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능 <아는 형님> 셀럽파이브 편
올해 초 “아리아나 그란데처럼 셀럽이 되고 싶어”를 외치며 돌연 가요계에 나타나 춤 하나로 무대를 평정한 신인 아이돌이 있었다. 그렇다. 코미디언 김신영, 송은이, 신봉선, 안영미로 구성된 그룹 ‘셀럽파이브’ 얘기다. 맨발 투혼의 칼군무를 보고 있노라면 이들의 본업이 ‘가수’가 아닌 ‘코미디언’이라는 점과 평균 연령이 39세라는 사실은 잠시 잊어버리고, 그저 넋 놓고 감탄하게 된다.
최근 한 시상식에서 ‘올해의 발견’상까지 수상하며 기어이 2018년 최고의 신인 자리에 오른 ‘셀럽파이브’는 데뷔곡 <셀럽파이브>에 이어 얼마 전 두 번째 노래 <셔터>를 발표했다. 그 과정은 웹 예능 <판벌려2>를 통해 지켜봐왔지만, TV 예능인 <아는 형님> 출연 소식은 또 다른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한국 예능판을 움직이는 대표적인 여성 예능인들과 남성 예능인들이 게스트-호스트로 한 자리에서 만나는 이 드문 풍경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무난히 충족하며 ‘꿀잼’을 선사하면서도 한 켠에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형님’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흐름을 주도하는 모습은 그 동안 예능계가 주목하지 않았던 이들의 진가를 조명하지만, 동시에 남성 중심의 예능판에서 여성 예능인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걸그룹 트와이스 편에서 ‘외모’로 원하는 시아버지상을 골라 달라며 황당한 주문을 하던 ‘형님’들은(그나마 ‘이상형’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셀럽파이브’에게는 선택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듯 그런 질문은 꺼내지도 않는다. 대신 “요즘 살을 찌우는 중이냐”, “원래 이렇게 말랐냐”, “앞머리는 무슨 컨셉이냐”며 쉴 새 없이 ‘몸평(몸매 평가)’과 ‘얼평(얼굴 평가)’을 시전한다.
‘셀럽파이브’ 멤버들이 “아, 쟤 땜에 빡치네 진짜”, “왜 그렇게 크게 웃지?”라며 이에 반발하면 ‘형님’들은 놀라 깨갱하지만, 그건 단지 ‘재미’를 위한 잠깐의 연출일 뿐이다. 강호동이 억울하다는 듯이 “우리가 느끼는대로 말하면 안 되는거야?”라고 항변하자 멤버들이 되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식이다. 그 한마디에 잘못한 쪽은 ‘느끼는대로 지껄인’ 사람이 아니라 그 말에 ‘화를 낸’ 사람이 된다.
타인의 ‘얼굴’과 ‘몸매’를 평가하고 이를 웃음거리로 삼는 게 잘못됐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그 대상이 ‘여성’, 특히 ‘여성 예능인’일 때만 거의 유일하게 예외가 적용된다. 마치 그런 룰이란 애초에 없었고, 웃음을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이. 더욱 씁쓸한 건 여성 예능인들 스스로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다. ‘셀럽파이브’도 자신들의 취약점으로 “원탑 비주얼이 없다”는 점을 꼽고 서로의 얼굴을 향해 ‘넙치’라고 놀리거나, “음악방송에서 우리 앞뒤로 나오는 걸그룹들이 그렇게 예뻐보인다”며 “자릿세를 받아야 한다”고 자신들을 한없이 낮추어야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전개는 후반부 콩트에서도 이어진다. 오케스트라부원인 ‘셀럽파이브’ 멤버들과 ‘예쁜 부원들을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아는 형님> 멤버들의 구도는 너무나 빤하게 예상 가능한 설정이다. <아는 형님>은 가장 핫하다는 ‘셀럽파이브’를 불러 놓고도 가장 쉽고 안전한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성 예능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부정하는 방식으로만 소비돼야 했다.
이렇게 ‘셀럽파이브’의 능력과는 무관한 외모와 몸매가 방송 내내 소환되는 반면, 이들의 장점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의도치 않게 부각된다. 이상민이 대뜸 “니네는 서열이 어떻게 돼?” 라고 묻자 송은이는 “이거 할 때만큼은 팀이니까. 우리가 모이게 된 구심점이 신영이니까 (신영이가) 주장을 하고. 그 다음에 서열은 다 똑같이, 주장 외 3인”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형님’들은 송은이가 “나이도 제일 많고 투자금도 냈는데” 왜 주장이 아닌지를 궁금해 한다. 상황을 정리하는 김신영의 한마디는 이렇다.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야.” 이 장면은 견고한 남성연대가 사실은 권위와 서열로 구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아는 형님> 내에서도 멤버들은 서로 반말을 하며 동등한 위치를 강조하지만, “나는 7번째”라는 이상민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명확한 서열구조가 존재한다.
하지만 ‘셀럽파이브’는 나이가 많다고, 돈을 냈다고 해서 당연하게 ‘리더’가 되지 않는다.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고, 불필요하게 나머지 사람들의 서열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김신영의 말마따나 송은이는 “고마운 사람”일 뿐, 눈치를 봐야 하는 권위적인 선배가 아닌 것이다.
‘셀럽파이브’가 ‘아는 형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남성 중심의 기존 예능판과 그 판에서 만들어지는 편협한 예능 공식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는지를 강렬하게 경험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야말로 ‘예능’에서 새로운 감수성과 전과 다른 방식, 불편하지 않은 웃음이 필요한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비하를 하도록 이미 짜여진 ‘판’이 있었고, 조금만 돌아보면 바로 그 지점에서 신나게 웃어댔던 ‘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스스로를 깎아내리거나 누군가에게 깎여지지 않고도 여성 예능인이 웃음을 줄 수 있는 방식은 훨씬 더 많다. 우리가 ‘셀럽파이브’에 열광한 이유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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