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리지라는 필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이름에서 가져왔다.
내가 어릴 때에는 롤모델을 한 명쯤은 품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의 롤모델은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리지(Lizzy)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단숨에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책을 덮었을 때는 그녀처럼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나라에서 2008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보고 나오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롤모델로 삼은 허구의 인물이 눈 앞에서 환생한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날아갈 듯이 기뻤다.
리지를 좋아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그녀의 소통 방식이 좋았다. 리지는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재치 있게 상황을 모면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다짜고짜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묻는 지체 높으신 분에게 "나이 꽉 찬 동생이 셋이나 있는데 누가 나이를 밝히고 싶겠어요." 라며 능청스럽게 넘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 그녀라고 속 시원하게 쏘아붙이고 싶지 않았겠나. 그러나 중세 말기에, 더구나 여자에게는 저 정도의 발언도 상당히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은 무례한 말들을 참는 것에 익숙했던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짜릿한 통쾌함을 느꼈다. 게다가 그 모습에는 사람을 대하는 따뜻함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따뜻한 마음 말이다.
이 작품을 얼마나 좋아했는가 하면, 아니 지금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말하려면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부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일단 현재 총 3권의 <오만과 편견> 책이 있다. 두 권은 국문 도서고 한 권은 영문 도서다. 국문 도서는 한 권은 독서용이고 한 권은 소장용이다. 영문 도서 역시 두 권이 있었으나 독서용 도서는 부재중이다. 책에 나오는 '리지'마다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는 바람에 독서용보다는 낙서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각 출판사에서 스페셜 에디션으로 <오만과 편견>이 나올 때마다 솟아오르는 구매 욕구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다. <오만과 편견 그 후의 이야기>도 읽었지만 절판되어 책을 구할 수 없었다.
동명의 영화는 DVD를 구매해 틈이 날 때마다 보았다. 특히 무례한 말들을 듣고 한 마디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밤이면 이 영화를 보며 나를 위로했다. 요즘은 넷플릭스에서도 보고 있으니 적어도 100번은 보았을 것이다. 시간이 없을 때는 가끔씩 유튜브에 있는 명장면 클립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 리지에게 홀려버린 나는 그녀처럼 되기로 결심했다. 대학생이 되고 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를 리지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리지라고 불릴 때마다 나도 야무지게 표현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고, 실제로도 그런 자신감이 나를 가득 채웠다. 요즘 말로 하면 리지는 나의 '부캐'이자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극 중의 제인(Jane)과 비슷하다. 유쾌한 감정이든 불쾌한 감정이든 표현하지 않고 참는 것이 익숙하다. 그런 성격에서인지 제인도 다른 동생들보다는 리지에게는 의존하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내가 리지에게 빠져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제인이 아니고 리지로 살기로 결정한 이상 나는 그녀를 무작정 따라하기로 했다. 따라 하다 보면 나도 야무지게 말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따라한 덕분에 나는 크게 세 가지를 얻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독서였다. 리지처럼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언행은 다독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독서는 쉽지 않았다. 지금은 책을 읽는 일이 좋지만 리지처럼 독서를 막 결심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아쉽게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던 사람이 아니었다. <오만과 편견>을 더 이른 나이에 읽었다면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겠지만 이미 지나버린 일을 어쩌겠는가. 그렇지만 그때부터라도 차근차근 독서 습관을 들인 것은 제법 만족스럽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꾸준히 책을 읽고 있고 읽는 만큼 더욱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더욱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아직도 읽어야 할 책이 아직 많기는 하지만.
리지가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구절을 읽고는 산책에 취미를 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거리의 목적지를 걸어 다녔다. 걷는 것이 익숙해지자 공원이나 둘레길을 걷기도 했고 나중에는 등산에도 푹 빠졌다. 걷다 보니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 숨 쉬는 나를 마주한다는 게 뿌듯했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산에 오르다 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요동친다. 거친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온갖 잡생각은 사라지고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 남는다. 내가 이렇게나 잘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 온갖 고민과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험한 세상 속에서도 건강하게 잘 살아 있구나 하고. 그런 생각으로 힘겹게 정상에 다다르면 나 자신이 그렇게 기특하다. 그때가 바로 내가 나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마지막으로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얻었다. 아버지의 재산은 상속받을 수 없고 결혼만이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에도 그녀는 단호하게 외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절대로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없어요, 하고 말이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기로 한 사람의 청혼을 대차게 거절한다. 물론 그 뒤로 그녀는 백마 탄 왕자님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그래서 그 결말이 부러웠지만 그 결과보다 더 매료되었던 것은 그녀의 태도였다. 사회가 정해놓은 대로 살아온 나와는 달리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자신이 행복한지를 알고 있다는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돈보다 사랑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였다. 돈도 중요하고 사랑도 중요하지만 사랑에 조금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자신을 행복해지는 일이라는 것. 남들이 하는 대로, 남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대로 휘둘리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것.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에게 행복한 것.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 사랑과 돈 중에서는 어떤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시작이 남들이 하는 대로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을 멈춘 계기가 되었다.
앞에서 말한 세 가지는 결국 나에게 집중하는 습관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지를 따라 살다가 오히려 나에게 더욱 집중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극 중 리지 같은 야무진 사람이 되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녀를 따라 하긴 했지만 그것이 그녀 같은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 롤모델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롤모델은 롤모델이고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롤모델에서 만들어 낸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라는 것도 매 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런 모습은 일정 수준이 되어 획득하는 자격증 같은 것이 아니니까. 그저 롤모델에게서 닮고 싶은 습관을 배우고 나에게 적용해 나의 모습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혹은 요즘 사회에서 번지는 일처럼 롤모델이 없어도 괜찮다. 나의 모습으로 잘 살아가면 된다. 이걸 알고 한 일은 아니지만 그녀와 똑같은 모습이 되지 않은 이 결말이 더 마음에 든다.
그러니 나는 리지이자, 여전히 리지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리지의 모습으로 리지다운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