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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오빠 Mar 07. 2020

라임 사태, 그래서 누가 잘못한 건데?

찰리오빠의 그렇고 그런 경제 이야기

DLF 사태는 은행을 너무 믿어버린 투자자와 금융 상품 판매처의 불완전 판매가 만든 합작품이다. 결과적으로 피해가 확정된 투자자를 대상으로 배상이 이뤄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오히려 최근 언론을 통해 줄기차게 등장하고 있는 소식은 2019년 가을부터 금융권을 들썩이게 한 라임자산운용 사태다. 반년이 지난 지금, 라임 사태가 DLF 사태보다 질적으로 훨씬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을 세상이 알아가고 있다.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국내 경제 지표도 '심각' 단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라임 사태는 사회/경제적으로 미칠 파장이 큰 이슈다.


라임 사태는 DLF 사태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사건이다 (출처: 동아일보)


해외 자본의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시작된 규제 완화

라임자산운용은 2012년 투자 자문사로 시작해 2015년부터 5년 만에 국내 1위 사모펀드(PEF) 운용사로 성장했다. 2015년은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 활성화 대책'이 등장해 다양한 규제가 완화됐던 시기다. 원래 헤지펀드(사모펀드)는 폐쇄적으로 운용돼 왔는데, 헤지펀드의 적대적 인수 공격이 지속적으로 지적돼 이를 막아 내기 위한 토종 자본 육성 취지로 규제가 꾸준히 완화되고 있던 상황이다. 2019년 6월 기준으로 보자면 사모펀드 개수가 332개로 폭증했으며, 자산 규모 또한 460조 원에 다다랐다.

정부는 사모펀드 규제 완화로 토종 M&A 시장을 활성화하려고 했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규제 완화에 존재했던 구멍이 이번 라임 사태를 촉발한 것은 맞는 이야기다. 특히, 라임자산운용의 경우 운용전문인력 요건이 완화되며 운용 경력이 전혀 없었던 이종필 CIO를 영입하고, 마음만 먹으면 자금 돌려막기로 수익률을 조작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금융당국이 감시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았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언제든 일어날 수는 있었던 일이다.


어쨌든 이번 라임 사태로 계좌 수 기준 4천 명이 넘는 투자자의 1조 6천 억원이 넘는 투자금이 절반 이상 날아갈 판이다. 개인 고객 대상 판매액은 약 9,943억 원이며, 대부분의 투자는 은행과 증권사를 통해 이뤄졌다. 무려 88%. 서울 강남구 반포동의 한 유명 단지 인근 모 증권사는 1,50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기까지 했다.


투자에 대한 모든 책임이
늘 투자자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투자 행위를 하며 '투자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자신에게 있다'는 문구가 적힌 상품 가입서에 서명한다. 어쨌든 투자 결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자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가지 경우에 이런 상식은 성립될 수 없는데, 하나는 자금을 운영하는 주체가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금을 유통하는 주체가 불완전 판매를 했을 경우다.


알다시피, 라임 사태는 위 2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된다.


냉정하게 볼 때, 헤지펀드와 같은 고위험, 고수익 금융 상품은 시장에 필요하다. 하지만 투자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돌려주는 것이 운용사의 기본 윤리라고 했을 때 이를 지킬 수 없는 펀드 운용 방식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게다가 펀드의 수익률로 제시된 수치는 'A라는 신규 펀드를 조성한 후 투자를 받고, 그 돈으로 손실이 예상되는 B 펀드에 메워 기존 투자자에 이자와 배당금을 지급'하며 가려져 왔다. 5~7%의 수익을 미끼로 이뤄진 '폰지 사기'가 이것이다. 펀드 구조상 비유동성 자산에 투자하면서도 개방형 구조로 자금 유출입이 가능한 상품이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펀드 운용상의 불법과 사기 혐의가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라임만 잘못한 걸까? 해당 펀드를 유통한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까? 자산운용사가 은행과 증권사에 판매 위탁을 요청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은행과 같은 조직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은행과 같은 유통 채널은 본사에서 판매 결정을 하는 순간부터 판매원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취급하고 판매하는 상품의 속성과 리스크는 판단하고 있어야 한다.


비이자 수익이 필요한 은행
항상 존재하는 판매 리스크

우리나라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와 같이 법적으로 은행이 투자은행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고객의 예치금을 기반으로 한 보관료가 주된 수익처다. 하지만, 매출이나 실적 상승이 필요하기에 이에 대한 수단으로 수수료 기반 금융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2019년 7월 기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판매 잔액 5조 7천억 원 중 은행 판매분은 약 2조 원으로 34.5% 수준이다. 전체 사모펀드의 은행 판매 비중이 7% 수준인데, 이번 펀드는 이를 엄청나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금리도 낮아 고객 예치금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사모펀드를 통한 자산관리 수익이 은행 세전 이익의 11%를 차지한다니, 안 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라임운용자산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D증권사의 경우, 이런 초고위험 상품을 예금만큼 안전한 상품이라고 소개하며 판매가 진행됐다.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 투자자들은 사모펀드라는 사실도 모른 채 손실 가능성에 대한 위험성 고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무조건 투자자의 책임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다.

DLF와 마찬가지로 투자자 피해 보상이 진행돼야 마땅하다 (출처: 연합뉴스)



최근 여러 금융 사고들이 벌어지면 나타나는 몇 가지 모습이 있다. 법적으로 투자자 책임으로 모는 모습, 지금 상황을 무마하려 거짓말을 하는 모습, 나는 몰랐다며 은행권이 발 빼는 모습(그럼 투자자도 몰랐는데 어떡하라는 건지). 결국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는 기존 완화 목표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재규제에 들어가고, 투자금도 줄줄이 환매가 진행되고 있다. 성장통이라기에는 너무 쓰라린 라임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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