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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Oct 13. 2023

26. 내가 가족을 선택한 건 아니잖아

"원래 정말 착하고 좋은 말만 하는 아이였는데, 우울증 약을 먹더니 이상해졌어."


맏이라는 무게를 덜어내고, K-장녀라는 갑옷을 벗고 있는 중이다. 갑옷을 하나하나 벗어내는 게, 쉽지 않다. 너무 오래 입고 있어 냄새도 나고 어떤 부분은 살이랑 엉켜 붙어 있기도 하다. 갑옷을 온전하게 벗고 나의 문드러진 살과 마주할 것이다. 나의 몸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사랑해 줄 것이다.


지난번 가족과의 대화를 통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와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꺼내놓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무엇보다 나를 알게 했다.



난 예민하고 감성적인 기질을 타고났다. 5세 이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잘 놀라서 울었다고 한다. 우는 것도 자지러지게 울어 숨이 넘어갔다. 얼마나 울었으면 온몸에 열이 심하게 올라 응급실을 찾아야 할 정도라고. 응급실에서 해열제를 먹이면 침상에서 그렇게 잘 잤다고 한다. 친구들과 놀다가 장난감이 뺏기고 톡톡 맞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나도 똑같이 친구를 한 대 때리고 장난감도 가져오길 바랐으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5살 때까지 엄마 등에 매달려 사는 껌딱지였다.


이런 기질을 타고난 내가 폭력을 경험하고 언성이 높은 집에서 자랐다. 아빠의 폭력에 더욱더 움츠려 들었고, 엄마의 자살시도에 불안감은 높아졌다. 덩그러니 놓인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은 강해졌다. 아빠의 목소리가 천장을 뚫을 때는 놀라서 심장이 뛰고 나의 고막도 찢겨 나갔으나 기색을 할 수도 없었다.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애써 모른척하고 넘어갔다. 지금의 환경도 충분히 벅찬데, 나까지 날뛸 수는 없었다.



가족과 함께 잘 지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것이 엄마의 소원이자 바람이니까. 그리고 엄마에 대한 보답이니까. 때문에 그 기대해 부응하고자 나도 여러시도를 했다. 다 같이 모이자고 연락도하고, 감정의 화해도 시도해 보고, 가족 단톡을 만들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조성하려고 했다.


남동생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누나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네가 했던 말에 상처받은 건 이미 알고 있잖니. 왜 몇 년째 사과 한마디가 없어? 그렇게 연락을 잘하던 애가 그 뒤로 누나한테 일절 연락도 안 하잖아. 누나는 서운해.' 남동생은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말을 하지 못하고 멍하게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말을 더듬으며 '나는 누나가 다 잊은 줄 알았어, 미안.' 몇 년째 연락이 없고 날 보면 피하던 남동생은 내가 잊은 줄 알았다고 했다. 말이 되는 걸까. 짧은 '미안'은 억지로 받아낸 미수금 같았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여동생과는 큰 트러블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범위를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동생은 휴학을 하고 쉴 겸 서울에 자취를 할 때였고, 나는 한참 취준을 하고 있을 시기였다. 당시 지방에 있던 나는 한 번씩 여동생 집에서 가까운 회사가 있으면 하루만 잘 수 있냐고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마다 동생은 꽤나 싫은 티를 내었다. 두 번 정도는 받아주었으나 그 뒤로는 싫다고 의사표현을 해왔다. 그 덕에 나는 당일로 왕복 7시간 거리를 새벽기차를 타고 다녀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자기가 하고 싶을 때 연락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으면 화를 낸다. 약간 고양이 같달까. 이런 성향을 알게 된 뒤로는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가족에 대한 바람이 더욱더 커져갔고, 성인이 된 우리 자식들이 한 번에 모여 엄마를 외치는 장면을 그리워했다. 엄마로서 충분히 바랄 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생들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었고, 30대를 바라보는 성인이기에 가족으로서 맞추고 노력하는 시기는 지났다.



눌려있던 속마음을 한꺼번에 폭발하듯이 쏟아낸 뒤로 놀란 가족은 일주일 후부터 연락을 해왔다. 나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갑옷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무렵임으로 나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엄마는 이런 말을 해왔다. '솔직히 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어릴 때부터 좋은 말만 하고 늘 엄마만을 생각해 주는 착한 딸이었는데, 대체 왜 이렇게 된 거니. 엄마가 잘 생각을 해봤는데, 그 우울증 약을 먹고나서부터 이상해진 것 같아. 혹시 약의 부작용 아닐까 싶은데, 의사한테 말해봐.'


나는 간간히 아빠, 엄마와 있었던 일과 가족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풀어놓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굉장히 혼란스러워할 뿐 아무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엄마의 자살시도건으로 불안장애가 생겼다는 말에도 난 들어줄 수 없으니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라고 했다. 그런 엄마는 내가 드디어 속에 있는 말을 하자 우울증 약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많이 참고 살았고, 나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살았다는 반증이 이렇게 나타나는구나 싶었다.


아, 갑옷 안에는 나의 몸이 있기는 할까. 살이 다 썩어서 뼈 밖에 안 남아 있으면 어쩌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내가 가족을 선택한 건 아니잖아.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 듯이. 내가 가족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겠지. 내가 조현병 아빠를 고른 것도 아니고 나를 버리고 갈 엄마를 선택하지 않았잖아. 여동생 남동생도 갑자기 생긴 거지 내가 낳아달라고 한 적 없는걸. 그러니까, 엄마 아빠는 둘이 가족이 되고 싶어 서로를 선택했고, 그 사이에 태어난 나는 부모를 선택할 권리나 권한이 없잖아. 내가 잘 못한 건 없잖아. 근데 내가 왜이렇게 힘들어야하지?


내가 가족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태어났으니까 살고 있을 뿐이다. 어릴 적부터 늘 하는 생각은 죽지 못해 산다였다. 어쩌면 엄마도 우리를 낳겠다는 의도만 있었을 뿐 자식 기질과 성향을 선택하지 않았다. 무서운 일은 당신들의 피가 나에게도 흘러 그 기질과 성향이 그대로 왔다. 억울하게도 난 그러한 성향과 기질을 선택한 적이 없다. 당신들의 예민하고 감성적인 기질을 넘겨주었다면 잘 알고 있을 텐데, 당신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키웠던 점은 참으로 애석하다. 나도 당신들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많이 놀란다.


가족이라고 다 화목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가족이라고 살가울 필요도 없다. 가족이라고 다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각자 개체가 사람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저 나를 태어나게 한 것이 당신들이고, 나는 가족이라는 법적 울타리가 필연적으로 생긴 것 뿐이다. 그렇다고 가족의 순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화목하고 가족의 애가 넘치는 사람들은 울타리 안에서 가족과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내면 된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 그러니까 나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울타리를 가장한 가족은 국가에서 개인을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낸 최소한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출생신고를 하고, 가구수를 정확히 파악해야 세금을 부과할 수 있음으로. 가족은 국가가 굴러가야 하는 가장 최소한의 단위인 것이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거나 묻어두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이제야 나와 가족에 대한 관계를 객관적으로 쳐다보고, 그곳에서 버둥거렸던 나를 발견하고 알아챈 결론이다.



나는 기억해야 한다.

갑옷을 벗는 동안에는 철저하게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더 이상 가족관계와 과거에 매몰되서는 안된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며, 과도한 딸 누나 언니 역할을 하지 않는다.

가족들에게 첫째 딸, 누나, 언니로서의 역할을 하되 내가 괜찮은 범위까지만 한다.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나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나를 해하는 가족은 멀리한다.

좋고 싫고를 정확하게 표현하되, 상처 주지 않도록 한다.

이제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가족을 선택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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