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썬 IS FREE!
2018년 4월 28일 ~ 5월 2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40유로짜리 버스를 타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이동했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육로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유럽에서는 흔하디 흔한 일이지만 세계지도에서 보일까말까한 작은 한반도, 그마저도 반토막이 나버려 갇힌 섬이 되어버린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이또한 은근히 설레고 긴장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간중간 버스가 정차할때마다 혹여나 배낭이 분실되지는 않을까 짐칸만 노려보고 있어야 했던것만 빼면 버스여정은 아주 편안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호스텔에 도착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했던 일은 이른 아점 이후로 굶주려온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검색할 힘도 없어 호스텔 주인분께 여쭤봤더니 마침 집으로 가려던 길이니 이 동네에서 핫한 레스토랑에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처음으로 맛본 포르투갈 음식은 스페인 음식보다는 훨씬 내 입맛에 맞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요리는 팥죽에 빠진 갈비찜 비스무리한 것이었는데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그 뒤로 먹어보지도 못했다. (아쉽게도 사진은 고장난 외장하드 속에 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옮기고 리스본 시내로 향했다. 전날 버스속에 장시간 구겨졌있었던 내 몸뚱아리에 혈액순환이라도 해줄겸 버스를 타는 대신 천천히 걸어가고 싶었다. 그런 나를 광훈이가 뒤따라 왔고 우리는 뜨거운 땡볕 아래 5키로정도 되는 거리를 걸었다. 그 한시간 동안 나눴던 대화가 나는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좋은 학벌에 전문 자격증까지 있는 이 친구는 내가 봤을땐 그저 앞길이 창창한,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20대 청년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앞으로가 두렵기만 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만 하며 앞만보고 달려왔지만 지금 앞에 놓여진 미래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럼 무얼 하고 싶으냐 물었더니 또 딱히 다른 하고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며, 그래서 더 답답하다는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속마음을 내게 털어놨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거야. 나도 내가 살아온 삶이 원했던 방향이었다면, 혹은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알았더라면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그래도 너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잘 살아온거지, 직업이 물론 중요하지만 결코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되지만 또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어, 그냥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정도로 여기는건 어때? 네 취미와 여가시간을 풍족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대가쯤으로 말야"
나는 머리속에 생각나는 조언들을 마구 쏟아냈다. 그리고는 내가 20대 후반을 보내며 해왔던 수없이 많은 고민과 방황 끝에 내린 결론을 마지막으로 던져주었다.
"나는 인생이라는게 자기자신을 알아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게 평생 풀어야 할 숙제같달까. 근데 그게 참 존X 어려워."
광훈이가 이 말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했던 말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실 그가 내 조언에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글로 옮겨 적기에도 뭔가 꼰대스럽고 오글거리는 이 말들이 내 입에서 나왔었다니. 물론 이녀석보다 밥을 몇천그릇은 더 먹었겠지만 "설날 떡국은 고작 네그릇밖에 더 먹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벌써 인생 선배랍시고 이런 조언을 해줄 나이가 되었다는게 새삼 야속하기도 했다. 또 이렇게 훌륭한 척 해도 되는건가 부끄럽기도 하면서 그리 흥청망청 살지는 않았구나 내 스스로가 대견스럽기도 했다.
포르투갈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스페인과는 훨씬 더 다른 풍경이었다. 음, 좀 더 차분하달까? 톡쏘는 에이드보다는 커피 한잔이, 시원한 맥주보다는 미지근한 와인이 더 잘 어울리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하면 와닿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언덕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걸으며 각자의 카메라에 각자의 사진을 담아내며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은 도은이까지 함께 셋이서 버스를 타고 나와 전날과 같은 길을 걸었다. 리스본 시내가 그리 넓진 않아서 딱히 지도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금세 길을 외울 수 있었고 발길따라 걸으며 숨겨진 풍경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대망의 셋째날, 우린 새로운 동행을 만났다. 나보다 어려보였던 외모와는 달리 두살이 많은 오빠였던 김현우씨. 내 앞으로의 여행에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은 은인(?)과도 같은 인물이다. 이번 글에서는 여기까지만 적겠지만 중요한 핵심은 나는 이제 장녀 증후군에서 벗어나 철없는 둘째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차썬 IS FREE!!!!!
우리셋은 이틀 먼저 도착한 선배로서 리스본 속성투어를 시켜주겠다며 우쭐댔다. 이미 1일3타르트를 실천중이던 우리는 포르투갈에 왔으면 무조건 에그타르트부터 먹어야 한다며 벨렝(Belem)지구로 앞장섰다.
벨렝지구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포르투갈의 명물인 에그타르트가 탄생한 곳이다. 이 수도원의 수녀들은 계란 흰자를 사용해 옷깃에 풀을 먹이곤 했는데, 계속해서 버려지는 계란 노른자가 아까워 파이처럼 구워먹기 시작한 것이 에그타르트의 탄생스토리이다.
에그타르트를 포르투갈에서는 나따(Nata)라고 부르는데 이 수도원의 비법을 전수받아 1837년부터 운영중이라는 유명한 나따집(파스테이스 데 벨렝) 앞은 항상 줄이 길게 늘어져있다. 마침 비내리는 날씨 때문인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었고, 갓구은 뜨끈뜨끈한 에그타르트는 입에 넣자마자 녹아버리는 듯 했다. 몇박스씩 사가는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을 보며 "저걸 설마 한국에 가져가진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니야, 한국인이라면 가능해"라며 중얼거렸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포르투갈을 떠나 그 어떤 곳에서도 이때의 맛과 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걸 보면 나도 그때 한 박스는 먹었어야 했나보다 싶다.
우리는 그렇게 셋에서 넷이 되어 남은 포르투갈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 차썬의 더 자세한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https://linktr.ee/chassu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