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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Dec 07. 2023

남편오기 4시간 전

유부녀의 해방일지(3)

아, 결국에는 늦잠을 자버렸다. 눈을 뜨니 아침 11시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남편이 없다고 너무 달렸다. 신나게 달려버렸다. 3시가 넘어서 잤으니, 평소처럼 일어나기에는 수면시간이 부족하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아주 늦게 눈을 뜨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서 얼른 내 피부상태를 확인해 봤다. 전날에 했던 나의 스킨케어들이 쏙쏙 잘 먹어있는 것이 아닌가. 오 신기할세. 다음 다이소 방문 때 또 한 번 노려봐야겠다. 또 한 번 행운을 바라면서 '혹시 니들샷 있어요?'


일어나니 역시나 배가 고프지 않다. 양치를 하고 따듯한 차를 우려 마셔야겠다 생각했다. 2인용 다기가 이제는 1인용만 필요하다. 잔 하나만 꺼낸 뒤에 2인이 마셔도 될 만큼의 찻잎을 넣는다. 흐흐 나를 위한 사치를 부릴 것이다. 가지고 있는 차 중에 가장 비싼 차를 꺼내서 듬뿍 마셔줄 게다. 혼자 유유히 마시고 있으니 여유롭고 좋았다. 아침밥을 하지 않고, 차를 홀짝홀짝 마실 수 있는 삶이란. 3번 정도 우려마셔주니 이게 차 색도 끝물이었다. 한 시간 정도 차를 마셨다. 몸이 뜨끈해지니 좋았다. 그리고는 앉아서 생각했다. 남편이 오기 전까지 뭘 하면 좋을까.




우선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식물들을 보았다. 겨울이라 베란다에서 실내로 옮겨준지가 꽤 되었는데, 정신이 없어 그동안 물만 간신히 주고 식물등만 켜줄 뿐이었다. 오래간만에 본 식물들은 제멋대로 자라 있기도 했고, 하엽이 진 애들도 있었다. 하엽을 정리해 주고, 중구난방으로 자란 잎들도 자리를 잡아주었다. 작은 화분에 삽꽂이를 한 식물은 그새 많이 자라 큰 화분에 합분 해주었다. 아참, 그리고 호야라는 식물은 굉장히 건조하게 길러야 하는 다육과였다. 사자마자 좀 큰 화분에 옮겨 심어주었는데 과습으로 검게 변하면서 꽤나 많은 잎들을 떨궈냈다. 참으로 무지한 탓에 애꾸진 잎사귀만 떨어졌다. 이번 기회에 작은 화분으로 옮겨주었다. 



식물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참으로 시간이 잘 갔다. 오래간만에 이 녀석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결혼 전에도 주말에는 혼자서 식물을 가꾸며 멍을 자주 때렸다. 그러다 보면 한 시간은 훌쩍 넘어갔다. 그런 시간이 나에게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얼마뒤 출발한다는 남편의 전화가 왔다. 정말 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뭘 하면 좋을지 생각했으나 제대로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알차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지라 식탁과 널려있는 옷가지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저녁 먹은 식기들을 싱크대에 얼른 넣고, 빨아놓은 캐시미어 니트도 걷어 접었다. 안방의 이부자리도 정리하고, 빨래들은 빨래통에 집어넣었다. 어제 집어놓은 실내화도 기분 좋게 내려놓았다. 뽀송한 것이 발의 촉감이 상쾌하다.


그동안 떨어진 머리카락을 훔쳐내고, 밀대에서 분사되는 물을 분무하고 밀대질을 열심히 하였다. 남편은 집먼지진득기에 알레르기 반응이 5급이라 심각한 증세를 보인다. 하루에 한 번씩 물걸레질을 해줘야 하는데, 어제는 혼자 있던지라 그냥 두고 있었다. 하루사이에 이렇게 먼지가 많이 쌓였던가. 역시 집은 하루만 지나도 먼지가 쌓인다. 전국에 있는 남녀주부님들 정말 존경스럽다. 나님도 정말 대단한 여자이다. 사랑의 힘이랄까. 뿌듯하게 집안일을 마치고 나니  오래간만에 글을 써야겠다 생각헀다. 마음의 여유가 드디어 생긴 게다. 정말 오랜만에 앉아서 순식간에 글을 써 내려갔다. 어제의 하루, 오늘의 하루 천천히 복기하면서 간간히 나의 감정을 섞어가면서. 쭉 쓰고 있는데, 남편이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벨트를 같이 매어볼까. 하나 둘 셋 심호흡 흐흡! 




물론 남편은 군대 동기들과의 여행에서 꽤나 자주 연락을 해왔다. 자리를 옮길 때, 음식을 먹을 때, 재밌는 게임을 할 때, 그리고 자기 전 인사까지.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전화통화는 1분도 안되어 끊어주었다. 단순한 보고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락 자주 안 해도 된다고 말을 해주었지만 그는 불편했는지 연락을 틈틈이 해왔다. 그는 집에 와서 깨끗해진 집을 보고 더욱더 마음이 미안해졌는지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할 식기를 보았다. 냉큼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며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해 주었다.



"혼자 집에 있었을 와이프 생각하니 좀 미안하네, 나만 재밌게 놀다 온 것 같아서... 게다가 집도 너무 깨끗하고. 나 없이 심심했지? 다음에는 같이 가자"


"음... 나 혼자 잘 보내고 있었어! 다이소에서 니들샷도 구했고, 캐시미어 100% 니트도 엄청 싼값에 구했어! 점심 저녁도 맘대로 먹고, 오늘 글까지 썼는걸."


(니트를 입고 보여주면서 앞에서 재롱을 좀 떨어주었다.)


"그래?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덜어지네. 니트는 너무 잘 어울린다. 횡재했네! 근데 허전하지는 않았어?"


"물론 자기 전에 내 약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고, 안방에 온기가 빠지니까 썰렁하긴 했지."


"나도 허전하더라고. 다음에는 다 소개해줄게. 좋은 동생들이야. 다들 보고 싶어 해."


"그래 그러자. 좋아!"



나는 조용히 웃어주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언제든지 여행을 가도 돼... 나는 정말 괜찮았거든. 음에는 조금 길어도 괜찮을 것 같아. 호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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