & learn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조직에 대한 제 관점도 바꿨을뿐더러, 개인적으로 매우 성장했기 때문에 정리를 해놓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일하는 즐거움과 성과를 함께 경험했던 조직은 반드시 1) 시장과 제품에 대한 겸손함, 2) 가장 중요한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실행하기, 3)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 유지하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명 컨설팅펌 출신에게서 볼 듯한 화려한 언변과 비상한 역량, 경험들과는 결이 다르기도 했습니다. (수준 높은 경험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크리티컬 하지 않았다는 의미)
대단한 성공과 성과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때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단순히 극초기 스타트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리즈 A 단계를 넘은 50인 내외의 기업까지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고를 하는 김에 성장과 희망이 공존했던 조직과 팀들이 집착했던 8가지를 정리해 봤습니다.
1.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은 고객에게
처음 창업 아이템을 선정할 때, 많은 경우 만들고 싶은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의 수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표의 선호도와 희망사항에서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진력 있게 일이 진행되고 제품과 서비스는 시장에 빠르게 나올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점은 단점도 갖고 있는데요.
명확한 방향이 있는 것은 좋지만, 종종 대표가 원하는 방향과 시장 및 고객이 원하는 방향의 괴리가 발생합니다. 이 지점에서 대표와 초기 창업자들은 '우리 제품 괜찮은데, 왜 반응이 미지근하지?'와 같은 말을 번복하며 원인과 해결책을 조직 내부에서 찾으려 하고, 여기서 시간과 비용을 많이 낭비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조직 구성원이 아무리 스마트해도 시장과 고객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는 조직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을 빠르게 고객에게 전가합니다. 시장과 고객은 놀라울 정도로 똑똑하기 때문입니다.
2. PMF 테스트와 피보팅을 빠르게
창업 후 PMF(프로덕트 마켓 핏, 시장에 들어맞는 제품)를 찾는 과정에서 대표와 조직의 성향이 드러납니다. PMF는 고객이 돈을 지불할 의사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데요, 성향이 드러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PMF를 찾는 시도는 단 한번일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5~10회 이상의 제품과 서비스 변경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변경한다는 이 지점에서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대표는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장기간 이론적 타당성을 검증하는데 시간을 보내거나 런칭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PMF를 찾기 위해 시장과 고객에 겸손한 마음으로 빠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학교와 회사에서 잘 나가던 나는, 아무도 모르는 팀을 꾸린 우리를 알아줄 리가 없습니다.
보통 PMF를 찾는 과정에서 피보팅(pivoting)이라는 것을 고민하게 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부 기능을 변경하는 수준부터 아이템을 교체하는 과감함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장과 고객 반응을 기반으로 피보팅 수준을 결정하는 정도에서 스마트함을 발휘하면 다행입니다. 이것을 지체하면, 성공과 실패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를 그만큼 늦게 알게 됩니다.
3. 매출만큼 중요한 것은 조직의 비전
큰 회사나 조직에 재직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비전 설정에 취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시장에 팔리는 제품이 존재하거나, 비즈니스모델이 확실한 조직은 제품이나 조직의 비전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과 제품, BM을 찾아가야 하는 조직은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조직의 비전은 극초기 조직일수록 우리가 생각하고 실행하는 모든 것에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조직이 5인이든 30인이든 대표보다도 조직의 비전을 기반으로 구성원이 움직여야 합니다. 별은 하늘에 떠 있어, 함께 바라봐야지 대표가 별 그 자체가 되면 곤란하다는 의미입니다.
구성원 모두가 그 비전을 달성하고 싶어야 셀프 모티베이션이 가능해집니다. 비전이 없으면, 기대감이 없어지고, 일상에 흥미를 잃게 됩니다. 비전이 모호하거나 부재한 상태에서 조직의 리더들이 임직원의 동기 부여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않으면서 구성원의 수동적인 모습에 탓을 돌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4. 개개인에게 가장 Fit 한 역할 부여
작은 조직일수록 사람 하나하나의 모티베이션과 성취에 대한 인정, 만족도가 중요합니다. 성공은 스마트한 사람만 모여있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작은 조직일 경우, 모든 구성원이 제 위치에서 동기부여를 받고, 성취를 느낄 수 있으며,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구성원이 뛰어나기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Human Resource, 흔히 인사 업무라고 하는 일은 사람을 잘 뽑는 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을 뽑아 잘 배치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의 역량과 의지를 확인하고 가장 fit 한 포지션에 배치함으로써 위에서 언급한 개인적인 성취와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이 없는 조직에서는 기대와 다른 임직원 퍼포먼스에 대해 조직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개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작은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이탈 의사가 높고, 서로 탓을 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잘 될 조직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5. 바이럴은 제품 그 자체에서 시작하도록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 후 비용을 써서 시장의 반응을 보기 전 권장하는 것이 제품 그 자체로 바이럴이 가능한지 테스트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접근이 모든 판단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제품 그 자체로 얼마나 강력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지 런칭 후에는 테스트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성장한 '알리미'나 '타임트리' 같은 서비스가 현실에 존재하는 만큼, 우리 제품의 힘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 활동은 제품력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과 냉정한 시장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프로덕트헌트'와 같은 초기 제품 테스팅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아날로그적 홍보를 해보는 방법 등과 같이 다소 시간이 걸리고 몸이 고단하더라도, 진정성 있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을 수행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나와 기존에 관계가 있던 가족, 지인, 협력사들의 피드백을 받는 것입니다. 대부분 대표가 노력해 만든 제품에 대해 부정적 발언을 하거나, 시니컬한 답변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지인들의 긍정적인 발언이 착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 오버커뮤니케이션
위대한 제품과 성과는 혼자서 달성할 수 없습니다. 오버커뮤니케이션은 조직 내에서 구성원 간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문화를 의미합니다. 특히, 비전이 잘 공유된 조직은 자연스럽게 오버커뮤니케이션 문화가 생길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제품에 대해서,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잠재 이슈에 대해서, 시장과 고객에 대해서 수많은 오버커뮤니케이션 주제가 존재합니다.
실패하는 조직은 소통보다는 침묵의 방향으로 분위기가 흘러갑니다. 아직 제품이나 비즈니스모델이 완벽히 고객과 만나지 않은 단계에서 침묵은 그야말로 조직을 실패로 이끄는 지름길입니다. 대부분 말해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거나,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할 때 분위기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보다도 나쁜 징후는 자기 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경우입니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월급뿐인 직원들이 많아지는 순간, 성장은 당연히 지체됩니다.
7. 꼭 필요한 제품에 집착
적지 않은 경우, 적당히 신박한 제품에 만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리보고 저리 돌려보면, 전에 없었기도 했고, 기존 제품보다 나아 보여서 타협하는 경우가 해당됩니다. 고객은 신박한 수준의 제품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봐도, 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거나 내 제품이라는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 결제합니다.
신박한 수준의 수많은 제품들이 현재도 시장에 많습니다. 느긋한 성장을 꿈꾼다면 해당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성공을 위해 폭발적인 성장을 목표로 한 조직이라면 꼭 필요한 제품에 집착해야 합니다. 그것이 작은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기는 노하우기도 합니다.
8. 긍정 마인드, 그리고 자신감
극초기 스타트업이나 창업 조직은 지금까지 겪었던 회사 생활이 양반이었다고 생각하게 할 만큼 힘들고 고단한 여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공을 해도 고단하고, 실패를 하면 더 고단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만큼 실패에 냉혹하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해 아직은 냉소적인 나라에서 고단함을 이겨낼 방법은 위에 언급한 사항들을 되새기며 긍정적인 마인드셋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창업은 자아를 찾는 과정이라고도 합니다. 처음에는 성공하고 싶어 열정으로 뛰어든 창업이겠지만, 나를 받아들이고, 세상의 의견을 청취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내 길을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기게 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비전을 통해 임직원과 함께 자아를 찾아가고 있다면 그 과정에 사람을 얻는 성과도 있을 것입니다.
성공에 집착한다면, 제품이나 서비스에 쏟는 관심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회고록을 마치며, 개인적으로도 성공을 위해 정작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었는지 이번 추석 연휴에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