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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키 Jan 11. 2019

배아픈 어른들의 뒤틀린 질투

10살 유튜버 '띠예'를 둘러싼 논란

일과 중 잠깐 짬이 나거나 이동시간이 길지 않은 지하철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올 때 주로 유튜브를 켠다. SNS 눈팅은 너무 금방 끝나버리고, 드라마나 영화 한 편을 보자니 부담스러운 시간. 유튜브에는 그 공백을 적당히 메워줄 수 있는 선택지들이 많다.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관심 있을 법한 영상들을 알아서 보여주는 이 편리한 알고리즘의 세계에서 무료함을 달래는 사람들이 비단 나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전 세대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앱이라는 유튜브의 강력한 존재감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이 와중에 유튜브에서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영상 하나로 단숨에 주목받은 크리에이터가 있다. 지난 11월 초, 바다포도를 먹는 ASMR 영상을 올린 10살의 유튜버 ‘띠예’다. ASMR은 빗소리, 음식 먹는 소리, 글씨 쓰는 소리 등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소리로, 현재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다. 띠예의 영상은 이어폰 마이크를 사용한데다 편집도 편집툴을 이용해 간단한 자막이 들어간 정도였지만, 귀여운 아이가 오독오독한 식감의 해초류인 바다포도를 먹는 이 영상은 순식간에 퍼져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띠예는 식용 색종이, 달고나, 마카롱, 머랭쿠키, 동치미 무 등 다양한 음식을 먹는 ASMR 영상을 연이어 업로드했고, 채널 구독자 수도 단시간에 급격히 증가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존 영상들이 하나 둘 지워지기 시작하더니 바다포도 영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삭제됐다. 띠예의 부모는 유튜브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별다른 속 시원한 말을 듣지 못한 채 커뮤니티 위반이라는 매크로 답변만 들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띠예의 영상들에 대해 다수의 신고가 접수됐고, 유튜브에서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판단해 삭제했다는 정도만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후 일베 등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띠예’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정황들이 드러났다. 이렇게 대충 찍은 영상이 구독자가 40만 명(현재 67만 명)이나 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둥,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는 둥 비아냥대던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돈 맛 보면 안 된다”, “어린애가 무슨 돈을 버냐”며 띠예를 강하게 비난했다. 이들은 띠예의 채널 주소를 공유하는 일명 ‘좌표 찍기’까지 해가며 신고를 유도했고, “나도 신고하고 왔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이 어린 아이를 향한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띠예의 유튜브 영상에도 성적인 댓글들이 달렸고, 심지어 한 유튜버는 띠예를 향해 공개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한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사태가 가리키는 지점은 분명하다.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여성 혐오’가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이며, 나이와 성별에서 이중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띠예가 공격의 대상이 됐다. 단지 남이 잘 돼서 배아팠던 게 아니라, 실은 그 주체가 ‘어린 여성’이었기 때문에 더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띠예 유튜브

이렇게 일부 어른들에게 마녀사당을 당하는 동안,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띠예가 가진 크리에이터로써의 능력은 너무 쉽게 간과된다. 부모가 직접 밝힌 것처럼 띠예는 모든 영상을 스스로 편집하고 제작했다. 첫 ASMR 소재로 씹히는 소리가 독특한 ‘바다포도’를 고른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고(나는 이 영상을 보기 전까지 바다포도가 뭔지도 몰랐다), 이어폰 마이크를 테이프로 고정시켜 소리가 잘 들리게 사용한 점도 창의적인 접근이었다. 바다포도의 신선도를 위해 얼음을 같이 세팅하고, 손으로 바다포도를 터뜨리는 소리까지 들려주는 모습은 ASMR 콘텐츠의 요건을 충실하게 담고 있다. 구독자들 애칭을 ‘달콤이’로 정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도 여느 유튜버 못지않다. ‘배아픈’ 어른들의 눈에는 이 모든 게 아니꼽게 보였겠지만, 띠예의 부상이 단지 ‘운’ 때문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고가의 장비나 대단한 편집 기술 없이 이 정도의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이야말로 띠예의 진짜 실력이고 능력이다.      


미디어 블로터를 통해 공개한 유튜브의 공식입장에 따르면 “유튜브는 미성년자를 위협하거나 착취하는 콘텐츠에 대해 엄격한 규정을 갖고 있”으며, “현 정책에 따르면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ASMR 비디오의 경우, 성적 만족감의 상황적 신호가 발견되는 즉시 삭제처리” 된다.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정 수준의 필터링은 분명 필요하고, 특히 ASMR 영상이 성적인 측면에서 소비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유튜브의 입장도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현재 띠예의 영상에서 ‘성적 만족감의 상황적 신호’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그보다는 악의적인 의도로 신고가 접수되고, 유튜브가 모호하고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그 신고를 받아들이는 사태가 반복된다면 개별 크리에이터, 더욱이 어린 여성 크리에이터의 활동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지난 9일 띠예가 새로 올린 김치전 먹는 영상은 또 다시 삭제됐는데, 최근 재업로드한 기존의 삭제 영상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것과 비교하면 선뜻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누구이고, 그 돌을 맞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한다면 이번 사태는 그저 영상 몇 개가 삭제됐다고 넘길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작 더 유해하고 선정적인 콘텐츠들은 제대로 규제하지 않으면서 유독 띠예의 영상에만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유튜브도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렵다. 배아픈 어른들의 뒤틀린 질투는 과연 어디까지 갈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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