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개
현충탑에 새겨진 건립취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곳 현충탑은 꽃다운 청춘을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그 숭고한 넋을 위로하고 가신님들의 애국충정을 기리고자 1972년 8월 15일 시민의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초개’란 풀과 티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쓸모없고 하찮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자신의 생명을 풀과 티끌처럼 가벼이 바치다니! 이 얼마나 기막히고 이상한 표현인가 싶었다. 전쟁 속에서 꽃다운 청춘들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기꺼이 바쳤다는 숭고한 의미이겠지만. 가정을 꾸린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한 아버지의 딸로서 가슴이 아프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나섰을지, 또 그들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지.
기리다
수봉공원에 세워진 여러 ‘비’와 ‘탑’은 그들의 업적과 정신을 칭찬하고 기억하는 ‘기림’의 표상. 가볍게 산책을 하며 수없이 마주쳤던 이 탑과 비를 이렇게 올려다본 기억은 없다. 어디까지 솟아 있는 것인가. 그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켜켜이 쌓여 거기까지 솟았나. 오늘을 사는 우리의 마음이 그들에게도 가 닿기를 바라서 하늘까지 솟았나.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 탑이 되었다.
이름 세 글자 새겨 넣음이 뭐 그리 대단한 보상일까마는.
그 이름 세 글자 손으로 만져 입술 끝으로 읽어내면, 다시 사람으로 온다.
사람이 오면, 그의 세상이 오고, 그의 세상이 나에게 옮아오는지도.
사람과 세상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사람이 탑이 된 이유.
지키다
그들은 가족을 지켰고, 이웃을 지켰다. 그래서 나라를 지켜냈다. 그런데 그들 자신은 지켜내지 못하였다. 지켜진 것들은 일상을 산다. 지켜진 일상이 무너져내리지 않을 때까지는 그들이 또 얼마간 잊혀질 지도 모를 일이다.
공원을 오가며 그들을 ‘지키자’.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얼굴을 들어 서로를 ‘지키자’.
수봉공원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우리의 일상을 ‘지켜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