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토크쇼 , 장도연은 왜 BTS와 분리되어야 했나
"제가 방송 3사 연예대상에서 상을 받은 게 지금 처음인데, 여기 앉아서 가만히 위를 쳐다보니 계단이 다섯 계단이에요. 이 다섯 계단을 올라오기까지 13년이 걸린 거예요."
코미디언 장도연이 2019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베스트 엔터테이너상을 수상한 뒤 울먹이며 한 말이다. 오랜 시간을 버틴 끝에 다섯 계단을 올라선 이후 장도연은 더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존재감을 빛내고 있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또다른 계단은 여전히 높고 험난하다.
지난 29일 방영한 KBS2 토크쇼 <Let’s BTS>에서 장도연은 프로그램 속 특별 코너의 진행자로 20분 가량 출연했다. 국내 예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방탄소년단이 단독 출연하는 토크쇼로 큰 관심을 모았지만,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동떨어져 별도의 무대에 홀로 서 있던 장도연의 자리를 두고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분리된 위치가 만들어 낸 은근한 위계
장도연은 방송 중간, 방탄소년단의 대표 키워드를 소개하는 역할로 등장했다. “사실 제가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약속한 게 있는데, 이 선을 넘어가지 말라고..” 이 말을 재미를 위한 우스갯소리로 듣고 넘길 수 없었던 건, 실제로 장도연이 출연하는 내내 그 자리에만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 제작진 입장에서는 화면의 다양성을 고려한 세트 연출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장도연이 설명하는 키워드나 부가적인 자료들을 뒷배경의 그래픽 화면으로 보여주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마치 메인 진행자인 신동엽과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자리에 앉아 서 있는 장도연을 내려다보는 듯한 구도가 만들어졌다. 또한, 그러한 자리 배치 탓에 신동엽과 멤버들을 중심으로 해당 키워드에 대한 토크가 진행되는 동안, 떨어져 있는 장도연은 계속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BTS가 그쪽으로 가는 건 괜찮아요. 장도연씨가 이쪽으로 오는 건 안 됩니다.” 신동엽의 멘트는 이 분리된 위치가 주는 은근한 위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연신 장도연에게 예의를 갖추며 감사함을 표현했던 것과는 별개로, 이 기이한 자리 배치는 ‘진행자’로서의 존재를 지우고 출연자 간 구분짓기를 정당화한다. 장도연은 짧은 출연에도 방탄소년단 춤을 추며 분위기를 환기하고 충실히 제 몫을 해냈지만, 넘어갈 수 없다던 그 ‘선’은 더 많은 역할과 가능성을 미리 차단했다.
누군가를 치켜세우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비하할 필요는 없다. 이 명제가 당연해진 시대의 시청자들은 이제 이러한 낡은 방식에 더 이상 웃음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예능에서 여전히 ‘웃음을 주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코미디언이 쉽게 평가절하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눈부신 성취를 이뤘다고 해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듯, 코미디언도 낮추어 무시할 대상이 아닌데도 말이다.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이유
더욱 놀라운 건, 이런 광경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종영한 SBS 토크쇼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도 정확히 똑같은 장면이 등장했다. 1회 방영 당시 메인 진행자였던 이동욱과 게스트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장도연은 방청석보다 더 먼 거리에 멀찍이 떨어져 앉았던 것이다.
심지어 고정 출연자였던데다 잠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방송 내내 쭉 함께 출연하는 데도 그랬다. 1회 게스트였던 공유도 “너무 멀리 있어서 안타깝네요”라며 의아해했고, 서로 거리를 두고 소통하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됐다. 방영 직후 비슷한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그 거리는 조금 좁혀졌지만, 결국 종영 때까지 다른 출연진과 ‘분리된’ 장도연의 자리는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이 방송에서도 이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장도연의 존재를 웃음 포인트로 소비했다.
웃자고 보는 예능에 이렇게까지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강력하게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무심코 웃으며 넘긴 순간들이 비슷한 장면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세 번이나 보고 싶지는 않다.
프로그램의 품격은 모든 출연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있고, 그 대우는 자리 배치와 같이 아주 사소해 보이는 요소로 결정된다. 의도가 어떠했든 보는 사람이 불편하거나 불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안심하고 마음껏 웃을 수 있고, 코미디언 장도연은 누구보다 그런 개그를 고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장도연이 넘지 못할 선은 없다. 그 선이 누군가를 구분짓고 낮추기 위해 그어진 선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