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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 치어리더 Jul 06. 2015

엘니도 이야기

필리핀의 그 섬에서 있었던 일 

동남아의 모든 곳이 두 시간 거리, 싱가폴에 살며 한때 나는 미치도록 여행을 해댔다.
비행기표가 엄청나게 싸서, 생일파티를 하겠다고 해서, 누군가가 거기에 살고 있어서, 한 번도 가본적이 없어서, 휴가가 남아서, 출장간 김에, 누군가가 표를 보내줘서 혹은 기념일이라서.
아무런 부연설명도 없이 싱가폴의 창이공항에 체크인만 해도 친구들의 코멘트와 부러움이 페이스북에 쌓였다. 실시간으로 사진을 올리거나 하지도 않았다. 일년에 몇십 번 공항에 드나드는 것을 은근히 내비치기만해도 충분했다.

그때는 잘 몰랐다- 내가 왜 여행을 하는지를, 내가 무슨 여행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여행을 해야만 하는지.

-오늘 저녁에 당장 만나자.
엘니도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나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언제나 처럼 길을 헤매었다.

비온 뒤 차가워진 상해의 거리를 3킬로미터를 걸어서 '로스트 헤븐'에 도착하자 

그녀는 촛불 사이에 보이는 불상 바로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엘니도로 옮겨가서 살고 싶어, 미쳤다고 말할거지? 나 네 목소리가 필요했어, 꿈깨라고 내 얼굴에 찬물을 끼얹을 목소리말이야
나는 그녀의 꿈꾸는 듯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주 멋진 생각이야.
그녀의 입꼬리가 양옆으로 길게 벌어졌다.
-젠장,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넌 또라이야!


중국의 춘절동안 그녀는 엄마와 함께 필리핀의 작은 섬 엘니도에서 2주를 보냈다. 최대의 연휴를 맞은 중국 관광객들과 중국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 때문에 모든 호텔이 다 꽉꽉 들어차있었고,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두 여자는 호텔들을 돌며 빈방을 찾아 다녔다. 햇볕이 내리쬐고, 해변은 아름다웠다. 방을 구하지 않으면 해변에서 밤을 지새우면 되지,라고 생각했을때, 해변가에 있는 한 호텔에서 그녀들에게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 호텔도 만실이었지만 하루에 한 방씩 손님이 빠져나가면 다른 방으로 계속 옮기면서 지내는 조건으로 두 여인을 받아주었다.


엄마와 함께여서이기도 했지만, 섬 곳곳에서 마주치는 유럽사람들에게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늘 휴양지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신 특별한 인테리어의 이 작은 호텔의 주인에게 관심이 갔다. 


그의 이름은 위코, 6대째 지역에 살고 있는 스페인 혼혈의 필리핀 남자였다. 호텔 곳곳에 걸려있는 닭의 그림에 호기심이 일어 그에게 말을 건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대단한 부자로, 필리핀 여러곳에 호텔과 땅과 집을 가졌고, 일을 돕는 사람만해도 몇십명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특히 '닭싸움 /투계 (Cock fight)'의 광팬이었다. 수탉은 본래 자신의 영역에 다른 닭이 들어오면 서로 싸움을 하는 기질이 있어 발가락 하나가 유난히 날카롭게 발달되어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 닭의 발에 날카로운 칼날을 달고 싸움을 하게 하며 거기에 돈을 건다. 몇번의 푸닥거림만으로도 닭은 치명상을 입게 되는데 싸움에서 진닭은 바로 죽임을 당한다.
위코는 투계를 통한 도박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호기심에 가득차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그녀에게 그는, 내 닭농장에 가보겠어? 하는 제안을 했고, 그녀는 두말하지 않고 위코를 따라나섰다.

위코는 3천마리의 닭을가지고 있었다. 그 자신은 닭을 먹지도 않고, 투계에 사용할 닭들은 깃털에 윤이 나도록 애지중지하며 기르고 있었다. 듣자하니, 신앙심 깊은 그 섬 사람들은 일요일에 가장 잘 차려입고 입술에는 형광분홍색 립스틱을 칠하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린 후, 투계를 보러들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신에게 회개하고 경배하는 일과, 동물을 죽이며 도박을 하는 일, 이 두 개의 극단적인 인간 행태가 이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마을의 유지가 여기 있었다.

위코의 어머니는 올해 90세가 되었다. 스페인 혼혈의 여인으로, 고고학자라고 했다. 그녀는 위코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일까 매우 궁금해서 만나볼 수 없을까 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니는 매우 바쁘셔, 두 시간은 책을 읽고, 두 시간을 피아노를 치시고, 두 시간은 치장을 하시고 그림도 그리시거든.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는데 손님을 만날 시간이 별로 없으셔, 그래도 물어보긴 할께.
다음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위코의 어머니의 점심 초대를 받았다. 필리핀으로의 휴가라고 별다른 화장품을 가져오지 않았던 모녀에게 위코는 어머니를 만날때는 한껏 치장을 해야해, 어머니도 그러실 거거든 이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모녀는 가지고 있는 화장품을 죄다 긁어 모아 한껏 화장을 하고 점심 테이블에 앉았다. 위코의 어머니는 60세라고 해도 믿을만큼의 건강하고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화려한 필리피노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위코의 어머니는 50세때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녀는 등반을 하다가 제비집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중국에서 인기 있어 미친가격에 팔리던 제비집 요리를 공급하기 위해 사람들은 필리핀에까지 손을 뻗쳤고, 제비집을 발견한 그녀는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노년의 암벽등반은 제비집만 가져다 준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명,청,송나라의 중국 사람들이 필리핀으로 오면서 가져온 보물들을 발견했다. 얼결에 유물을 발견하게 된 그녀는 역사와 유물에 대해 공부하겠다며 대학에 등록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이 고고학자가 되었다. 그것이 1960년대의 이야기다.

내 친구의 어머니는 중국의 방직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색과 디자인에 밝았던 그녀를 본 공장장이 디자인을 공부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학비를 대주었다. 그녀는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중국의 중소도시의 대학에 디자인학과와 가장 비슷한것은 회화과 뿐이었다. 그녀는 회화과에서 그림을 배우고 돌아와 더 큰 공장에서 일했고, 옆 공장에서 전기를 다루던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그녀는 작은 광고회사를 차렸다. 빨간 배경에 흰색 한자로 된 간판이 전부였던 마을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간판을 만들거나 하는 조그만 회사였다. 몇 년 후 그녀는 회사를 접고 다시 학교에 갔다. 포토샵과 그밖의 프로그램들을 배워 다시 광고 회사에 취직을 했다. 지금은 48세의 나이에 큰 회사의 PR부서를 이끌고 있는 그녀는 은퇴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 그녀는 스페인어와 영어와 따갈로그어를 완벽하게 하는 90세의 할머니앞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얼굴을 붉혔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마음으로 통했다. 어릴적 호주로 유학보낸 딸의 통역에 의지하여 그녀는 다시 50세부터 시작하는 인생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모녀는 모든 관광일정을 포기하고 매일 90세의 할머니를 찾아가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시고, 농담을 하며 웃었다. 그리고 꼭 다시 돌아오기로 약속했다.


로스트헤븐의 숨겨진 메뉴인 운남식 치즈, 바삭하게 구워진 매운 농어, 미얀마식 국수가 모두 나왔지만 우리는 음식이 차갑게 식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끝없이 이야기했고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엘니도에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엘니도에 가서 선생님이 되고 싶어, 아니면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고 싶어. 30만원이면 방세개에 해변이 바로 눈앞인 집에 살 수 있다고, 미친 생각이지?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방 하나에 200만원을 내고 사는 지금이 더 미친 상황인것 같은데.

이윽고 그녀가 음식을 먹기 시작했을때, 나는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내가 정말로 해야 할 여행은, 공항에 체크인하는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는 여행, 나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 신세계를 만나는 여행, 이제껏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방식과 만나 나를 마주하는 여행, 삶을 사는 여행이 내가 해야 할 여행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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