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개발자의 마음 근력 키우기

수정 요청 가득한 리뷰를 받았을 때 심리적으로 대처하며 실력 키우기

by 개발자채

심리학에 downward spiral이라는 말이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결국 스스로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상태를 뜻한다. 요즘 내가 딱 그랬다. 몸이 먼저였는지, 심리적인 면이 먼저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외적인 상황도 이런 악순환을 더욱 부추겼다. 일주일 정도 재택근무로 재충전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주 3일 의무 출근이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평소라면 소소하게 즐겼을 아침 식사나 점심시간조차 어느 순간부터 피로하게 느껴졌고, 눈에는 다래끼가 생기고, 두통과 감기 기운이 이어졌으며, 밤잠도 푹 잘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지쳐가는 걸 느꼈다.


이런 상태에서 나에게 결정적 타격을 준 건, 내 Pull Request에 달린 선임 개발자의 코멘트였다. 수정 요청이 줄줄이 이어진 코멘트를 보는 순간 정신적으로 완전히 넉다운되었다. “왜 이렇게 개발했나”,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들에 주눅이 들었고, 온몸이 긴장된 채 굳어 있었다. 첫 직장에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이 되살아났고, 질문조차 두려워졌다. ‘이것도 모르냐’는 반응이 돌아올까 봐 위축되었고, 나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불안감은 내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마저 흐리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무너질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나가고 싶다면, 한두 번의 코멘트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주말, 당시 상황을 차분히 복기하며 내가 어떻게 중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를 정리해보았다.


첫째, 코멘트는 바로 확인하되, 답변은 시간을 두고 한다. 빠르게 확인하는 건 상황을 빠르게 인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기 위해서, 답변은 조금 뒤로 미룬다. 기술적으로 검토하고,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리서치한 뒤 정리해서 질문한다. 내 해석과 리뷰어의 코멘트가 충돌한다면, 정중하게 재확인을 요청한다.


둘째, 수정 요청이 들어온 코드의 근본적인 문제를 분석한다. 내가 기술적으로 부족했던 부분인지, 아니면 프로젝트 구조 설명이나 내부 문서 오해의 문제인지 살핀다. 만약 구조나 문서의 문제였다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다른 개발자도 있을 수 있으니, 이를 보완하거나 제안한다. 내가 기술적으로 부족했던 부분이 원인이었다면 학습하고 데일리 노트에 정리한다.


셋째, 리뷰 코멘트가 왜 내 감정을 건드렸는지를 들여다본다. 내가 민감하게 받아들인 탓인지, 혹은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문화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판단한다. 전자라면 특정 리뷰어로부터 심리적 임팩트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인지하고 마음의 방어막을 준비한다. 후자라면 더 건강한 소통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제안을 팀 또는 회사에 해볼 수 있다. 맞을 걸 알고 맞으면 덜 아프다는 말처럼, 예상되는 충격엔 대비가 가능하다.


넷째, 리뷰를 해준 동료의 시간과 노력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코멘트들을 성장 기회로 여긴다. 틀렸다는 건 아직 모른다는 뜻이고, 모르는 걸 하나하나 배워간다는 건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스스로를 다정하게 대한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렇게 배우고 성장하는거야.” 라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길일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잠시 멈춰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랬던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에 대한 채찍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학자 허준이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영상을 시청해 보시길 권한다)


이 글은 나를 위한 기록이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개발자, 특히 해외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며 성장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속도, 나의 방식으로 걸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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