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의 날
전화벨이 울렸다.
"응, 엄마"
잠이 깨질 않았다.
"국화야"
"응, 엄마 무슨 일 있어?"
"정연이 이모가 죽었데..."
거짓말 같았다. 전날, 해나의 병문안을 다녀오면서 정연이 이모네 집 앞을 지나가다 이모를 만나는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길을 가다가 만나면 '우리 집 얘기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려야지. 라던가 '본 떼를 보여줘야겠어.'라고.
살면서 엄마가 우는 모습을 딱 3번 본 적이 있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보다, 처음 겪는 사회생활의 텃세에 상처 받았을 때보다, 내가 엄마를 가장 속상하게 만들었을 때보다 엄마는 서럽게 우셨다.
그 울음이 너무 서러워서 휴대전화기를 타고 온 엄마의 울음소리가 내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내가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 "언니" 하며 엄마를 곧잘 따르던 정연이 이모는 엄마와 한 번씩 오해로 인한 냉전기를 가지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잠시 서로를 위한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가을과 겨울 사이 즈음, 몇 차례 이모네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에도 이모의 막내딸인 주영이로부터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정연이 이모와 연락이 닿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엄마는 이모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며 답장이 오지 않는 휴대폰 액정을 보며 근시의 시력으로 더듬더듬 안부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도 이모의 묵묵부답이 답답했는지 몇 번이고 이모네 집 주변을 서성거렸다. 어떤 날은 다른 어른들의 이야기 소재 거리가 되어 정연이 이모께서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근거 없는 소문들이 들리기도 했는데 나는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그렇게 길어진 냉전기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침체기를 달렸다. 정연이 이모는 병원에서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언니들에게 짐이 될 것을 염려해 그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후회와 죄책감으로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는 선택할 수 있었다. 용서의 순간들을. 그리고 찾아갈 수 있었다. 마주할 수 있는 날들 속에서.
나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