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사업의 이상한 결말
아주 그럴듯한 말로 설득력이 뛰어난 사업이 있다. 목적은 공공의 가치에 충실해 보이기도 하고, 배경 설명과 필요성이 충분하며, 실행 계획은 단계별로 정리돼 있다. 성과지표도 빠짐이 없다. 글을 놓고 문장을 뜯어보자면 통과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사업들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결말을 맞는 것 같다.
서류는 통과하지 못하거나, 밀어부쳐 보더라도 실행 단계에서 힘을 잃곤 한다. 결과에 대한 평가는 늘 “의미 있는 시도”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우연의 반복일까? 아니면 구조의 문제를 계속 외면한 결과일까?
예쁘게 잘 뽑아낸 그럴듯한 서류상의 사업들의 공통점은 대개 문서의 완성도가 현장의 감당 능력을 초과한다는 점이다. 대상은 많고 이해관계자는 복잡하며 실행 주체가 모호하다. 그런데도 계획은 그것들을 모두 끌어안고 긍정의 신호로 일관하고 있다. 그 결과 문장의 완성도는 높지만 누가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흐려진다. 이때부터 사업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된다.
이런 사업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중심 질문이 사라져 있다. 왜 지금인가? 실패하면 누가 곤란해지는가? 가장 먼저 시작해야할 단계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이 빠진 상태에서 배경, 필요성, 기대효과만 나열되어 있다. 결국 사업은 “하면 좋겠다”는 되겠지만 “안 하면 안 되는 일”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한다. 이 미묘한 차이는 생각보다 정확히 감지된다.
계획이 문제라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계획이 전제를 안고 가야한다는 점이다. 인력은 자연스럽게 확보될 것이라는 가정과 참여하는 인력이 균등한 능력을 갖고 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질 것이며 이에 따라 참여는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가정을 이 가정들이 문장을 매끄럽게 해주는 효과로 나타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가장 불확실한 요소들이다. 이 불확실성을 전제로 삼은 사업은 말이 완벽해질수록 오히려 위험해진다. 현장을 설득하기보다 문서 내에서의 설득이 최적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듯한 그저그런 사업들은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다시 제출된다. 문장은 더 정교해지고 지표는 더 많아지며 표현은 더 안전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중심은 없다. 구조는 그대로다. 그래서 결과도 반복된다. 늘 같은 자리에서 조금씩 다른 말로 실패한다.
왜냐하면 이런 사업들의 문제는 문장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조의 방향에 있기 때문이다.
말이 완벽한데도 계획단계에 그치거나, 실행 이후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건 환경이 나빠서라기보다 계획이 현실을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