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중앙은행들이 전례 없는 긴축에 나섰다. JP모건 신흥시장 지수(JPMorgan GBI BM index) 기준으로 실질금리(기준금리 - 기대 인플레이션)가 3%를 넘어서며 2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05년 이후 처음 보는 수준이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변화 속도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마이너스 4%까지 떨어졌던 실질금리가 불과 2-3년 만에 플러스 3%로 완전 뒤바뀐 것이다. 말 그대로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셈이다. 이는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경제성장보다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이런 극단적 금리 정책 전환의 배경에는 2021-2022년 글로벌 인플레이션 대란이 있다. 팬데믹 초기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쏟아부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물가가 폭등했다. 특히 신흥국들은 선진국보다 인플레이션에 더 취약한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브라질, 터키,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들은 한때 연 두 자리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자국 통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수입 인플레이션 압력이 극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은 '경제성장이냐, 물가안정이냐'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신흥국들은 미국 연준보다도 더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실제로 많은 신흥국들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 인상을 시작했고, 인상 폭도 더 컸다.
높은 실질금리가 신흥국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자산별로 극명하게 갈린다. 신흥국 주식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높은 실질금리가 기업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성장률 둔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신흥국 채권에는 기회가 열렸다. 실질금리 3%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확실한 실질 수익률을 보장한다. 특히 현지통화 표시 국채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 통화 리스크도 과거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높은 금리가 외국 자본 유입을 촉진해 신흥국 통화 안정성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던지는 투자 전략상 시사점은 네 가지다.
첫째,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높은 성장률에만 매료되어 물가 불안정성을 간과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둘째, 중앙은행의 정책 우선순위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이제 신흥국들도 성장보다 물가 안정을 우선시한다. 이는 투자 환경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셋째, 국가별 개별 분석이 필수다. 신흥국 내에서도 인플레이션 대응 능력에 따라 차이가 크다. 모든 신흥국을 하나로 묶어 투자하기보다는 개별 국가의 펀더멘털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는 점이다. 실질금리가 20년 최고치라는 건 향후 하락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가가 안정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다시 완화 사이클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때가 진짜 기회일 수 있다.
신흥국들이 경제성장 포기하고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걸 보니, 이제 '고성장 고위험'에서 '저성장 저위험'으로 패러다임이 변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