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친구들과약속을 잡지 못했다. 지난 달에는 오랜 친구였던 K의 결혼식에 가지 못해 미안함을 담아 축의금만 두둑히 보냈고, 설 연휴에는 주변식당이 모두 문을 닫아 회사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새로운 걸 배워볼까 하고 학원이나 모임을 알아보는 순간은 늘 설렘을 준다. 그렇지만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의 일정표를 찬찬이 살펴보고, 나의 교대근무 스케줄을 번갈아 보다보면 금새 시무룩해지는게 일상다반사.
간혹 직장인들을 위해 평일 저녁에 열리는 클래스나 모임들을 보면 입맛이 더 쓰다. 나는 직장인 아닌가... 정기적인 모임과 약속이 불가한 나는, 직장에 매여 있는 여타 회사원들과는 다르게 더 꽁꽁 묶여있는것 같다. 그렇게 기존의 관계는 옅어지고 새로운 기회들은 손도 뻗지 못하고 스멀스멀 사라진다. 교대근무자에게 자신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자유는 없다.
일요일에도 일하세요?
아... 네, 제가 교대근무를 해서...
소개팅 상대에게 교대근무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상대의 눈에 염려와 난감함이 비친 것만 같다.
나의 자격지심일까 하고 자격지심을 느끼는 순간.
교대근무, 몸에 엄청 안좋다고 하던데... 괜찮아요?
(당연히 안 괜찮죠!)
(하지만,지금 당신에게 위로나 연민을 바라지는 않아요... 위로를 받더라도 지금 받고 싶지는 않다구요!)
생각보다 괜찮아요. 야간에는 특별한 일 없으면 조금 쉴 수도 있고... 할 만해요. ^^
자연스럽게 다른 대화주제로 넘겨볼 찰나에 피곤해 보인다는 걱정을 해주신다. 그리고 여지없이 어떻게 교대근무가 이뤄지는지 질문도 들어온다. 그렇게 나는 ‘나’가 아닌 ‘교대근무자’로 상대와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카페에서 상대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다. 변형 3조4교대는 어떤 식으로 스케줄이 짜지고, 휴가는 어떻게 내는지. 나름대로 장점(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조용한 도시를 걸을 수 있어요)도 있다고 말하다보니, 교대도 괜찮다고 설득한 것만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솔직한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건데...
‘월급이란 젊음을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이혁진, 『누운배』 (한겨레출판)
직장인들의 숙명을 잔인하게 묘사한 문장을 보며, 나는 섬뜻한 공포를 느낀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남들보다 더 빨리 젊음을 잃으니까.
잘 들어가셨죠? ¹
소개팅 상대에게 보낸 메시지의 1이 사라지지 않는다.
차인걸까? 나눴던 얘기들은 교대근무가 절반뿐인데...
하고 싶은 얘기들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별로 보여주지 못했는데...
내가 교대근무해서 그런가? 아웃사이더로 받아들여졌나?
이 모든 책임을 교대근무 때문이라고 묻는 건, 너무 손쉬운 생각이겠지만... 그러고 싶다. 상대가 날 거절한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 스스로가 작아지고 문제인식을 느끼는 이유는 명확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