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너 미쳤니?"

물건으로 읽는 신혼일기

by 홍작


근 이 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남자가 생겼고 결혼할 거라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대뜸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어디 아픈데 없니? 가 아니라 딸이 결혼한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그러니까 쉽게 말해 돈은 있는지, 어떤 직장을 다니고 있는지 등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 역시 나를 위함인지 일지만 난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소녀처럼 어머니가 아파할 말들로 그를 설명했다.


“나이 많은 어머니 모시고 살고. 그 때문에 직업도 없고. 앞으로 돈 벌 생각도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머니가 소리쳤다. 너 미쳤니?라고.


“아직 안 끝났어. 성당 다녀.”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어머니는 언제 내려올 거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뼈 속 깊은 가톨릭 신자였다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어머니들의 대사들.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종교는 뭐냐?”, “집안은 어떠하냐?” 그게 뭣 때문에 필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그를 만나기 전까진.


‘시민의 눈’ 종로 모임은 일요일 저녁 6시였다. 콘진원 2층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2시간 정도 선거 관련 이야기를 하고 나면 친목도모용으로 밥을 먹기 위해 자리를 옮기고는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는 매번 성당에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난 그 점이 이상했다. 본인이 원해서 나온 모임이고,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걸 잘 안다면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라도 뒤풀이에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사교(?)적인, 혹은 친목 모임은 모두 거부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와 친해지면서는 성당에 다녀와서도 꼭 모임에 참여를 하거나, 나중엔 성당에 가진 않았지만. 어쨌건 난 좀 별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모든 유혹(그라고 왜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는 게 싫었겠나?)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성당에 가는 한결같은 그를 보자 자기만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 같았다. 그는 어떤 면에선 고결했고, 또 다른 면에선 답답했고 무엇보다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일까? 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도 성당 다녔었는데.”


그래 나도 한 때는 성당을 아주 열심히 다녔다. 첫 영성체를 받고 사북으로 이사를 오면서 주말에는 성당에서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북 성당엔 아이들이 많아 재미있었다. 성서에 대한 깊은 이해나 독실한 신심이 아니라 이곳에 아이들은 적어도 날 노골적으로 싫어하지 않아 좋았다.


“그럼 같이 갈래요?”


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뇨. 제 안에 주님이 있으니 여기가 내 성당이에요.”


난 좋은 말로 거절했다. 강릉으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난 성당을 끊었다. 다니지 않다가 맞는 말이겠지만 그 당시 심정은 그랬다. ‘신은 죽었다’고 외치는 니체에 경도되어 있었으니까. 어설프게 안 지식이 내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순간이었다.


그 뒤 많은 방황과 아픔을 겪은 후에 난 비로소 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나에게 신이란 가톨릭에서 말하는 하느님이기도 하고, 부처가 말하는 깨달음이기도 하고, 우주이기도 하고, 에너지이기도 하며, 의지이기도 했다. 때문에 성당을 다니건 다니지 않건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끝없이 날 설득했다.


“성당에 같이 가면...”


“그만 하세요. 한 마디만 더 하면 당신까지 안 만날 거예요.”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난 내 안에 진짜 신과 함께 살고 있는데 자꾸 거짓 신을 믿으라고 하는 것 같아 발끈 화를 냈다. 그 후 그는 더 이상 성당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혼자 묵묵히 성당을 다녀왔다. 그런 한결같은 그의 모습에 흔들린 건 나였다. 신이 나와 함께 살고 있고 성당에 다니건 다니지 않건 중요하지 않다면, 성당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냐, 는 이상한 결론에 빠진 것이다. 결국 그와 함께 커플링으로 묵주반지를 산 날 난 미사를 보러 갔다.


성당 안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난 눈물을 흘렸다. 어릴 적 맘껏 뛰놀던 성당이 떠올랐다. 온전히 사랑받던 그 시기. 세상 어떤 풍파도 빗겨 가리라 믿었던 그 시기. 주님의 은총이 충만한 그 시기로 돌아간 것 같아 얼었던 마음이 녹는 듯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 안에 신이 함께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교만하고 건방진 건지. 난 그의 손을 잡고 비로소 나의 신에게, 그리고 나의 삶에게 무릎을 꿇었다. 나의 진짜 인생이 시작된 순간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결혼반지만은 제대로 받고 싶었다. 커다란 다이아 박힌 반지는 아니더라도 순금 반지 한 쌍 정도는 받아야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날 성당으로 이끈 그 묵주반지로 결혼반지를 대신하자고 했다. 이보다 더 큰 의미도 없을 거라고. 에라이. 예의 없는 넘아!라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서운함이 울컥 올라왔지만 난 반박하지 못하고 수긍했다. 그렇게 난 예의도 없는 이상한 남자랑 결혼했다.


p.s

종교가 필수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참고사항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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