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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 치어리더 Jul 06. 2015

할아버지는 왜 캐머런 하일랜드에 차밭을 일구지 않으시고

캐머런 하일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표가 4불 오는 표가 0불이었다. 싱가폴에선 숨만 쉬어도 50불이 나가니까, 말레이시아에서 휴일을 보내자 싶어 덥썩 표를 샀다. 개구리는 일을 마치고 나보다 늦은 비행기로 KL에 도착하기로 했다.


개구리와의 접선은 비교적 쉬우리라, 먼저 와서 지형을 파악한 나는 그에게 문자를 보내 

'버스를 내려서 절대 택시 호객꾼에게 대답하지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을 올라와서 뒤로 오십발자국을 걸어. 그러면 로프트라는 호텔이 보일꺼야. 

나에게 전화는 하지마 로밍이니까, 터미널에는 맥시스라는 와이파이가 잡혀. 그걸로 인터넷을 써.'

개구리는 답장을 보냈다.

'너 스파이 영화 찍니?'


개구리는 내 예상과는 달리 무려 35링깃(만원) 을 주고 KLIA 익스프레스를 타고 왔다. 내 말은, 나는 10링깃(삼천삼백원) 짜리 버스터미널 기준으로 저 지령을 내린거고, 그래서 그는 오십발자국을 어디서 문워크를 해서 뒤로 가야 할 지 몰랐었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맥시스의 와이파이는 우리를 이어 주었고, 그 다음날 우리는 다시 35링깃짜리 버스에 올라 4시간을 캐머런 하일랜드로 달리게 되었다. 


나의 결정적인 실수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차를 타고 가면 멀미를 한다는 사실을 개구리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멀미가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나는 언제나 차안에서 기절 하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 하곤 하는데, 나의 동승자 개구리가 가장 고난이도의 구불한 코스에서 자꾸 내 옆구리를 찔러 나를 깨우는 것이다. 

-릴리야, 와 이 절경을 봐!

나는 성격을 드러내고 싶지 않고, 멀미를 설명하면 멀미가 날 것 같아 이를 꽉 물고 말한다.

- 응 아름답구나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하니 

-릴리야! 저기 사람들이 길가에 파는 저 저 병 뭘까?

나는 다시 이를 앙다물고 

-글쎄 나도 모르겠어, 휘발유가 아닐까? (후에 이것은 이지역 특산 꿀로 밝혀졌다)

다시 옆구리가 찔리며 

-릴리...

우웩!!! 하는 나의 거짓 멀미 소리에 그의 눈이 소만큼 커졌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나를 찌르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린 그는 아직도 나의 멀미 시위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고, 나는 배가 고팠다.  시골 터미널 같은 카메론의 신작로 읍내를 바라보며 밥을 먹고 있는데 옆테이블의 공주같은 금발여자가 테이블 아래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있다. 

'가, 가란말야!' 그녀는 훠이훠이 하며 테이블 아래의 고양이를 무려 내 쪽으로 쫒아보내고 있었다. 

이 여자가... 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개구리는 친절하게 그 여자에게 말을 붙였다. 

-안녕? 저기 혹시 여기 온지 오래 되었나요? 우리 여기 도착한지 10분 되었는데 뭐 재미있는거 있으면 알려줘요.

더러운 첫인상과는 달리 그녀는 갑자기 생긋 웃으며 

- 아 우리도 어젯 밤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안했는데.. 여긴 아무거나 먹어도 다 맛있더라구요. 그리고 이따가 스모크하우스 에 애프터눈 티를 마시러 가려고요. 그게... 여기 온 사람들이 다들 하는거예요. 

라고 말했다. 스모크하우스라면 캐머런에서 가장 비싼 호텔이구나. 거기가면 캐머런 출신 말고 다른 온 나라 사람들을 다 보겠군, 벌써 부터 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녀는 결정적으로 읍내 여행사들은 바가지를 씌우니 호텔을 통해 여행을 예약하라는 귀중한 정보를 전해주었다. 


우리를 신작로에서 호텔까지 데려다주는 택시는 10링깃이었고, 놀랍게도 대다수의 싱가폴 사람들보다 훨씬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는 인도계 기사님이 우리를 약 7분간 운전해주셨다. 시골마을에서 늘 그렇듯이 택시는 낮에는 10, 저녁엔 15로 암묵적으로 합의 되어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캐머런 하일랜드의 10가지의 절경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와, 그럼 이틀도 모자라겠네요? 라고 했더니 그는  4시간이면 구경은 모두 끝난다고 했다.


 

우리의 숙소인 카사 디라로사 호텔 은 카메론의 호텔들 사진을 보고 엄선한 무려 하룻밤에 8만원의 고급(?) 호텔이었다. 너무 비싼 거 아니냐는 개구리에게, 야! 나 숨쉬면서 자고 싶어. 라며 우겨서 도달한 곳. 스탠다드 룸을 예약하였는데 도착하니 방안에 방이 하나 더 딸려있었다. 이게 아닌데? 라고 업그레이드 받았나? 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게 스탠다드 룸이었던 거다. 원플러스원인가? 어쨌든, 방을 하나 더 얻은 기쁨.  

그리고 우리는 5분만에 방에서 나와서 탐험을 시작했다. 


그 금발녀의 말이 맞았다.
택시 아저씨는 인심쓰듯이 4시간동안 택시로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기다려주고 하는데 60링깃 밖에 안한다고 엄청 싼거라고 하셨는데, 호텔에서 연결해준 반나절투어의 가격은 일인당 25링깃 (8천원)밖에 안했다. 분명 커미션있을꺼야 라고 의심했지만 그런건 커녕 그 흔한 쇼핑몰 뺑이 돌리기도 없었다. 뭐, 쇼핑몰이 없다.

목소리 좋은 인도계 아저씨의 봉고차에는 스페인에서 온 둘, 인도에서 온 둘, 싱가폴에서의 둘,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나와 개구리 이렇게 여덟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잊고 있던 발렌타인데이. 가이드 아저씨가 강조 안했으면 몰랐을 2/14.

아저씨는 발렌타인이니까 나비농장, 발렌타인이니까 로즈가든,발렌타인이니까 꿀벌 농장...하면서 부지런히 우리를 몰고 다니셨다. 

홍차밭으로 향하며, 그는 말레이시아 최고 차브랜드 BOH티의 탄생에 대해서 쇼킹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 보는 말레이시아것이 아니라는. 


BOH는 J.A. 러셀 이라는 스코틀랜드 남자가 만들었죠. 차나무는 한 번 심으면 120에서 150년 수확할 수 있구요. 저기 저 성 보이나요? 응 거기 그 광활한 차 밭 한가운데 저기 성. 저기가 차 밭 관리인 집이요. 지금 3대째 손녀가 이 차밭에서 나는 홍차로 먹고 살죠.

보 차 공장 테라스 


할아버지.. 왜 봉동에 쌀농사를 하셨나요...캐머런 하일랜드 홍차밭을 일구셨으면 새로 안심고도 150년 인데...

라며 잠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추억 하는 사이에 
가이드 아저씨는 

1킬로의 차를 따면 20원을 받아요, 아주 숙련된 일꾼이 하루에 1000킬로를 따죠. 라고 하신다.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할아버지, 그냥 홍차밭은 잊어요 우리. 봉동에서 난 쌀로 지은 쌀밥에 감사하겠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차밭에 차를 따는 일꾼 두 명이 도구로 찻 잎을 솎아 내어 등에 진 소쿠리에 잎을 넣는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언덕에 세워진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스콘을 먹는다. 

개구리는 차 관리자 성에서 살고 싶다며, 와이파이만 있으면 여기와서 살고 싶다고 계속 안테나를 찾아댄다. 


인도인 커플은 한 번도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매번 아저씨가 찾아가서 잡아올 때까지 봉고차에 탑승하지 않고 사진을 오만장 찍고 여유있게 놀고 있었다. 인도 사람들에게는 시간 관념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저녁식사에 8시에 초대했는데 8시에 가면 무례한거라고 했다. 10시쯤 밥을 먹기 시작할 수 있다고. 


나는 오지 않는 인도인 커플을 봉고차에서 기다리며, 잘생긴 스페인 커플의 남자를 훔쳐보며, 아직도 안테나를 찾는 (?) 개구리에게 다 좋은데 난 여기서 5일이상은 못살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개구리는 

야 네가 좋아 죽고 못사는 딸기가 있잖아! 라고 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딸기 농장으로 향하며 나는 벅찬 가슴을 진정시켰다. 내 사랑 딸기.  엄청 많이 먹어주겠어. 

그러나 내 손으로 따서 바구니에 담아 씻지도 않고 먹어본  딸기는... 엄청 셨다.  딸기는 역시 한국의 육보딸기... 동남아는 역시 망고와 두리안,흑.


30 링깃(만원)을 내면  500g을 수확하게 해주는 딸기 농장에서 나는 방글라데시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딸기 농장에서 일하시는데 가위로 딸기 꼭지를 따는 나를 따라다니며, 큰 딸기를 알려주시고, 가끔씩은 딸기를 따서 몰래 얼른 삼키라며 내 손에 쥐어주기도 하셨다.  개구리는 싱가포리언 답게, 벌써 이 아저씨가 방글라데시에서 왔고 이 딸기 농장에서 13년 일하셨으며 월급은 45만원이라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아마 그 돈으로 방글라데시에 있는 가족들은 모두 다 잘 지내고 있을 꺼라고. 


딸기와 함께 맘에 드는 사진을 여러장 찍어주셔서 5링깃 팁을 드리니 한사코 마다하신다. 그냥 즐겁게 따라고 찍어준거지 돈 바라고 찍어준게 아니라고 하시면서. 

동남아 여행을 다니면서, 응당 관광객들에게 더 비싸게 받아야 한다거나, 심지어는 그냥 돈을 무작정 바라는 경우도 많이 보았는데, 진심으로 도와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맛있는 딸기 밀크쉐이크를 마시면서 아저씨의 선한 미소를 다시 떠올린다. 


개구리는 다시 안테나를 찾고 있다. 넌 그냥 싱가폴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거라 그냥...


스모크 하우스의 애프터눈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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