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아웃 2> &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스포일러까지는 아니지만 주의 부탁드립니다.
친애하는 에반 핸슨에게.
나도 어딘가의 일부가 되고 싶어.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중요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당장 내일 내가 사라진다고 했을 때,
과연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을까?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주인공 에반은 사회 불안 장애를 앓고 있는 학생이다. 17살의 그는 친구가 없고 늘 혼자인 아웃사이더이자 좋아하는 여자 아이 앞에서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소심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 날 담당 의사로부터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라'는 제안을 받는다. '친애하는 에반 핸슨에게, 오늘은 절대로 근사한 날이 되지 못할 거야.....' 에반이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는 한없이 우울하고 비관적이다. 마치 죽음을 앞둔 누군가가 쓴 유서처럼. 그의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당장 내일 내가 사라진다고 했을 때, 과연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을까?'
사건은 항상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벌어진다. 여느 때처럼 등교해 평생 사람들과 연결될 수 없을 거라는 불안에 시달리는 에반에게, 학교의 문제아 코너가 등장한 것이다. 코너는 '이렇게 하면 우리 둘 다 친구가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라며 에반의 깁스에 사인을 해주고, 그 과정에서 에반의 편지에 쓰여 있는 동생의 이름을 보고 만다. 낯선 친구의 편지에 동생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 코너는 에반의 편지를 쥐고 사라진다. 그리고 며칠 후, 에반은 코너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유도 모른 채 코너의 집에 초대받는다. 코너의 가족들은 에반이 본인에게 쓴 편지를 보여주며 묻는다. '코너와 네가 정말 친한 친구였던데, 코너가 너에게 이런 편지를 쓸 정도로......너희들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니?'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관심과 애정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버린 에반의 거짓말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누군가는 에반의 거짓말을, 에반이란 사람을 비난할 것이다. 실제로 에반은 비난받아 마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러나 내가, 우리가 에반을 무섭게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는 가볍게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에반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짧은 인사조차 쉽게 건네지 못하는 에반을, 좋아하는 아이 앞에서 바짝 마른 입술로 헛소리를 쏟아내는 에반을, 그 누구와도 연결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에 쿵쿵 뛰는 심장을 부여잡는 에반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도, 당신도, 우리도 그랬으니까. 오래전 혹은 가까운 미래에 그런 순간을 겪었거나 겪어나갈 예정이니까.
어린 나는 에반처럼 소심하고 불안이 많은 사람이었다. 태생적으로 그랬다. 나의 이러한 본성을 잘 보여 줄 수 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설명하려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세상이 도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도 전이었던 시절, 잠들기 위해 홀로 누워있던 나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 나도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끝없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울었다. 죽음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죽은 뒤 블랙홀처럼 끝없는 어둠이 펼쳐질 것을 생각하면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어린 나는 그 이후로도 종종 죽음을 생각하며 밤마다 눈물을 훔치곤 했다. 물론, 죽을까봐 불안해 운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이렇게 불안과 겁이 많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학교라는 무시무시한 세계에 뛰어든 내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뻔할 듯하다. 나는 학교에서 수많은 인연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 충만한 애정을 얻었지만 충만한 불안 역시 얻었다. 내일의 등교가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친구들의 연락이 오지 않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불안해하고, 어른을 찾아 상담을 받고......모두가 그랬듯, 파란만장한 학창 시절을 거치며 나는 어른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소한 한 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에 속절없이 휘청거리던 내가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사춘기란 원래 그런 것이다. 숨어있던 모든 불안이 튀어나와 한꺼번에 폭발하는 시기. <인사이드 아웃 2>의 주인공 라일리의 사춘기가 시작되는 순간, '불안이'를 포함한 새로운 감정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인사이드 아웃 2>의 불안이는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부터 라일리를 지키는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수많은 비극을 상상하고 그 비극으로부터 라일리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라일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 그녀는 사실상 <인사이드 아웃 2>의 메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상의 나라' 속 '베개 성'에서 모니터 너머로 추방된 기쁨이를 향해 경고하는 불안이의 얼굴은 공포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결국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폭주 상태에 다다른 불안이는, 멈출 수 없는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불안이는 미련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끝까지 감상한 우리는 불안이를 미워할 수 없게 된다. 불안이의 모든 행동은, 단지 그녀가 라일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벌인 일이었으니까.
자신이 애써 만들어낸 새로운 라일리의 자아가 '난 부족한 사람이야'를 외쳤을 때, 불안이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스친다. 이렇게 부정적인 자아가 만들어질 거라고는 불안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던 나는 그런 불안이의 반응에 울컥해 눈물을 닦아야 했다. 매일, 매 순간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가 들려오는 나에게는, 그랬기에 나의 불안이 지독히도 미웠던 나에게는 새로운 깨달음이 닿는 순간이었다. 나의 불안이 사실은 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는 게, 그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슬펐다.
<인사이드 아웃 1>에서 주인공 기쁨이는 슬픔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며,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체득한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자신이 라일리를 지키기 위해 먼 곳으로 날려 보냈던 부정적인 기억들 역시, 라일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는다. 기쁨이의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는 새삼스럽게 배운다. 부정적인 감정도 부정적인 기억도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진리를. 시종일관 '난 좋은 사람이야!'를 외치는 완벽한 자아라는 건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모든 긍정적이고 부정적이며 엉망진창인 신념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다.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우리다.
영화 후반부에서 라일리는 불안 발작을 겪는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내 심장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며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순간이다. 모두가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불안 발작을 지켜보던 나는, 우습게도 이 타이밍에 라일리의 친구들이 멋지게 등장할 거라 예상했다. 짠하고 나타난 그들이 라일리의 등을 토닥이며 라일리를 진정시켜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인사이드 아웃 2>는 나의 빈약한 상상력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라일리를 불안 발작으로부터 구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라일리 본인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라일리의 불완전한 자아를 안아주는 건, 라일리의 모든 감정들이었다. 라일리는 그렇게 발작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 순간의 공기를, 벤치의 감촉과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을 소중하게 훑으며 스스로 '기쁨'을 느낀다. 감정들은 라일리가 기쁨을 필요로 하는 순간을 만끽한다. 감정들의 다정한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라일리, 우리는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너를 사랑할 거야.'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에반이 불안증세를 극복하고 세상으로 나가게 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네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진심을 통해 에반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그렇게 단단해진 자신을 믿고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렇듯 '네가 어떤 사람이어도 너를 사랑할 거야'라는 메시지에는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잠재우는 힘이 있다.
<인사이드 아웃 2>가 라일리를 위로하는 방식 역시 동일하다. 단지 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라일리의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라일리 본인이 되었을 뿐이다. 라일리의 감정들은 라일리를 위로한다. 라일리는 라일리를 위로한다. 그 장면을 감상하던 우리는 우리 역시 우리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난 네가 어떤 사람이어도,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할 거야.'라고 언제든지 속삭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고 싶다. <인사이드 아웃 2>는 나에게 심리 상담 혹은 치료에 가까운 기능을 하는 영화였다. 나는 이제 안다. 나의 불안이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나를 지키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이제는 내가 나의 불안을 소중히 여길 때가 되었다는 것을. 불안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불안이를 소중하게 안아줘야 한다는 것을. 불완전하고 엉망진창인 것도 모두 나이며,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나를 사랑해 주고 나를 떠나지 않을 영원한 존재는 세상에 단 한 사람, 나뿐이라는 것을.
완벽한 자아란 없다. 완벽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그동안 엉망진창이었고, 지금도 엉망진창이며, 앞으로도 엉망진창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불안해 견딜 수 없는 어느 날에는 오늘의 엉망진창을 안아주며 이렇게 편지를 써보자. 친애하는 나의 불안에게. 나는 네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알아. 네가 무엇을 위해 애쓰는지도 알아. 그래서 죽는 날까지 너와 함께 해야 하는 여정이, 이젠 더 이상 두렵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