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넘는 순간
젊은 시절,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이 홍수에 떠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며 울던 남자가 있었다.
살림살이가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아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그는 부산에서 손꼽히는 자산가가 되었다.
이는 내가 멘토로 모셨던 부산의 한 회장님의 이야기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부산 서면의 한 호텔이 경영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갔다.
“이 호텔을 저에게 파십시오.”
헐값에 사려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호텔 사장에게 가격은 오히려 시세에 맞게 좋게 쳐주겠다고 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지금은 돈이 없습니다. 1년 후에 꼭 드리겠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제안이었다.
자본도 없고, 담보도 넉넉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들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건 제안이 아니라 희망사항 아닌가?”
하지만 그는 그 호텔을 인수했고, 무궁화를 단 관광호텔로 승급시키며 대박 신화를 만들었다. 이후 예식장, 음식점, 자동차 딜러, 임대업으로 무대를 넓혀 갔다.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두고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는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상식이라는 선을 넘는 선택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상식과 현실을 근거로 목표를 정리해 버린다.
“그건 무리야.” “현실적으로 안 돼.” “괜히 체면만 상하지.” 수십 수백 가지의 안 되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말들은 대체로 합리적이다. 상식은 위험을 줄이고, 현실 감각은 손실을 막는다. 그러나 그 상식이 우리의 가능성까지 제한하는 순간, 그것은 보호막이 아니라 우리를 가두는 울타리가 된다.
상식은 대개 사람들의 평균적인 사고 속에서 형성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 본 범위, 감당해 본 리스크가 쌓여 만들어진 일종의 기준선 같은 것이다. 그래서 상식은 대체로 안전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온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균을 기준으로 목표를 세우면 결과 또한 평균 근처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안정적일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도약이 나타나는 일은 흔치 않다.
물론 상식을 벗어난 목표를 세운다고 해서 그 자체가 무모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이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가능성의 범위를 미리 좁혀 버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은 분명 중요한 조건이지만, 그것이 언제나 결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이 부족하다고 해서 기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서 배움의 길이 닫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실패를 두려워한다고 말하지만, 가만히 보면 실패 자체보다 평균에서 벗어나는 시선을 더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상식 밖의 선택을 했다가 괜한 말을 듣게 되지는 않을지, 쓸데없는 도전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먼저 걱정하게 된다.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스스로 선을 긋기도 한다.
홍수 속에서 울던 청년이 호텔을 사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현실을 몰랐던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현실이 얼마나 냉정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위에 다른 선택지를 하나 더 얹어 보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날 그는 특별한 전략을 세운 것이 아니라, 단지 “상식이 정해 놓은 선에서 멈추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를 붙들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안 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목표를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실패를 피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가능성을 조금 일찍 접어 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장면은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홍수 속에서 살림살이가 떠다니는 집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한 청년이 조용히 내뱉은 말처럼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라는 작지만 당찬 다짐에서 시작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