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배우는 감독이 '레디... 액션!' 하면 연기를 시작한다. 연기하는 배우는 '레디'상태여야 한다는 말이다. 수년간 내가 옆에서 지켜본 바로, 그가 '레디'상태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나서 사랑에 빠졌던 때부터 오만정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는 계속 오디션을 준비하는 배우 지망생이었다. 그의 30대 대부분이 준비만 하다가 끝난 셈이다.
20대에는 내내 연출을 준비했다. 서른이 되고서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뒤로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일반적인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연기 연습을 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고, 오디션을 자유롭게 보러 다닐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다 떠나서라도 경력 없이 나이 많은 그를 뽑아주는 회사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다고 그가 밥벌이를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이십 대 때 배운 촬영기술을 가지고 프리랜서로 촬영도 하고, 소품팀에서 망치질을 하며 가구도 날랐다. 어쩔 때는 중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연기수업을 통한 자신감 향상 프로그램' 따위의 일을 하기도 했다.
연기 준비를 위한 밥벌이는 점점 나잇값을 위한 밥벌이로 변했다. 단기로 일을 받아도 그 기간 동안은 어떤 오디션 준비도 하지 못하며 돈을 벌었고,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을 찾느라 오디션 준비는 뒷전이었다. 돈을 벌러 다닐 때 그는 언제나 조직과 세상에 대해 불만족하며 욕을 해댔다.
억지로 일하고 번 돈으로 몇 달 연기학원을 다니고, 작은 극단에 들어가 무대에 선 적도 있었다. 그때도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유명한 감독의 영화 오디션에는 프로필 한번 내지 못했고, 독립영화에서 조차 배역을 받지 못했다.
내가 그를 믿고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서, 오디션 준비를 재촉하거나 채근하는 말에 그는 언제나 큰 상처를 받곤 했다. 나는 그저 배우 지망생도 배우와 같은 예민함과 감수성을 가졌다고 이해했다.
그는 완벽주의자처럼 보였고, 완벽해질 때까지 준비하느라 세월을 다 써버린 인간처럼 보였다. 준비가 덜 되더라도 오디션이라는 것은 그냥 내지를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라면 다를 텐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다시 돌이켜보면 우리 둘 다 준비 중인 인생이라는 점에서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 나의 부끄러운 준비과정과 포기를 나열하자면 꽤나 길다. HSK를 따겠다고 중국어 수업을 듣다가 숙제도 제대로 안 하고 포기한 적이 있다. 한국사 시험을 신청해놓고 근현대사부터 공부를 포기했고, 관광통역사 자격증을 준비한다고 벽돌 같은 책을 사놓고는 절반도 공부하지 않았다. 관세사 시험 준비도 했었는데, 그건 그나마 절반 이상 공부하다가 아직까지 중단상태이다. 그리고 이제는 작가 지망생으로서 소설 공모전도 기웃거리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 인생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하지만 여전히 준비 안된 상태에 머물렀다.
그러니까 '마음을 먹었으면 노력을 해야지!'라며 그에게 엄격한 잣대로 훈계를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정말 참기 어려웠던 것은 그의 끊임없는 준비기간보다도 그 준비기간 동안 망가지는 그의 마음이었다.
나는 그와 헤어지면서도 그의 평안을 바랐다. 준비와 실패, 포기를 반복하면서 나중에는 그가 오디션에 합격하는 것보다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일산에 있는 허름한 술집에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술집으로 향하는 골목 바닥에는 담배 자국이 잔뜩 있고 흡연자들이 한두 명 나와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파전이나 골뱅이 같은 안주와 막걸리를 파는 술집이었는데, 특이하게 라이브 공연을 한다는 안내말이 적혀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술과 안주를 시키자, 얼마 안 있다가 통기타를 든 중년의 아저씨가 술집으로 들어왔다. 그 아저씨는 백발의 긴 머리를 뒤로 묶고 나이에 안 맞는 프린팅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서울의 유명 라이브 카페도 아니고 수도권의 변두리 술집에 연주를 하러 온 그 아저씨의 노래를 들으며 그는 그 아저씨의 젊은 날을 상상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입술을 떨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그에게 왜 우는지 묻지 않았다. 내 추측이 맞을 것 같았기 때문에 더욱 묻고 싶지 않았다. 만년 배우 지망생인 그가 자신의 말년을 생각하며 느끼는 불안감과 자기혐오를 나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실패하면 반성해야겠지만, 마음이 조급할 때는 반성을 넘어서 심하게 자책하기가 더 쉬워진다. 하지만 굳은 의지로 노력하고 성공했던 위인들이 머릿속에 쉽게 떠오른다고 해서, 그들이 이 세상에 깔리고 널린 것은 전혀 아니다. 성공도 어렵고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든가, 아니면 자기혐오를 멈추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만 한다.
그의 소식을 듣지 못한 지 3년이 지났고, 여전히 방송을 통해서도 그를 만날 수는 없다. 그래도 이제는 그가 항우울제 없이 잘살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술을 마시며 뜬금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일없이 행복하기를, 언젠가 영화 속에서 정말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