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별이 '차악'이었다.
썸을 타다가 끝나면 참 찝찝한 기분이 든다. 물론 사귀다가 이별하면 찝찝한 수준을 넘어서 높은 확률로 우울하고 어쩔 땐 며칠간 오열을 하기도 한다. 슬픔의 시간과 강도를 생각하면 썸 이별이 이별보다 몇 배는 더 낫다. 또 한편으로는 제대로 연애도 못하고 끝나버리는 썸 관계는 아쉽기도 하고 가끔 슬플 정도로 애처롭다.
그러나 뭐가 낫고 말고는 그냥 결과론적인 합리화일 뿐이 아닌가? 덜 슬프기 위해, 어쩌면 덜 구질구질해 보이기 위해.
예전에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썸도 타던 남자가 사귀자는 얘기를 하지 않고 어영부영 대충 넘어가려는 꼴을 본 적이 있다. '아 이 새끼 쓰레긴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가 좋아서 마음을 접지 못했다. 상냥한 얼굴로 뭐가 문제냐고 물으니, '자유로운 연애를 하겠다는 건 전혀 아니고 (아닌지 어쩐지 모를 일이었지만) 사실 헤어지는 것이 두렵다'는 바보 같은 소리를 해댔다.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헤어지자는 말로 괴로워할 필요 없다는 말이었다. 인간의 많은 부분이 언어에 의해 지배당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바보 같은 말장난은 이제까지 들어본 적도 없다.
관계의 시작을 명확히 하지 않고 (연애와 다를 바 없는 관계로) 지내다가 끝나면 더 나은 점이 무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의 경우는 오히려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끝났다'는 허무함보다는, '해봤는데도 안됐다'는 미련 없는 감정이 더 낫지 싶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그에게 친절하게 전달하고, 거의 멱살을 잡아서 출발선에 세우고는 연애를 시작했다. 겁쟁이는 한동안 겁 없이 사랑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헤어질 때도 겁을 먹고 한참 동안 내 연락을 피했다. (으휴 잠수 이별하는 쓰레기) 그때 한번 더 멱살을 잡고서 행복하라고, 좋은 사람 만나라고, 관계의 마침표를 찍은 것도 나였다. 엎드려 절 받듯이 나도 그의 덕담을 들으며 이별했다.
마무리 멘트를 하며 돌아보니 만나는 동안 행복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좀 아프기는 하지만 미련 없이 헤어졌으니 그걸로 됐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그와 '해봤는데도 안됐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 '사귀자'는 말을 회피하는 놈은 믿고 거른다.)
그 뒤로 몇 달 후, 3주간 매일 연락을 하며 주말마다 데이트를 하던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당산의 어느 술집에서 처음 만나서 그와 나는 마주 보며 맥주를 마셨다. 그가 내 눈치를 보며 '저 어때요?'라고 묻기에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좋은 분 같아요~라고 대충 대답해도 될 것을, 그때는 뭐가 어떠냐는 거야.. 라며 왠지 대답하기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헤어지기 아쉽다며 좀 걷자기에 버스 한정거장만큼의 밤길을 함께 걸었다. 그는 걷다가도 나와 눈을 마주치며 '근데 저 어때요?'하고 물었다. 마치 우리의 관계는 내 대답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평일에 항상 바빴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나는 직장인들과 달리 저녁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프리랜서지만 그가 만나자고 했다면 기꺼이 평일에도 시간을 내서 그를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평일에 보잔 얘기는 없었다. 언제 볼지 미리 계획하거나 적극적으로 묻지 않길래 그냥 그가 그런 스타일이겠거니 생각했다.
이제 곧 사귀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낙관하던 어느 금요일 밤, 어쩐지 그의 연락이 뜸하고 촉이 좋지 않았다. 나는 어떤 직감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고 토요일 아침에 그에게 우리 관계에 대한 문자를 남겼다. 그는 자주 만나지 못해서 관계 발전이 없는 것 같다며, "네가 너무 바빠서 일주일에 한 번 주말 하루만 만나다 보니, 네가 좋은 사람인 걸 알지만 감정이 말라버렸다"하고 답장을 보내왔다. 마지막으로 애매한 태도가 미안했다며 사과를 하고는 나의 행복을 빌어주며 작별인사를 했다. 썸 이별을 한 것이다.
그럼 지가 좀 만나자고 하지... 참 웃기는 말이었다. 나를 자주 보고 싶은데 자주 볼 수 없으니 그만 보자는 말. 납득하기는 어려웠지만, 구태여 그 속뜻을 알아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말하지 못하는 나의 하자를 3주 만에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와 만나기로 했던 일요일, 틴더로 다른 남자를 만나서 냉면을 먹었다. 교대에 있는 무척 유명한 냉면집이었는데, 나는 그날 처음으로 평양냉면을 먹어봤다. 역시 소문대로 밍밍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맛이었다. 나는 밍밍하게 끝나버린 나와 그의 사이를 떠올리며 그냥 그런대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 오랜 시간을 낭비하고 손절했다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을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평일에도 시간을 내어 그를 더 자주 봤다면??? 하고 물음표를 백개쯤 떠올려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평양냉면도, 함께 냉면을 먹은 남자도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인생에 수많은 이별을 계획해 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계획에 없던 숱한 이별을 하면서도, '더 이상 이별하지 않는 법'따위는 터득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제 논에 물 대듯 나에게 유리한 해석을 하며 합리화에만 능한 사람이 됐다. 차라리 잘됐다고 콧방귀를 뀌거나 망친 연애를 자랑하듯 희화화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
따라서 내 모든 이별은 최악을 피했던 차악이었다. 나는 아직 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행복하다. 합리화를 해서 행복한 것인지, 행복해서 합리화가 가능한 것인지 따지지는 말기로 하자. 썸 타다 차이는 게 나은지 사귀다가 차이는 게 나은지 따질 필요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