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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May 22. 2018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영화 <케이크메이커>



출처: Daum 영화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베를린의 작은 카페의 파티쉐 토마스는 케이크를 굽는다. 단골도 제법 많다. 출장을 왔다가 일부러 들리는 사람도 있다. 한편 이스라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아나트는 카페에 손님이 없는데도 너무 바쁘다. 그 와중에 판매하는 음식이 코셔 음식(유대교 율법에 따라 식재료를 사용하고 조리 등의 과정에서 엄격한 절차를 거친 음식)이라는 인증을 받아야 하니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베이킹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베를린과 이스라엘, 독일인과 유대인, 과거와 현재, 남자와 여자, 이성과 감정, 도덕과 사랑. 이 영화는 이 모든 단어를 '사랑'이라는 단어로 엮어낸다.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형태가 있는 무언가 일까? 사랑에도 규율이 있을까? 사랑과 도덕성은 어떤 관계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은, 나에게 적일까 아군일까? 이영화는 관객에게 사랑에 관한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라는 거대한 질문을 남긴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견고한 의견을 가진 사람은 영화를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사라진 한 남자, 그리고 동시에 사랑을 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화에 대한 짧은 후기를 남긴다.(영화 정보 보기)





◇ 케이크를 구워드립니다

베를린 '크레덴츠 카페'의 파티쉐, 토마스 ⓒDaum 영화


빵을 굽는 장면을 보면 제법 신기하다. 베이킹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파티쉐의 손은 노련함을 담고 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단련된 파티쉐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반죽을 시작한다. 어느새 반죽을 납작하게 밀기도 하고, 돌돌 말아 작은 조각으로 잘라내기도 한다. 반죽을 포크로 콕콕 찍어 작은 구멍을 낼 때는 마치 반죽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된다. 팬에 유산지를 깔고 아기자기한 모양의 빵을 올려 오븐에 넣고 문을 닫으면 '쨍'하고 노란 불빛이 들어온다. 오븐 안을 들여다보면 납작했던 반죽이 봉긋하게 피어올라 폭신폭신한 빵이 되어간다. 달달한 빵 굽는 냄새가 이 곳까지 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베이킹 장면이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밀가루가 케이크가 되는 과정을 A부터 Z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베이킹 그 자체의 과정보다 베이킹의 역할에 주목한다. 베이킹을 통해 완성된 케이크는 사랑을 연결하는 소재로 다뤄진다. 특히,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와 시나몬 쿠키는 이와이 슌지의 영화 <러브레터>의 편지처럼 오렌, 토마스, 아나트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된다.



◇ 소리로 보는 영화

무언가를 응시하는 아나트 ⓒ 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특징은 등장인물이 직사각형의 스크린 밖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즉, 행동의 주체를 카메라에 전신으로 담지 않고 주로 사람의 얼굴을 꽉 차게 담아낸다. 표정으로 행동을 말한다고 해야 할까. 얼굴을 보고 있으면 네모난 스크린 밖에서 등장인물의 손과 발이 움직이는데, 이를 볼 수 없으니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무슨 행동을 하는지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상상력을 동원하기 위해 미세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영화는 화면 한 가득 베를린 파티쉐 토마스와 이스라엘 카페 주인 아나트의 얼굴을 담는다. 스크린 한 가득 사뭇 진지한 토마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철제 식기구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스크린 밖으로 팔을 움직이는 토마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사각사각 손에 밀가루를 묻히는 소리가 들린다. '아, 반죽을 하는구나. 파티쉐는 반죽을 할 때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 인상을 쓰는 아나트의 얼굴에는 치-익 카푸치노 우유 거품을 내는 소리가 들리며 이내 하얀 연기가 아나트의 얼굴 앞으로 피어오른다. 무슨 일이길래 이런 표정일까. 어느새 화면보다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 사랑을 굽는 영화

카페에서 파프리카를 손질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아나트와 토마스 ⓒ Daum 영화


영화에서 보여주는 화면은 잔잔하다. 그러나 그 잔잔함 속에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사랑 이야기가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사랑이 무엇일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가 마음속에 떠오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랑은 어떤 것(what)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How)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사랑은 이런 모습으로도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경, 종교, 정체성, 과거, 시선,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랑.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갈지, 감독은 8년간 자신이 고뇌했던 생각을 영화에 그려내고 있다.


어떤 것의 본질을 정의하는 순간, 그것은 기준점이 되어버린다. 즉, '사랑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 내리는 순간, '이런 것'이 아닌 사랑은 그 어떤 것도 사랑이 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사랑은 이래야지.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야지.'라고 정의 내리며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독일 전통 케이크인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 ⓒ Daum 영화


어쩌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사랑은 베이킹과 같은 것이 아닐까? 어떻게 반죽하고 구워내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맛을 내는 쿠키와 케이크처럼, 사랑도 어떤 모양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과 형태를 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지.


그러나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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