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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Feb 03. 2024

나를 위한 시간이 간절했다.

카페에서 들은 세상만사

바쁜 현생을 살아내느라 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마음도 몸도 지치는 상황에서 도피하고 싶지만 내 인생이라 어쩔 수가 없으니 꾸역꾸역 견뎌냈다.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보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었다.

오래간만에 옷도 깔꼬롬하게 입고 집을 나섰다.

나 혼자.



짝꿍 없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러 나왔다.

풍경이 좋은 카페를 찾아 차를 몰고 멀리 왔다.

앞에 호수가 펼쳐져 있으니 속이 시원하다.

나를 위한 차와 디저트를 시켰다.


이런 전망 좋은 곳은 주말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조용히 혼자 구석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그동안의 일을 조금씩 정리하다 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한번 싹 나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제야 나도 여유가 생겼는지 근처의 사람들이 보였다.


유독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강하게 들렸다.

남자 1명 여자 2명으로 된 테이블이었는데, 세상만사 이야기를 끝도 없이 뱉어댔다.



'저는 요즘 리프팅을 하고 싶다니까요.'

'어우~우리 모임에 다 리프팅하고 다니는데 몰랐구나?'

'아니 이번주에 걔는 쌍수하러 간다던대? 재수술이래.'

'속쌍이라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랐네.'

'쌍수만 했겠어~코랑 이마거상도 했대.'



재밌는 사실은 '걔'는 이 자리에 없는데 소곤소곤 소리를 낮춰서 이야기한다.

'걔'의 사진을 확대하면서 티 나는 것 안 보이냐고 눈빛을 주고받는다.



'남자들은 여자 긴 머리 좋아해. 짧은 머리 하지 마.'

'어우 짜증 나. 나도 긴 머리 유지하고 있어. 박보영 아니면 누가 단발 어울리겠어.'

'단발머리 한 여자는 엄청 인상이 세 보여. 관상은 사이언스야.'



단발인 나는 슬쩍 곁눈질을 해본다.

또 생각해 본다. 나는 인상이 센가? 혼자 별 생각을 해본다.

이들의 대화는 어느 모임에서나 미주알고주알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가십거리 중에 하나다.

아무래도 모임에서 만난 사이 같다.

그러면서 존댓말은 하지만 모임의 사람들을 꿰면서 이야기한다.

한 명의 여자는 굉장히 말이 많고, 한 명의 여자는 그냥 맞장구만 쳐준다.

말이 많은 여자에게 관심이 있는 듯 남자는 연신 질문을 해댄다.

남자는 외국에서 살고 왔다며, 뉴욕의 월가 이야기를 계속 해댄다.

말 많은 여자는 아무래도 해외 쪽의 지식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이 안에서 매력을 어필하는 남자와 그걸 모르니 흥미 없는 여자

그걸 보고 관망하는 여자. 참으로 재밌는 조합이다.

이제 시답지 않은 대화에 귀를 닫고 싶다.


내 앞에는 귀여운 커플이 앉아있다. 요즘 유행인 모루인형을 둘이서 만들고 있었다.

여자는 흰색 모루토끼를, 남자는 검은색 모루토끼를 만들었다.

다 만들고 나더니, 인스타 블로거 사진에 속았다면서 둘이 어이없게 웃는다.

여자는 애써서 말하지만 남자는 안 받아준다.



'아니야~여기 가방에 달고 찍으니까 괜찮지 않아??'

'어우 세상 허접해.'



둘의 검정, 흰색 모루인형은 테이블 한가운데 나란히 있다.

그리고 둘은 손을 꼭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참으로 보기 좋다. 꽤나 사랑스러운 커플이다.


세상만사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하필 밖에서 비가 내린다.

점점 비가 많이 내린다.

창가유리창에 빗물자국이 제법 흘렀다.

아... 비를 맞고 차까지 가야 되네.

조금 걱정이다.


오래간만에 앉아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나를 위한 시간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하루종일 업무와 가정에 생긴 일까지 뇌가 터질 지경이었다.

주말에 나를 위해 나올 수 있는 순간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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