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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ieBrown Jun 22. 2015

(영화) 달콤한 인생

Bittersweet Life, Bittersweet Truth (2009.10.30)


수년간 쌓아왔던 관계는,

한 순간에 깨져버렸다.

그걸 깨달은 그 순간만큼 절망적인 순간이 또 있을까?

난 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모든 걸 바쳐왔고,

그 사람도 나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듯 했다.

그런데 그것이

단 한 순간에,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깨져버린 것이다.

나는 갈구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나를 이렇게 끝없는 절망에 빠뜨리게 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러나

알 수가 없다.

그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 이야길 들어봐도,

알 수가 없다.


"내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내게 왜 그랬어요."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아니요, 그런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어서요. 내게 왜 그랬어요."


그 어떤 이유도, 그를 납득시키지는 못했다..

그저 남는건 무수히 울려대는 공허한 메아리뿐.


사실 그 누구의 잘못도 없다.

본래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법이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듯,

어느날 갑자기 그렇지 않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도, 그 사람도

그들 스스로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던 게다.


하지만 그들이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킨 모든 이유들을 서로에게 말했다고 해서,

그 혹은 그 사람이 납득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은 그들은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몰랐기에 그처럼 행동했던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은 그 사실에 분노했을 뿐이다.

상대가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님이 드러났기에,

그들은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끝없는 분노, 좌절, 그리고 공허함.

이러한 그들의 마음을 어떠한 이유가 채워줄 수 있을까?

결국 그들도 나중에 시인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렇게 마지막까지 그들은 서로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러지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르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니 마음뿐이다."


사실 그도, 그 사람도 잘못한 것은 없다.

단지 흔들렸던 것은 그도 아니고, 그 사람도 아니고,

단지 그 사람 마음 속에 있었던 그이며, 그 마음 속에 있었던 그 사람이다.

사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관계가 이렇게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보지 못했고,

(아니, 보았음에도, 서로의 필요에 따라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들의 상대방에 대한 상(像)/믿음 안에는

그러한 모습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가 변했다고,

자신의 믿음을 저버렸다고,

분노하고,

증오한다.

실은 상대방이 변한 건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이 깨진것인데도 말이다.


어느날, 제자는 달콤한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제자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스승은 걱정이 되어 제자에게 물었다
"왜 우느냐?"
"꿈을 꾸었습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그럼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그럼 어떤 꿈을 꾸었느냐?"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스승은 기이하여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이하여 눈물을 흘리느냐?"
그러자 제자가 답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닫게 할지라도,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을게다.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고, 사랑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함에도,

언제나 사람들은 그것을 꿈꾸고,

그렇다고 믿으며 마지막까지 만남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그런데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그것이 꿈이었음을, 단지 내 믿음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의 기분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단지 두 볼에 끝없는 눈물이 흐를 뿐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누군가와의 만남을 체념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단지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뿐이다.

그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깨어졌을 때 그처럼, 혹은 그 사람처럼 상대방에게서 질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아프면, 그 아픔 그대로.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 떄만이,

또 다시 누군가와의 만남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레드 디 수지의 말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인간이란 본래 그런 존재 아니던가.

닿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떨림에,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처럼,

'너'에게 닿고자,

그렇게 다시 사랑하고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존재.

온전히 '너'에 닿을 수 없기에,

언제나 긴장되고, 설레고, 때론 상처입고, 다시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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