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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Apr 16. 2018

자코메티의 작품을 마주하다.

시간, 시선, 그리고 순간




알베르토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 (1960)



1901년 스위스 스탐파에서 태어난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는 '살아있는 조각'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았던 예술가이다. 미술관에서 마주한 자코메티의 작품에서는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고뇌한 그의 치열한 흔적이 느껴졌다. 그 느낀 점을 짧게나마 적으려고 한다.






시간

우리가 가진 시간에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 바로,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며,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전의 마지막 날, 미술관은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가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것은 자코메티가 처참하게 경험한 시간의 유한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코메티의 작품을 하나하나 마주할수록 그가 느꼈던 허무함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인간을 조각한 조각과 죽은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생명(영혼)'이 없다는 것. 생명이 없다면 죽은 사람이나 조각품이나 모두 사람의 형체를 가진 물체일 뿐인가. 죽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닌 한 덩어리의 물체가 되는 것일까. '인간은 어차피 죽을 거, 나는 왜 태어났을까. 끝이 어딘지 모르는 유한함 속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자코메티가 겪은 허무함은, 삶의 의미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나의 지난날들을 떠올리게 했다.



시선

내가 자코메티였다면, 자신이 사는 이유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죽은 사람과 자신의 조각을 구별 짓기 위한 고뇌로 괴로워했을 것이다. 자코메티는 그 둘의 차이를 조각의 시선에 담았다. 자코메티가 어느 강도로 고뇌했을지 오롯이 느낄 수 없지만, 시선에 생명을 담는 일, 이것이 그가 평생에 걸쳐 실현하려고 했던 꿈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조각은 부숴버린 자코메티. 시선을 담아 영원히 살아있는 조각을 만드는 일이 '죽음'을 '생명'으로 만드는 일이자, 자코메티 본인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자코메티 작품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드러났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영원을 빚는 그의 시선은 어떤 아우라를 담고 있을지. 그가 카메라를 응시한 시선으로만 어렴풋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엘리 로타르상'의 시선



순간

시간은 순간의 연속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란 존재 역시도 시간의 어느 찰나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내가 두 달 뒤에 죽는다면 나는 그 두 달 동안에도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다." 자코메티는 곧 죽더라도 늘 하던 대로 시선에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두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작품을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고뇌하고 몰입했다. 유한한 삶일지라도 하던 대로 하겠다고 한 이유는 그가 하던 일, 즉, 생명을 표현하는 것이 그의 행복이며 꿈이자 삶의 이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몰입하는 그 순간, 그 순간을 넘어 이미 그의 미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자코메티의 몰입의 결과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미래는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최선을 다할 때 자연스레 나에게 다가오는 신의 선물이다. 미래는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부단히 수련할 때 만들어지는 예술이다." 배철현 교수님의 [수련] 中



매 순간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온전히 '나'로 살며 순간에 몰입할 때 가능한 일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면서, 최선을 다해 몰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선을 담겠다는 사유의 결과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롯이 자코메티의 것이다. 결국, '나'로 사는 순간들이 모여 나만의 고유성이 드러날 때, 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붙잡힌, 붙잡히고 있는 순간들의 집합체가 결국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다. 이것이 삶이 유한함에도 매 순간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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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작성하고 보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날들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느낀 점을 실천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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