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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시진 Jun 12. 2024

암으로 가는 단계가 있는데요.

늘 그렇듯 시간이 참 빠르다. 

지난 검진을 받은 지 6개월이 지났다.

여성이라면 정기적으로 받는, 자궁경부암 검사다.


나는 HPV가 감염되어 있어 특히 6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으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은 상태였다.


'6월에 하면 되겠네.'


먼일일 줄 알았던 6월이 어느새 다가와있었다.

문자가 오지 않았더라면 잊어버리고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지난 검사에서도, 국가검진에서도 약간의 염증성 반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러다가 괜찮아지겠지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검사를 받은 지 일주일 뒤.

전화가 아닌 문자로 '병원에 내원해 주세요.'라는 연락이 왔다. 

그 안에는 '저등급의 편평상피내병변'이라는 결과가 적혀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름에 곧장 전화를 걸어 차분히 내용을 물었다.

그러자 전화를 받은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자궁경부암으로 가는 단계가 있는데요... 일단 자세한 건 내원하셔서 선생님이랑 얘기해 보시는 게 좋으실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두면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세포가 발견됐다는 뜻이었다.


마침 기차에서 연락을 받은 나는 참담한 기분이 들어 눈물이 나올뻔했다.

암은 아닌데, 그 단계에 있다고? 


일단 최대한 빨리 병원에 예약을 잡고 서둘러 방문했다.




자세한 건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어요.


항상 인자한 얼굴로 날 반겨주시던 선생님은 그날도 같은 표정이었다.


지난번 검사의 결과를 토대로 예측해 보건대, 가장 나쁘면 이미 암이 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간단한 치료로 끝나는 단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최악의 경우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울음을 터뜨려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아무튼 생전 처음 조직검사를 받게 되었다.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따끔했다.

그리고 배에 살짝 힘이 들어가면 아려오는 느낌을 받고 있지만, 사실 내 속이 더 쓰렸다.


건강관리를 잘하지 못한 내 탓인가? 

아니면 몸속을 활개치고 다니는 바이러스 탓인 건가? 


암 보험을 들면서 '걸리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 보험 약관을 들여다보며 '이걸 받는 날이 올 수도 있는 건가.' 하는 이상한 감정도 들었다.




할 수 있는 건, 똑같아


처음 문자를 받은 날 많이도 울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울었다는 사실을 주변인은 모른다.

고민을 선뜻 나누는 건 내게 꽤 힘든 일이기도 하고, 아직 결과도 모르는데 말해서 뭐 하나 싶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결국 이거였다.

내가 아파도, 아프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건 똑같구나.


설령 정말 자궁경부암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생존할 확률이 더 높다.

비록 아프고 힘든 시간을 버텨야겠지만 그 또한 지나갈 것이고,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지금 준비하고 있는 많은 일들을 마냥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오늘 할 일은 충실하게, 내일은 조금 더 건강하게.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암이 아니라도, 답은 똑같았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영양제를 늘렸다는 것 정도...? 


아는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건강하기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나는 그 말에 강력히 동의한다.


제발 무사히 지나가길.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킬 수 있길.


이번 일주일이 굉장히 느리게 지나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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