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울메이트는 누구인가요?
영혼의 단짝, 영혼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소울메이트 (Soulmate). 살면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운데, 영혼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벅찬 일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소울메이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첫눈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연인, 눈빛만 봐도 통하는 소꿉친구, 나이와 세대를 넘는 우정까지, 소울메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참 다양하다. 소울메이트가 되기 위해서는 나이도, 국경도, 성별도 없는 모양이다. 그저 이 세상에 이토록 나와 잘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2016년 9월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주인공 칠월과 안생이 서로를 처음 만난 건 13살. 자라온 환경부터 성격까지 너무도 달랐지만, 두 소녀는 단번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 칠월과 안생. 두 소녀는 어느덧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칠월은 인문계 고등학교로, 안생은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지만 두 소녀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다. 어느 날, 칠월의 첫사랑 가명이 등장하며 두 소녀의 우정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영화는 두 소녀의 우정을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보여준다. 칠월과 안생이 성장하면서 겪는 복잡한 감정을 함께 느낀 기분이다. 기쁨, 행복, 설렘, 짜릿함에서부터 배신감, 분노, 질투, 미움, 그리움, 아픔, 슬픔과 이들 이외에도 알아내지 못한 다른 미묘한 감정까지, 영화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칠월과 안생의 인생에 번갈아 이입하며, 삶과 우정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질문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 생각과 질문들을 이 글에 담아낸다. (*이 글에는 영화의 줄거리가 다수 포함되어있습니다.)
성문화 된 법이나 규정은 없지만 대부분의 우정에 적용되는 법칙 같은 것이 있다. 바로 '서로에게 비밀은 없어야 한다.'는 것. "이건 너한테만 말하는 비밀이야!" 이 한 마디로 시작되는 수많은 말들은 서로의 거리를 더 가깝게 하고 우정을 돈독하게 한다. 우정이 깊어질수록 기쁨, 슬픔, 행복의 모든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핸드폰은 어른이 되면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무언가 흥미로운 일이 생기면 '내일 학교 가서 누구에게 말해야지!'하고 번뜩 친구가 떠오르던 날이 있었다. 자려고 이불속에 누우면 내일 아침 소식을 전할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던 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그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이던지. 그 어느 때보다도 학교에 가는 게 기다려지던 날이었다.
한편, 우정에 털어놓는 비밀에는 또 다른 법칙이 따라온다. 바로, '가장 먼저' 말할 것, 그리고 '모든 것'을 말할 것. 나와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내 친구의 이야기를 나만 몰랐을 때의 그 감정은, 알 수 없는 배신감, 나만 몰랐다는 질투,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분노가 한데 몰려와 머리를 강하게 때리는 느낌이랄까.
목욕도 같이 할 만큼 서로에 대해 숨길 것이 없었던 칠월과 안생에게도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생긴다. 안생이 떠나는 날, 꼭 가야 하냐며 눈물을 흘리는 칠월. 기차가 조금씩 움직이는 순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안생을 따라 옷 속에 파묻혔던 목걸이가 툭하고 밖으로 나온다. 당황한 표정의 칠월과 안생. 칠월의 남자 친구 가명의 목걸이가 안생의 목에 걸려있다. 안생은 왜 이 목걸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가명은 왜 말하지 않았을까?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두 사람에게 느끼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칠월의 얼굴에 나타났다. "네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떠날게."를 외치는 안생. 하지만 목걸이를 본 순간 기차를 따라 걷던 칠월은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그렇다면 소울메이트의 우정은 서로에게 일어나는 사건, 생각, 감정을 어디까지 공유해야 할까? (A) "네가 신경쓸까봐 말 안했어." (B) "그래도 나한테는 말을 했었어야지!" 비단 친구사이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다. 나의 모든 것에 대해 꼭 다 말해야 하는지, 나만 간직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디까지를 반드시 이야기해야 섭섭하지 않은 지점인지 알 길이 없다. 남자친구 가명이 자신의 액운을 막아준다며 아끼는 여기는 목걸이를, 제일 친한 친구인 안생이 목에 걸고 있다. 목걸이를 두고 칠월의 남자 친구인 가명과 칠월의 친구 안생이 아닌, 가명과 안생의 우정이니 칠월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리고 너무나 아끼는 두 사람이었기에, 칠월도 두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안생이 떠나는 기차역, 두 소녀의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한다.
어떤 비밀도 없이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전부 털어놓을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소울메이트를 위해 내가 '가진 것'은 얼마나 공유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우정을 시험하는 척도로 돈을 이야기한다. '친구를 위해 얼마까지 빌려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안주 삼아 이야기한다. 하지만 진한 우정 사이에도 공유할 수 없는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사랑일 것이다. 친구 사이에 공공재나 공공재 같은 소유재를 공유할 수는 있다. 같은 음식, 같은 음악, 같은 책을 공유할 수는 있어도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반칙처럼 여겨진다. 여기에도 '먼저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먼저 좋아했으니까. 내가 좋아한다고 말한 사람을 너는 좋아하면 안 돼. 나의 사랑을 응원해줘.'라는 보이지 않는 법칙 같은 법칙. 물론, 개인의 생각과 감정에 제한은 없다.
안생과 칠월의 남자친구 가명은 서로에게 어떤 감정이었을까? 가명은 왜 자신의 목걸이를 여자친구 칠월이 아닌 안생에게 주었을까? 영화에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선과 이를 바라보는 불안한 표정의 칠월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이 감정은 불안함, 분노, 질투, 집착, 내면에 숨겨져 있던 지질한 모습까지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된다.
그렇게 기차역에서 헤어진 후 지구를 돌고 돌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칠월과 안생. 두 사람은 함께 상해로 여행을 떠난다. 그동안 떨어져 있었던 설움을 한 데 모아 풀려는 듯, 그저 신이난 두 사람이다. 그러나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는 삶을 살던 안생과 한 곳에 정착하는 삶을 살았던 칠월은 여행지에서 서로의 다름을 마주한다. '친구랑 여행 가면 싸운다.'라는 인생의 법칙을 증명하는 칠월과 안생. 그동안은 묻어두었던 서로의 다른 점이 한 번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어디에서 머무를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를 정하며 칠월과 안생 각자의 취향과 행복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깊은 우정이라면 서로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배려해야 할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두 사람은 싸우지 않았을까?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다를 때, 나는 친구를 위해 얼마나 배려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나의 소울메이트라면, 상대방을 위해 한 일이라는 것을 몰라줄 때의 그 섭섭함도 견뎌낼 수 있을까? 레스토랑에서의 칠월과 안생의 대화는 이해와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팽팽한 신경전을 보여준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술 한 병을 공짜로 얻은 안생은 신이 났지만 칠월은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이내 칠월은 안생에게 랍스터를 먹자고 제안한다.
칠월: "나 돈 있어.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랍스터 먹자."
안생: "너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아."
칠월: "친구끼리 뭐 어때."
안생: "칠월, 넌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몰라."
칠월: "그럼 뭐 내 인생은 쉬웠을 것 같아?"
결국, 꾹꾹 눌러뒀던,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말이 나와버린다. 떠도는 삶을 사는 안생과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칠월. 상대방의 가치관이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이라고 말해버린 순간이다. 그 길로 안생은 식당을 나와 짐을 챙겨 버스를 타고 떠난다. 그런 안생을 쫓아 뛰어나가지만 건너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는 안생을 바라볼 뿐이다.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친 두 사람의 눈빛에서 '열 세 살의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안생, 칠월, 가명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우정은 이래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의 후반부로 접어들면 안생과 칠월은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만난다. 많은 시간을 떨어져 지냈지만 서로를 향한 생각과 감정만큼은 떨어질 수 없는 시간들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칠월과 안생은 서로 너무나 달랐지만 결국 너무도 닮아있음을 확인한다. 영화가 우리의 삶과 우정에 대해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칠월과 안생의 감정에 이입하다 보면 우리네 인생의 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는 다 다른 존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칠월과 안생의 모습을 통해, 영혼이 통하는 소울메이트일지라도 결국은 다 다른 사람라는 것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와 서로 닮을 수 있고, 닮아갈 수 있으나 온전히 같아질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정'과 '소울메이트'라는 단어에 기대어 더 높은 차원의 '이해'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너만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눈빛만 봐도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또 한편으로는 '나와 통하는 사람'이라는 범주안에 담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나가려는 노력을 적게 하고 싶다는 바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영화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대화와 소통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지.
이 영화는 또 하나의 불변의 진리를 이야기한다. 바로,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이제야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게 된 칠월과 안생은 또다시 함께할 수 없는 길로 접어든다. 나의 소울메이트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칠월과 안생을 통해 마지막 '안녕'이라고 말하기 전에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서로 운명인지, 사랑인지, 소울메이트인지 끊임없이 시험하고 확인할 시간에, 함께 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 행복하게 지내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진 시간의 법칙. 결국, 지금 나의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자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아닐지.
p.s.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소울메이트는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