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리뷰
뇌 속에 외국어 중추가 하나 빠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버리고 살았다. 노력해도 잘 안되니까 그냥 포기해버린 거면서 그렇게 이유를 달아 스스로를 납득시켜 버린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_한국어에 상처 받은 이들을 위한 영어 수업>은 망치로 여러 번 나를 때린 책이다.
나에겐 너무나 낯선 바이링구얼리즘.
단 한 번도 영어로 생각해보지 못한 나는 사실 상상도 잘 안된다. 영어를 눈으로 읽고 머리로 해석을 겨우 해내는 나에게 입 밖으로 영어를 내뱉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다. 외국에서 영어를 알아들어도 제대로 대꾸를 못해 옆사람 옆구리를 찔러 대신 대답하게 하는 이상한 대화를 해온 나에게 바이링구얼리즘은 너무나 신세계였다.
왜 미드나 영드를 보며 그들의 유머를 한 템포 늦게 이해했는지, 내가 구사한 문법적으로 얼추 맞는 말들을 왜 그들은 왜 이해를 못하고 어깨를 으쓱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이 책은 영어공부에 대한 책이 아니다. 모국어를 한국어를 가졌지만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무수히 많은 말들을 보고 듣고 하며 살아온 우리를 꼬집는 책이다.
살면서 "뭘 잘했다고 울어?"를 한 번도 못 듣고 자란 한국인이 있을까?
심지어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써본 적이 있다. 그렇다. 작가가 의문을 품었던 그 지점에서 나 역시 같은 맥락으로 아이에게 그 말을 해댔던 것이다.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책망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물어보는 형태인 것. 작가의 영어적 뇌가 찾아낸 이 이상한 논리를 우리는 평생 여러 번 듣고 자란 셈이다. 심지어 그것이 이상하거나 억울하다고 느끼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작가는 이 말이 이중 의문문으로 구성되지 않고 충돌한다고 지적한다. 너는 잘한 일이 없으므로 울 자격 또한 없으니 울음을 그치라는 의미의 말은 위로를 바라는 아이에게 얼마나 냉정하고 잔인한 말인가.
좋고 나쁨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복잡한 말들에 쌓여 내 아이의 진심을 놓치고 나의 마음 역시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살 뻔했다.
나도 '기분 kibun'을 내 감정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던 적이 많다.
'정'이라는 말에 마음이 약해졌던 적도 많다.
시제가 맞지 않다는 교정교열자의 지적을 받고 이대로도 이해되는 말을 굳이 왜 그렇게 써야 하는지 따졌던 적도 있다.
구체적이지 않은 표현을 이해하려고 내 감정과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적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시도 아니면서 이중삼중의 의미를 내포한 말을 남자 친구에게 해댔던 일은, 잊고 싶다.
한참이 지나서야 내 기분이 정확히 이것이었다고 깨닫고 울었던 일은 얼마나 다반사인가.
어젯밤, 아이에게 무심코 말해 보았다.
"...정이 없네."
아이는 정확히 이렇게 이야기해줬다.
"엄마 왜? 내가 사랑한다고 한 게 부족했어?"
작가는 책에 이렇게 썼다.
"'정 없다'는 말은 뭘 달라는 얘기인 것이다. 내가 하지 않은 말을 알아달라는 얘기고, 나조차도 모르는 내 신호를 최대한 선의로 해석해 달라는 얘기다.. (중략)"
오늘 아침 짜증 내는 아이에게 화가 나 말했다.
"왜 엄마 무시해? 엄마는 그렇게 짜증 내도 되는 사람이야?"
아이는 대답했다.
"그게 아니야. 엄마가 먼저 짜증스럽게 물었잖아."
나는 고작 열 살 아이에게 무얼 원하며 저렇게 질문을 해댄 걸까.
이 책을 만나 내 언어생활에 어떤 큰 변화가 있다는 찬양을 하기엔 이르다.
다만 그렇구나, 이렇게 다르구나, 그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를 깨달으며 나와 아이 사이에 말로 인한 오해가 쌓이지 않게 되길 바란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 볼 수 있으리란 생각까지.
이 책은 영어와 한국어의 간극이 아닌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쌓인 한국어의 수많은 모순에 대한 이야기다.
p. 24
눈치라는 것은 너무 많은 사회적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이어서 이제 사회화를 막 시작한 어린이에게는 버거운 과제였다.(중략) 그래서 눈치가 빠르고 분위기를 잘 읽는 사람을 항상 부러워했다. 다리를 뻗을 자리인지 아닌지 척 보면 알고, 누가 자기에게 우호적인지 사실은 비밀스럽게 미워하고 있는지 척척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을 친구로 얻으면 편안하고 자신감이 생겼다.(중략) 말이란 하는 사람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믿으며 눈치의 시험장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 최선인지 모른다.
p. 84
누가 개떡같이 뱉어놓은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을 필요도 없고 반대로 꼭 찰떡같이 말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스스로에세 먼저 질문한 다음 물어보면 된다. '지금 이 발화를 시작하려는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일까'라고.
p. 106
현상에 이름이 붙고 진단이 따르고, 그 언어를 통해 바깥과 연결되는 경험은 거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누구도나를 도울 수 없을 때 나조차 나를 돕는 데 관심이 없을 때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하는 일은 아주 작은 데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외부의 말로 붙은 이름을 배우는 것, 그 이름을 통해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아는 것.
p. 114
감정을 언어화하고 더 나아가 두 단어를 오가며 그 감정의 스펙트럼을 시험해보는 일은 당신의 마음에, 그리고 우리의 소통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p. 143
말이, 언어가, 대화가 거기에 필요없는 감정을 끌어온다면, 오늘부터 바로 인지하고 분류하는 연습을 해보기를 권한다. 생각 외로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