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들이 패폭을 알아?

물건으로 읽는 신혼일기

by 홍작


가장 힘든 시기였다.

믿고 의지했던 단 하나뿐인 동생으로부터 통보를 받고 집을 나와야 했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알바를 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써 공모전에 응모하고. 그것도 모자라 취업을 위해 매일 이력서를 돌렸다. 그러나 신은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건강 때문에 알바도 그만두고. 응모했던 공모전에선 모두 떨어지고. 어느 누구도 날 불러주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끝이 나면 좋겠다고. 요즘 말로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다음 생을 위해 이즘에서 리셋해야겠다고. 그래서 난 남은 돈으로 자살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때문에 무서울 게 없었다. 하여 마지막으로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이 공정 선거를 위한 시민들의 활동인 ‘시민의 눈’이었다.


박근혜가 탄핵이 되고.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각성과 함께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는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커지고, 이를 위해 시민들이 점조직처럼 하나둘씩 모였다. 그게 ‘시민의 눈’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처음 본 그는 까칠하고 재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마은에 들기 위해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는 의미에서 그랬다. 상냥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았다. 알게 모르게 몸에 배어 있는 사회적인 위선적인 모습이 그에겐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그러나 친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게 내가 느낀 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다음날. 언제나처럼 눈을 뜨기가 무섭게 대형 마트로 향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물건을 팔았다. 생각보다 물건 파는 재주가 있어 함께 일하는 언니들로부터 예쁨을 받았으나 전혀 즐겁지 않았다. 겉으로는 웃고 떠들고 일하고 밥을 먹었지만 내 안은 오로지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나를 깨운 게 그의 문자였다.


처음이었다. 영화를 보자거나 차를 마시자는 문자가 아닌 ‘시민의 눈’ 활동과 관련된 문자로 묘하게 관심을 표현하는 건. 그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도망칠 거리를 확보해 두고 나에게 관심을 표현했다. 그래서 조금은 다행이었다. 그랑 엮일 일이 일도 없을 거라 확신했으니까.


그렇게 시작된 문자는 아침 출근길을 응원하는 문자로 시작해 저녁에 잘 자라는 인사 문자로 끝이 났다. 그는 지금까지도 맹세코 호감이 없었다고 이야기 하지만 여자의 촉은 안다. 그가 날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내일이 없는 난 그에게 어떤 기대도 희망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궁금했다. 매일같이 문자를 보내면서도 선뜻 만나자는 말도 못 하는 이 남자가, 무엇보다 자신을 주부라고 소개하는 이 남자가 궁금했다. 마음 한편에선 유부남이 심심해서 못 먹는 감 찌르는 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꽤씸하기도 했었다.


하여 죽기 전 마지막 생각이 이 남자에 대한 궁금증이라면 곤란할 것 같아서 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남자를 초대했다. 정독에서 진행하고 있던 ‘글로 쓰는 초상화’에. 그제야 남자는 내가 글을 쓰는 작가라는 사실에 다소 놀라면서도 기꺼이 행사장에 나와 주었고. 내가 묻는 말에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면서도 또박또박 대답해 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유부남이 아니었지만 나이 든 노모를 10년째 혼자 모신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주부라고 했고. 10년째 모시느라 백수로 지내고 있다고. 그리고 시각 장애우를 위한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어쩜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보통의 결혼을 꿈꾸는 여자들이 싫어하는 말인지, 그렇기 때문에 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난 결혼을 꿈꾸지 않았으니까. 난 내일을 꿈꾸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그는 매일 연락을 했었고, 불쑥불쑥 날 찾아오곤 했다. 내가 일하던 대형마트로, 혹은 집 근처로. 우린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남자가 스토커 같아 무서웠다. 난 그의 연락을 피하며 도망쳤었다. 나중에서야 그가 연애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조금 이해가 되었지만.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해가 안 되는 경악을 금치 못 할 건 그의 패션이었다. 그는 처음 만난 날부터 우리가 사귀기로 한 날까지 오로지 한 가지 옷만 입고 나타났다. 조카 옷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고. 게다가 80년대 똥꼬 먹는 면바지까지. 마치 그는 과거에서 시간 여행을 온 듯했다. 그는 참 손이 많이 가는 남자였다. 나도 모르게 그 남자를 챙기게 되고. 나 역시 한편으로 챙김을 받으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사라졌다.


그렇게 난 이상한 남자와 결혼했다.


p.s

그러고 보니 처음이다. 내 행사에 남자를 초대한 건. 아니라고 했지만 나 역시 사심이 있었던 걸까? ㅎ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