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느 날 의 짧 은 일 기
한때 무대에 오르는 사람을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연극을 하는 사람이었다. 관객이 객석에 앉아있으나 쏟아지는 조명 때문에 그들의 반짝이는 두 눈을 알아채지 못하고, 모든 게 끝난 뒤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가 되어서야 그들의 존재를 온몸 가득 차오르도록 들이키는 사람. 나는 오만하게도 그렇게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부끄럽다. 짐작컨대 내가 무대에 오른다고 해서 나에게 눈길을 주는 관객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도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철없던 나는 연극을 꿈꾸며 성인이 되었고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 나름대로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연극을 하고 싶어서 발버둥 친 3년은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재능으로 거대한 꿈을 꾸었는지 조금씩 깨달아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악착같이 무대에 남아있으려고 행패를 부리다가, 3년이 지난 어느 날 내가 끔찍한 배우라는 걸 인정하고 순식간에 모든 걸 포기했다. 포기하는 건 놀라울 정도로 쉬웠다. 연극을 그만두자마자 우울이 몰아쳤는데 부끄럽지만 그때는 정말로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당시 제일 가까웠던 친구는 나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연극을 이야기할 때마다 내 눈이 반짝반짝 빛났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그래서 걱정이 된다고. 친구의 걱정처럼 우울증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한동안은 연극과 뮤지컬을 보러 다니지 못했다. 객석에 앉아있는 순간 내가 과분하게도 저 자리를 탐냈던 시절이 떠올라 죽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무대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그 위에 오르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온 마음 다해 사랑해 왔는데, 연극을 포기했던 그때는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마저 부끄러웠다.
많은 시간이 흘러 인생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지금, 나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플 것도 없다. 나는 다시 연극과 뮤지컬을 보러 다닌다. 페스티벌에 도전하고 레이디 가가의 코첼라 무대를 돌려 보고 무대 위에서 마음껏 끼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 행복해한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참을 수가 없다. 그들의 재능을 나만 알고 있는 것이 분하여 멀리멀리 퍼트리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유튜브 링크라도 불쑥 던져놓아야 속이 시원해진다.
너무 잘하지, 천재 같지, 눈물나지. 신이 난 내가 그들의 무대를 틀어놓고 감탄하면 가끔 '나도 저 사람처럼 재능이 넘쳤으면 좋겠다' 라는 답이 돌아올 때가 있다. 기억나지 않는 어떤 날도 그랬다. 나도 저 사람처럼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말하는 누군가의 얼굴이 슬퍼 보인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왜 그들의 재능을 바라지 않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감히 무대를 꿈꾸었던 시절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무대 위 별들의 재능을 원했던 적이 없다. 질투했던 적이 없다. 그건 그들의 고유한 것이고 나는 나와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다면 망설임 없이 그들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무대 위의 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넘치는 재능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애정하는지. 무대를 꿈꾸었던 시절을, 무대를 포기하고 절망했던 순간을, 무대를 지나쳐 나의 길을 가는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건, 내가 무대 위의 별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그 마음이었다. 오직 그거 하나였다.
인정하기 민망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이 굉장히 많다. 연극과 뮤지컬에 어마어마한 돈을 썼고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에 매년 빠짐없이 참석한다. 외국 밴드의 내한 공연을 가기도 하고 처음 보는 댄서의 춤에 홀려 유튜브를 몇 시간 동안 보기도 한다. 좋아하는 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밴드, 좋아하는 댄서, 좋아하는 뮤지컬, 좋아하는 연극, 이런 건 너무 많고 많아 손에 꼽기가 힘들다. 무대를 꿈꾸었던 시절, 공연을 보러 가면 무대 위 배우들에게 푹 빠져 분석 같은 건 애진작에 포기했을 정도다. 감히 그들을 판단할 수 없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단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그들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그들은 그냥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철없던 나는 그들의 반짝이는 눈을 볼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너무 사랑했기에 그들처럼 되고 싶었고 그들의 일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무대를 포기한 지금, 객석에 앉아있는 나는 무대 위에서 숨 쉬는 사람들을 보며 여전히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을 부여잡는다. 그리고 내가 무대에 오르지 않더라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변함없이.
얼마 전 처음으로 간 락 페스티벌에서 나는 빛나기 위해 태어난 자들이 무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그들은 두말할 것 없이 압도적인 스타였다. 어마어마한 재능에 입을 벌리고 무릎을 꿇게 되는 순간이 좋았다. 하고 싶은 걸 잘하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날뛸 때 나도 모르게 숨을 꾹 참게 되는 순간이 황홀했다.
페스티벌에서 알게 된 한로로는 음색과 가사 그리고 자그마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페스티벌이 끝난 후 찾아본 그의 데뷔 일화는 대충 이랬다. 음악이 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소속사에 연락을 시도했던 그는 회사에 데모곡을 보낸 뒤 연습생이 되어 2022년에 데뷔했다. 그리고 2025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에 섰다. 그의 데뷔곡 <입춘>은 충격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는 노래하기 위해, 무대에 서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런 사람들의 관객이 된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웠던 시절에는 좋아하는 것들을 걷어내면 '진짜 나'는 없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들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말도 너무 오래 들어왔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어온 그 말에 이제는 아니라고 당당히 응수할 수 있다. 별들의 모든 순간은 내가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뿐만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나라는 사람을 이루어냈다. 나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별들과 나의 합작이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무대 위 스타들에게 구원받았던 순간들이 조각조각 꿰매진 패치워크나 다름없으니까. 중학교 때 처음 알게 된 어떤 뮤지컬 배우, 고등학교 1학년 때 푹 빠져 있었던 어떤 가수, 23살 때 갔던 어떤 밴드의 내한 공연, 2025년의 락 페스티벌 등등.......나는 그때마다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사람들에게 아주 큰 빚을 지고 있다.
별들의 눈에서 꿈이 반짝일 때, 그들이 무대 위에서 진심을 다하는 것이 느껴질 때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무대 위의 그들과 하나가 된다. 이건 언젠가 무대를 꿈꾸었던 내가 모든 걸 포기한 후에도 무대 위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 공간에서 살아 숨 쉬는 별과 나의 심장 박동이 서서히 맞춰지는 그 순간을, 나는 영원히 그리워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연극 <마우스피스>의 대사를 차용했습니다.
'연극을 본다는 건 관객들의 심장 박동이 맞춰지는 일이야. 우리가 평상시에는 심장박동이 제각각 뛰잖아. 근데 극장에서는 동시에 빨라졌다가 동시에 느려져. 기쁘거나 슬플 때, 꼭 그런 감정이 아니더라도. 뭔가가 느껴질 때마다 어느 순간 우리가 지금 여기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심장 박동이 맞춰지는 거지. 그럴 때 극장은 거대한 공감 기계가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