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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Sep 28. 2023

죽고 싶지만 까눌레는 먹고 싶어

이야, 이런 맛이 있다니 아직은 좀 더 살아봐야겠다. 


까눌레와의 인연은 23년 여름에 닿았다. 4년 전 마카롱이 전국에서 유행을 떨쳤다. 손바닥보다 작은데 2천 원 3천 원씩이나 하는 것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자취생에게는 극강의 사치 오브 사치랄까. 용기 내어 마카롱을 하나 사 먹어 봤을 때, 무척이나 실망했다. 꼬끄가 쫀득하고 안에 크림이 살살 녹는다더니. 설명 비슷하게 입안에서 느껴지지만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 무렵, 프랑스의 제과들이 한참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니 카페에서는 까눌레라는 것을 팔았다. 직장동료들은 카페에 함께 가면 까눌레가 정말 맛있다며 하나씩 사 먹고는 했다. 내 눈에는 세상에 마카롱보다 더 작고 보잘것이 없어 보였다. 이것은 사치를 넘어선 어딘가 있는 아이였다. 심지어 가격도 마카롱보다 비쌌다. 3800원에서 4500원까지 봤는데, 아니 대체 손바닥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저것이 왜 저렇게 비싼 건가 의아했다. 한입 넣으면 그냥 끝나버릴 크기라 도무지 사볼 엄두가 안 났다. 게다가 마카롱처럼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엄습해 왔다. 가성비 최악인 디저트인 것이다. 


올해 남편이 카페를 쏘겠다며 기분 좋게 나선 나들이에 까눌레가 나를 반겨주었다. 오, 남편이 쏘는 까눌레는 먹어볼 만하지. 음하하하. 너무 설레어 사진까지 남겨 놓았다. 인생 첫 까눌레라니. 

너무나 작은 까눌레

사이좋게 나눠먹으려고 갈랐는데, 참 비루하다. 어쩜 이렇게 작을 수가 있는지. 옆의 스콘과 스모어쿠키가 커 보이는 기적의 까눌레. 자르면서도 현타가 왔으나 얼른 입에 넣어보았다. 


오 마이 갓, 겉은 딱딱한 것이 빠싹하게 씹히고 

맛은 약간 탄 듯한 달고나 맛이 은은하게 난다. 

속은 눅진한 것이 촉촉한데 

맛은 꽤나 묵직하게 잡아주는 버터 맛이 났다. 

근데, 생긴 건 꼭 연탄 속 버터 스펀지랄까. 


충격적인 맛이었다. 우와 어떻게 이렇게 만드는 거지? 갑자기 가격이 납득 가는 맛이었다. 커피와 까눌레를 입안에서 동글동글 굴려 먹으면 금상첨화다. 하필 처음 맛본 까눌레가 밀크티까눌레라 버터스펀지에 홍차잎이 콕콕 박혀있었다. 


집에 와서 까눌레를 당장 찾아보았다. 프랑스의 디저트인데 정식 이름은 '카늘레 드 보흐도'라고 한다. 여기서 카늘레가 세로 홈을 판, 주름잡은 이런 뜻이란다. 그렇구나 너는 세로로 주름진 친구지. 그리고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운 친구였다. 오븐의 상부 하부 온도가 딱 적절해야 알맞은 식감이 나온다고 한다. 상부가 높으면 반죽이 끓어서 넘치고, 하부가 높으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고 한다. 게다가 반죽을 휴지 시켜줘야 하는 시간도 길다. 대충 찾아봤는데도 무척이나 번거로워 보였다.  


헬스를 끝내고 사온 소중한 까눌레


버터스펀지가 숨어있다. 

비싼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적절하게 겉이 빠삭하고 안이 촉촉, 요즘말로 겉바속촉이 되려면 제과사의 기술력과 오븐의 온도가 어우러져야 적당한 까눌레가 완성된다. 새삼 제과를 하시는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동경의 대상이 된다. 특히 그 기술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일은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이다. 내가 그들이 만든 까눌레를 먹고 이토록 감동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헬스가 끝날 무렵 보상 심리로 한 번씩 까눌레를 찾게 되었다. 까눌레를 사들고 집에 오는 날은 무척이나 행복하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었던 작가님처럼 힘들어 죽겠지만 까눌레가 먹고 싶어 오늘을 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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