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디펜더
One life. live it. (단 한 번뿐인 삶. 제대로 살아라)
요즘 랜드로버의 구형 디펜더에 자꾸 눈길이 간다. 효율적이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을 것이며, 냉난방도 시원치 않을 테고, 풍절음도 클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시대에 뒤처진 오래된 고철 덩어리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차에는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유행을 따르는 대신 스스로를 고집하는 물건... 마치 남들이 보기에 조금 낡은 옷을 입었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해 보이는 사람처럼 말이다. 단지 오래되었다고 생기는 감성은 아니다. 시간이 쌓여 있고, 그 차를 선택한 사람의 태도까지 함께 실려 있는 느낌이다.
며칠 전 맥도널드 앞에서 그 차를 다시 보았다. 도심 한복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 속에서도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 같은 디펜더는 여전히 멋졌다. 그때 차 뒤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One life. live it. (단 한 번뿐인 삶. 살아라.)
디펜더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곧 질문이 따라왔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하나뿐인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걸까.
우리는 늘 자유를 말한다. 돈에서 자유로워지면, 직장에서 벗어나면, 관계의 부담이 줄어들면 비로소 내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준비 과정이 되고, 지금은 견뎌야 할 시간으로 남는다. 진짜 인생은 언제나 ‘조금 더 나중’에 시작될 것처럼 미뤄진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매일 살아내는 이 현실이야말로 인생의 전부일지 모른다. 반복되는 출근길, 책임져야 할 일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작은 위로를 받는 관계들.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날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삶을 만든다. 우리는 특별한 순간만을 인생이라 부르지만, 실제로 인생은 대부분 평범한 날들의 연속이다.
‘One life. live it’이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단지 자유를 찾아 떠나라는 구호가 아니라, 지금을 외면하지 말라는 말에 더 가깝게 다가온다. 현실을 벗어나야만 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내가 선택하고 감당하며 살아가는 태도 자체가 곧 나의 인생이라는 뜻일지 모른다.
우리는 종종 더 나은 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흘려보낸다. 하지만 하나뿐인 인생은 언젠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다. 그 일상 속에서 우리는 늘 더 나아 보이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남들의 속도에 맞추고, 세상의 기준에 맞추고,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에 맞춰 스스로를 디자인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차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어쩌면 우리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함 때문일 것이다. 남을 닮으려 애쓰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계속 모양을 바꾸기보다 처음의 결을 그대로 지닌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 겉으로는 다소 투박하고 불편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스스로 세운 기준이 분명히 서 있는 듯하다.
내일도 우리의 하루는 여전히 평범할 것이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이고, 반복되는 장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하루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무게는 달라진다. 끌려가듯 사는 하루와 스스로 선택했다고 받아들이는 하루는 겉모습은 같아도 전혀 다른 시간이다.
One Life - 하나뿐인 인생은 멀리 있지 않다.
Live it - 어떤 자세로 살아 가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안에 이미 살아가고 있다.
삶의 소중함은 특별한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날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도망치지 않고, 미루지 않고, 지금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평범한 하루는 더 이상 통과 지점이 아니라 나의 인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