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어야만 할 수 있는 일 1

물건으로 읽는 신혼일기

by 홍작

부부의 인연을 맺으려면 전생에 8천 겁의 선연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큰 바위에 옷깃을 살짝 스쳐 그 바위가 다 닳을 정도의 세월이 한 겁이라고 하니. 100년도 채 못 사는 비루한 인생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숫자다. 8천 겁까지 가지 않아도, 45년 동안 접점 하나 없었던 남자와 한 이불을 덮고 잔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솔직히 아직도 종종 내 남자가 낯설고 어색할 때가 있었다.


내 남자가 낯설고 어색한데 가족모임은 오죽하랴. 결혼했다는 이유로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사람들과 촌수를 따지고 어떤 관계인지를 들을 때면 피곤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가족모임에 가서 가족이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뭔가 소속감이 들 때도 있다. 결혼식에서 찍는 가족사진이 그랬다.


며칠 전, 결혼식을 올린 지 1년 하고 1개월에서 3일이 지난 어느 날.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외사촌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며 그에게 말했다.


“와! 드디어 당신도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결혼사진을 찍겠네요!”


예전엔 그저 형식적이고 귀찮았던 가족행사였는데 그와 함께 하니 뭔가 다른 의미가 생겼다. 비로소 우리 가족으로서 그를 증명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조금 설레고 기대되었다.


“이미 우리 결혼식에 찍었는데요. 뭘. 새삼.”


내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했지만 그도 설레고 기뻐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니 좋은 일보다는 슬픈 일이 더 많았다. 덕분에 자주 만날 수는 있지만 새 식구인 그를 기록으로 남기거나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외사촌 동생이 결혼을 한 것이다.


결혼식은 성당에서 조용히 경건하게 진행이 되었다. 특이점이 있다면 젊은 신부님이 결혼 당사자들에게 서로에게 편지를 써 오라고 과제를 내주고, 그 내용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하게 한 것. 하여 외사촌 동생이 남편에게 울먹이며 편지를 읽는 통해 결혼식장은 모처럼 화기애애해졌다. 6년의 긴 연애 끝에 결혼하느라 맘고생이 많았던 터라 오늘 결혼이 더 기뻤나 보다. 두 사람의 애틋한 편지 읽기가 끝나자 남편이 말했다.


“결혼할 땐 누구나 저런 다짐을 하죠. 그러나 결혼하고 1년이 지나면 알게 되죠.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뭐지? 나만 아직 설레는 건가? 나만 아직 의미를 갖는 건가? 그의 말뜻을 알 수 없어 물었다.


“아무 의미가 없다뇨? 뭐가 의미가 없다는 거죠?”


“저렇게 지키지 못할 거창한 약속들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또 어렵게 이야기한다. 지키지 못할 거창한 약속이라뇨?”


“늘 사랑한다는 거.”


뭐야? 그럼 늘 사랑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어. 난 또 물었다.


“그럼 지킬만한 약속은요?”


“사랑한다는 거.”


"하, 또 뭔 괘변인지."


늘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토라져 돌아누웠다. 그러나 그 순간 깨달았다. 그건 날 사랑하지만, 날 사랑하지 않는 시간도 있을 테고, 날 사랑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을 거라는 뜻이라는 걸. 그리고 그건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그를 사랑하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는 시간도 있었고, 그를 사랑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으니까. 아니 그를 미워할 때도 있었으니까. 나도 그런데. 그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내가 다른 점은 난 그를 늘 사랑한다, 고 표현하고. 그는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며 늘 사랑할 수 없으니 그냥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그와 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다만 같은 생각을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싸우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한 생각이 든다. 이왕이면 늘 사랑한다고 넉넉하게 표현해 주면 안 될까, 하는 생각. 그렇게 난 쪼잔하고 예의 없고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


- 개인정보가 포함된 가족사진은 공개할 수는 없고. 대신 결혼 식장에서 가져온 화분으로 가족임을 증명.

매거진의 이전글#3 내 양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