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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그녀 Sep 07. 2015

눈오는 날

소녀일기 vs 엄마일기



1980년생 여자가 쓴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일기 속에서 공통된 스토리를 뽑다.





눈오는 날




87년 12월 15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그 이유는 눈이 왔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필기를 하고 있을 때 천사같이 하얀 눈이 내렸다. 눈송이들은 자기 자리를 잡아놓은 것처럼 흩어지며 내렸다. 선생님이 눈을 보시고 나가서 눈놀이를 하고 놀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다. 아이들은 발자국 놀이도 하고 눈 놀이도 하고 얼음땡 놀이도 하였다. 정말 재미있는 놀이였다.

 

1994년 12월 4
혼자 목욕을 갔다. 목욕 끝났을 때가 4시 20분.
목욕탕 아줌마가 비가 온다고 하신다. 우산을 들고 들어오는 손님도 있다.
그래서 “비가 온다구요?” 놀라서 물었더니 “비가 아니고 눈이 아주 심하게 와” 하신다.
“네에? 눈이요? 눈이 와요?‘ 나는 또 놀랐다.
목욕탕 사람 모두가 첫눈이 온다고 웅성댄다.
밖에 나오니 세상이 희다. 지붕에, 곳곳에, 눈이 쌓일 수 있는 곳은 온통 흰색이 되버렸다. 첫눈은 희끗희끗 조금만 내린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94년 겨울 12월의 첫눈은 펑펑 내렸다. 뽀득뽀득 눈이 밟힌다. 행복한 일요일 저녁. 눈이 소복이 내린 걸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다.


1990







2012. 12. 8
남편이 고이 잠든 방문을 여니 술 냄새가 난다.
화가 나면서도 문득 안도감과 고마운 맘이 밀려와 방으로 조용히 발을 들여놓는다.
남들은 매일 보는 남편, 난 일주일에 서너번 본다.
주말부부도 아닌데 주말부부로 지낸 게 2년이 넘었다. 남편은 오늘 소주가 아닌 막걸리를 마시고 잠들었다.
방안에 꽉찬 술 냄새만 아니면
벽지가 세련됐으면 좋겠
천장에 달린 촌스런 형광등이 이쁜 샹들리에였음 좋겠 휑한 창에는 앙드레김 커튼이라도 달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가 있다는 것,
삐걱대는 싸구려 침대일지언정 누워서 일기를 쓸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안락함이 채워지는 밤이다.
게다가 밖엔 샤갈 마을의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고....









 브런치 독자들에게

내린 날의 일기는 누가 써도 름다운  니다.

2015년의 첫눈은    식으 내릴까요.
작게 보면 저의 일기지만 크게 보면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이기에 케케묵은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문창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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