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아닌 고양이니까 #09
다름이가 집으로 오기 전까지, 무려 3년 정도를, 여름이와 아름이가 방 문을 쉽게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화장실이 닫혀 있다고 애들이 문을 열지 않았으니까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다름이 존재를 알게 된 후, 화장실 문을 자꾸 열려고 하는 덕분에, 다름이를 화장실에 격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 부랴부랴 방묘문을 구매했다. 철장으로 된 것은 윗 공간 때문에 애들이 쉽게 넘나들 수도 있으니, 이왕이면 전체를 다 막을 수 있는 매쉬망으로 된 방묘문을 설치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화장실 문이 열리더라도 방묘문이 있으면 서로 완전 대면할 일이 없을 테니 좀 낫길 바랐다.
고양이의 신경을 안정시켜 줄 펠리웨이 훈증기 외에 스프레이와 마따따비도 몇 개 더 구비하고, 안정제까지 먹이며 방묘문 사이로 서로를 인식하는 정도의 합사의 단계. 나쁘지 않았다. 다만 화장실이 하나인 집이라 사람들이 화장실을 쓰는 것이 불편해 다름이 격리 장소를 화장실에서 안방으로 변경해야만 했다.
안방은 여름이와 아름이의 주요 공간이기도 했고, 또 밤에 사람 옆에서 같이 잠을 자는 여름이 성격에 밤에 들어오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 또 걱정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직접 대면하게 할 수는 없는 터. 몇 주만 고생하면 다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안방에 새로운 방묘문을 설치했다. 역시나 다름이가 화장실에 격리되어 있을 때와 달리 안방에 격리하는 것은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달랐다. 아무래도 주요 활동 영역을 빼앗기는 것 같아 그랬을 듯하다. 혹시라도 새로운 냄새의 고양이라서 아이들이 더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일단 다름이를 목욕시켰다. 최소한 자기들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나면 좀 나을까 하여. 다행히 그 예상은 맞았고, 다름이의 밖의 냄새가 사라진 후엔 반발심이 좀 줄었다.
매쉬망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모습을 서로 바라보며, 가까이 있을 때 간식도 주고 놀아주기도 하면서 호기심을 가지게 하고, 그다음에 차츰 공간을 바꾸어 생활도 하다가, 조금씩 대면 시간을 가지면서 시간을 보내면 나아질 것 같은 합사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생각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양이 발톱으로 뜯을 수 없다는 광고만 보고 산 매쉬망인데, 고양이는 어디를 공략하면 매쉬망을 뜯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매쉬 부분은 단단했으나, 지퍼 부분이 약했다. 멀리서 달려와 온몸으로 뚫으면 뚫을 수 있다는 것을 며칠 동안 연구했을 것이다. 매쉬망이 찢어진 이후, 또 한 번 아이들이 마주쳤다. 안타깝게도 아주 잠깐 대략 30분 정도의 집사들의 외출이 있었을 하필 그때에. 외출 직후 아이들 잘 있나 CCTV를 봤다가 매쉬망이 뜯긴 것이다. 당장 달려갈 수 없어 마음 졸이며 CCTV만 바라봤다.
다행인 것은 세 고양이 모두 몸싸움을 크게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름이는 다름이가 움직이는 동선을 막아 서 이동하지 못하게 밀착 방어를 하고 있었고, 아름이는 근처에 오기만 해도 소리를 꽥꽥 지르기만 하고 정작 싸움은 하지 않았다. 큰 싸움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집사 입장에서는 차라리 싸움이라도 해서 빨리 서열정리를 하면 안 되겠냐고 아이들에게 호소했다. 고양이가 ‘악~~!’ 소리를 치는 것은 층간소음, 벽간소음을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큰 소음이 발생했다.
결국 철로 된 방묘문으로 교체했다. 이번엔 뜯길 일은 없겠다 생각했는데, 아름이는 방묘문의 버클을 여는 방법을 찾았고, 다름이는 점프해서 방묘문을 넘는 법을 알아 버렸다.
그래서 낮에는 다름이를 책방으로 데리고 가 아이들과 공간을 완전히 분리했고, 저녁과 밤엔 애들이 방묘문을 열지 못하게 집사들이 감시를 하며 지켜보다가 밤이 되면, 안방에 들어가 방묘문과 방문을 모두 닫고 방문을 열지 못하게 완전 잠금까지 하며 생활하기 시작했다. 밖에선 여름이 아름이가 방문을 열라고 울고, 안에서 다름이는 나가고 싶다고 문 열기를 시도하면서 새벽은 잠을 자는 건지 아이들 보초를 서는 것인지 비몽사몽의 연속이었다. 다시 또 합사를 하라고 하면 절대로 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시간이었다. 남편은 새벽에 잠을 못 자 스트레스를 받아 일주일 가량은 근처 처갓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밤마다 처갓집으로 향했다. 그나마 시끄러워도 잠을 잘 자는 내가 아이들을 보살피며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그래도 합사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부터는 소리 지르는 것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합사 4개월이 지난 요즘 비로소 완전 대면하여 지내고, 아이들끼리만 놓고 외출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합사는 끝나지 않았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고, 또 친하지 않은 존재와 한 공간에 머무는 것을 싫어한다. 차라리 고양이와 다른 종족, 그러니까 사람이나 강아지와 합사를 하는 것이 나을 정도로 같은 고양이끼리는 기싸움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아이들이 밖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다. 다름이가 처음 구조되었을 때, 뼈가 만져질 정도로 말랐던 것은 어쩌면, 밖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에게 밀려 아무것도 먹지도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애초에 사회성을 있던 아이들이라면 서열이 높아지는 것, 혹은 서열이 낮을 때 행동하는 법을 몸소 알기 때문에 생활이 어렵지 않겠지만, 고양이들과의 관계 맺음을 해보지 않은 고양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저 당하고만 살지도 모른다. 다름이가 딱 그래 보였다. 휴먼냥. 그러니까 태어나서부터 사람과의 관계만 가진 고양이로 보였기 때문에 밖에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남편을 간택해 집으로 따라 들어온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