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으로 읽는 신혼일기
벌써 몇 달째 거실 불을 켜지 못했다. 등이 나간 줄 알고 등을 바꿔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인터넷을 살펴보니 전등이 깜빡이는 건 안전등이 나간 거고, 안전등을 갈기 위해선 거실 등 전체를 다시 갈아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기술자를 불러야 하는데 낯선 남자를 혼자 사는 곳에 들이기가 두려웠다. 그렇게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몇 달이 훌쩍 지났다.
어둠 속에서 티브이를 봐야 한다는 점 빼고는 큰 불편함은 없었다. 다행히 부엌 불도 켜지고 내 방 불도 켜지니 생활은 가능했다. 그러나 불 꺼진 거실처럼 내 삶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내 삶에 그가 양말을 들고 나타났다.
“아니. 거실 등을 교체해 달라고 했는데. 웬 양말이에요?”
거실 등이 고장 났다는 말에 한걸음에 달려온 그가 현관 앞에서 주뼛거리더니 양말을 꺼냈다.
“그게.. 발 냄새가 날까 봐요.. 막 뛰어왔거든요..”
발 냄새가 날까 봐, 양말을 가져오는 남자라니. 남자는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었다. 그런 남자를 만나 본 적이 없었던 내가 당황해 하자 그가 더 용기를 냈다.
“이거 오늘 새로 산거예요!”
게다가 순수하기까지. 어쩜 이 남자에게 마음을 열게 된 건 준비된 양말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그는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양말을 벗지 않았다. 마치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큰 비밀이라도 있는 듯 잠자리에서도 그는 절대 벗지 않았다.
“답답하지 않아요? 벗어요. 양말.”
“부용씨에게 옮기기라도 하면 안 되죠. 전 괜찮아요.”
그가 감추려고 했던 건 무좀이었다. 아니 무좀을 감추려는 것보다 내가 무좀을 옮을까 봐 자신이 조금 불편해도 양말을 벗지 않은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우리 엄마나 내 동생 조차 자신들이 먼저였지, 내가 무좀에 걸릴지 말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남자 자신보다 나를 위하는 마음이 컸다. 이런 남자에게 안 흔들릴 재간이 없었다. 양말은 표현이 서툰 남편의 사랑법이었다.
이후 난 남편을 내 양말이라고 부르고, 핸드폰에 저장된 그의 이름 대신 내 양말로 저장했다.
“내 양말”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애칭으로 불러보고 저장해 본 건.
“내 양말”
처음이었다. 섬세하고 배려 깊은 사랑은.
“내 양말”
그래서 한 동안 그의 양말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내 지난 사랑, 아니 사랑이라 착각했던 관계들이 폭력적이고 일방적이었음을 그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이상한 남자와 결혼했다.
p.s
나와 함께 살면서 남편은 단 한 번도 깊이 잠든 적이 없다고 했다. 급속히 빠지는 체중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며칠 전 양말을 벗고 자라고 했다. 남편은 절대 안 된다며 날 걱정했다. 난 집안 내력을 밝히면서 내 발은 절대 무좀에 걸리지 않는 발이라고 자부했고 망설이던 남편은 잘 때만 벗는 조건으로 그날 밤 양말을 벗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의 맨 발을 발로 쓰다듬으며 이 글을 기획했다.
* 그는 김어준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