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자동차를 타는 평범한 여자 #07
작은 차 ‘트위지’와 ‘스마트 포투’를 운행하다 보면 수많은 질문을 받는데, 많은 질문 중 하나가 “얼마나 달릴 수 있나요?”다. 이때 ‘얼마나’라는 부사는 수많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과연 ‘어떤’ 얼마나를 물어본 것일까, 상대가 알고 싶은 건 무엇일까 잠시 생각에 빠진다. 한국어에서 부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부사 혼자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진정 어려운 것일까. 부사는 꼭 무엇을 수식해야 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만약 ‘얼마나’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충전해서(주유해서) 몇 km까지 달릴 수 있나요?” 혹은 “최대 속도는 몇km인가요?”라고 물었다면 좀 더 수월하게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물어보는 사람은 ‘얼마나’ 속에 자신이 생각하는 의미 딱 한 개만 있다고 단정했을지도 모른다. 가끔 머릿속에 혼자 많은 것들을 정리한 후, 정작 해야 할 말은 다 잊은 채, 모호한 말만 내뱉는 경험은 다들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저냥 말의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해도 표정과 상상으로 때려 맞춘다. 멀리 가는 것을 좋아할까, 빨리 가는 것을 좋아할까 둘 중 하나가 답일 테니 확률은 50대 50이다.
자동차의 성능을 이야기할 때 늘 빼놓지 않고 속도와 거리가 언급된다. 대부분은 최고 속도와 제로투백이 스펙에 담겨 있고, 거리는 연비와 주유 혹은 충전 용량을 보면서 대략 가늠한다. 그리고 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최고’의 차를 사려고 한다. 다른 차들에 비해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차, 다른 차들을 앞지를 수 있는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 차, 다른 차들보다 더 오래 멀리 갈 수 있는 차. 그런 차를 선호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과연 ‘최고’가 필요한 것일까. 정작 도로를 달리면서 한계치인 제한 속도에 맞춰 안전하게 운행해야 하고, 또 앞뒤 차량의 흐름에 맞춰 적당히 달려야 하며, 장거리 운전에선 중간에 멈춰 쉼이 필요하고, 지치지 않을 체력이 중요할 뿐인데 왜 모든 것이 ‘최고’여야만 한다고 최고이길 바랄까. 어쩌면 타인과의 비교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보통’, ‘일반적’, ‘평범’의 범위에서 벗어난, 남들보다 더 ‘특별한’ 것을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흔한 것 말고 특별한 것을 찾는 것은 경쟁 사회의 구성원으로써의 본능일 수 있다.
그렇지만 바꿔 말하면, 꼭 모든 것이 ‘최고’일 필요는 없다. 보통의 범위, 그러니까 특별하지 않고 흔한 범위 밖에 있는 것들은 ‘최저’ 사양이어도 어쩌면 특별한 것이 될 수 있다. 남들과 다른 것 중 스펙이 좋은 것만 특별하다고 말하고, 스펙이 좋지 않은데 남들과 다른 것들을 좋아한다면 그건 특이하다고 말할 것은 없지 않을까. 어차피 같은 길을 달리고, 같은 거리를 가고, 같은 속도로 달려야 한다면 무엇을 타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더운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려야 하는 차, 히터가 나오지 않아 겨울엔 꼭 옷을 두껍게 입어야 하는 차, 비가 오면 비가 줄줄 들어오고, 고속도로를 달리지 못하고, 스피커가 없어 음악을 들을 수 없고, 라디오도 없고, 차 문도 안 잠기는 스펙 최저 사양의 차 ‘트위지’는 최고 속도 80km까지 달릴 수 있고, 한 번 완충하면 최대 60km 이상의 거리를 갈 수 있다.
2인승이어서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없고, 트렁크가 작아서 물건을 많이 실을 수 없고, 파킹 기어가 없어 사이드 브레이크를 반드시 채워야 하고, 정식 수입이 아니라서 서비스센터가 없고, 스티어링 높낮이 조절이 안 되고, 오토 라이트가 안 되고, 고급유를 주유해야 하는 내 ‘스마트 포투’는 최고 속도 200km까지 달릴 수 있고, 연료탱크가 대략 33L 정도이기 떄문에 한 번 기름을 채우면, 어떤 운전을 하는지에 따라 대략 400~500km를 달릴 수 있어 서울에서 부산 편도는 거뜬하게 갈 수 있다.
나는 주로 가까운 곳이나 출퇴근을 위해서는 트위지를 타고, 멀리 가거나 빨리 가야 할 때는 스마트 포투를 탄다. 두 대를 모두 팔아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좋은 차’를 살 수 없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남들의 ‘좋은 차’ 못지않게 각각의 차의 활용도에 따라 최고의 선택을 하며 운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