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chpapa 총총파파 Sep 03. 2023

죽이는 글을 쓸 자신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생각하고 있다. 아니, 글을 쓰고 싶으면 글을 써야지, 어째서 생각만 하고 있어. 물론 쓰기도 한다. 쓰고 생각하고 쓰고 생각하고. 요즘의 나는 틈만 나면 글을 쓸 생각으로 즐겁다. 누가 시키지도 바라지도 않은 일인데도 나는 계속 쓰고 생각하고 때로는 깊이 연구한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표현하는데 골몰했다. 정확한 표현에 힘을 썼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어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는 어려움도 느낀다. 그 단계로 가기에는 확실히 넘기 어려운 벽 같은 게 느껴진다.


대표적인 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그 많은 대중적 인기를 얻은 이야기들에선 반드시 사람이 죽는다. 어떤 경우엔 사람이 죽으면서 시작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사람을 죽이는 걸 오랜 목표로 삼기도 하고,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사람들이 쓸려나가 죽기도 하고, 힘을 합해 죽이는 걸 멈추려고도 한다.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 영화도 있지만 이야기가 사람을 죽이려면 그 어려운 일을 끝내 감행하게 되는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 실은 죽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죽이고 싶은 이유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 이유를 캐릭터에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작가이다. 작가는 죽고 죽이고 죽을 이유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꾸며낼 생각을 하며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작품들이 전과 달리 더욱 대단해보인다. 최근에 본 [장르만 로맨스](2021)도 그랬다. 메가 히트 소설을 쓴 뒤 7년이 지나도록 후속작을 쓰지 못하는 유명 작가. 우연히 한 작가 지망생을 만나게 되고 그가 건넨 습작을 읽고 충격에 빠진다. 뼈대 자체는 새로울 게 없다.


그런데 이 뼈대 위에서 아슬아슬한 긴장을 주고, 재미도 주고, 다음 또 그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배우 출신 감독의 연출 덕분인지 배우들의 연기도 고루 좋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 한 편을 아주 재밌게 읽은 느낌이었다. 다행히 아무도 죽지 않는다. 그래. 세상엔 죽이지 않는 이야기도 많이 있다.


신림동 행시 준비생을 담은 영화 [혜옥이](2022)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박정환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14년째 준비만 하고 입봉은 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인 영화를 만드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를 찾아서 고시생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엔 자기 이야기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지극히 평범해요. 특별할 게 없어요. 하지만 그 지극한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찾고 그 특별함을 다시 인류 보편의 정서로 엮어내는 일이로구나. 한 번 그 작업을 성공하고 나면 누구의 이야기에서든 이 작업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한동안은 계속 써 볼 수 밖에 없겠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서점과 목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