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한 Jul 14. 2022

건강검진, 어쩌면 안심을 돈 주고 사는 일

첫 내시경 체험기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았다. 머지않은 미래로 그려진 영화 속, 사람들이 불멸을 위해 인공장기를 기다리는 장면이었던가? 아니면 클론이 인간에게 장기가 팔려나가는지도 모르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장면이었던가? 이름과 생년월일이 확인되자, 나는 여러 번 세탁으로 흐릿해진 줄무늬 옷을 위아래로 지급받았다. 동그란 스툴이 여러 개 놓인 중앙 공간을 둘러싸고 벽 쪽에는 내부로 들어가는 접수대가 있었다. 접수대 위에는 숫자들이 큼지막하게 적혀있고, 나와 같은 옷을 헐겁게 입은 사람들이 손에 종이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숫자에서 숫자로 이동했다. 헐렁한 옷 덕분인지 다소 굼떠 보이는 환자복들과 대조적으로 단정한 간호복들은 말과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들이 휴머노이드 같다는 상상을 하는 동안, 나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순식간에 다섯 가지의 검사를 끝냈다. 주로 차가운 기계를 몸에 대는 검사였다. 몇 가지를 했는지 세는 것을 까먹었을 때쯤, 이제 기계를 몸에 넣는 검사만이 남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검진 중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검진 일주일 전부터 대장을 비우는 약이 집에 도착했다. 검진 3일 전부터는 검은 깨나 고춧가루가 있는 음식도 먹지 말라는 메시지를 네 번이나 받았다.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참고 참다가 김치를 두어 번 주워 먹었다. 7시에 흰 죽을 먹으라고 했지만, 반찬 없이 먹는 게 더 고역이라 먹지 않았다. 레몬향이 나지만 메스꺼운 물약을 8시부터 15분 간격으로 250ml씩 벌컥벌컥 마셨다. 한 시간이 지나자 약이 제 역할을 하며 배가 아파왔다. 새벽 4시에도 배가 아파서 깼고, 6시에 마지막으로 대장에 내려온 것들을 배출하느라 500ml의 물약을 들이켰다. 지하철을 타기 전과 내리고 나서 화장실에 갔고, 검진센터에 도착해서도 눈으로는 화장실부터 찾았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지인들에게 들었던 무시무시했던 경험담과는 달리 꽤나 할만한 것이었다. 유방검사에 대한 것도 그랬다. 가슴을 한쪽씩 위아래와 좌우로 짓눌러서 총 4번의 압박을 참아야 하는데, 그것이 무척 고통스러웠다는 지인들의 설명과 달리 고통을 짧고 참을만했다. 자궁경부암 검사도 비슷하다. 갑자기 쑥 들어오는 기계는 차갑고 익숙해질 수 없는 불쾌함을 주지만, 그 또한 순식간에 지나간다. 진짜 무서운 것은 명확한 고통이나 불쾌감이 아니었다. 진짜 무서운 것은 드러나기보다는 발견될 때까지 숨어있는, 그래서 사람을 곱절은 더 놀라게 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서른다섯이 넘으면서 소화가 힘든 날이 늘었다. 술과 안주를 잔뜩 먹고 토한 날들을 생각하면 탈이 안 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반성은 주로 맨 정신일 때만 했고, 주말권 목요일을 포함해서 주 4일 밤마다 맨 정신인 날은 별로 없었다. 속이 쓰린 위염이나 목이 타는 식도염 증상은 만성이 되어가는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몸속에서 이름도 어려운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섬뜩한 소식을 두어 명의 친구들로부터 들었다. 그때 살면서 처음으로 내시경을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아예 내친김에 가장 고가의 건강검진을 신청했다. 술 사 먹는데만 쉽게 열리던 지갑에서, 30만 원이라는 전례 없는 거금이 내 건강을 위해 쓰이게 되는 것이다. 검진이 다가오면서 불안은 조금씩 더 늘었다. '혹시 나도 몰랐던 병이 발견되는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입에 담기도 무서운 그것?' 하는 생각이 건강검진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 위 내시경을 하면 곧 내가 저지른 죄명들이 줄줄이 검진 결과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수면 내시경에 앞서 정맥에 바늘을 꽂았다. 채혈을 하고 마취주사를 놓기 위해서였다. 오른팔에 꽂힌 바늘에서 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는 당황을 하며 혈관은 상태가 좋은데 피가 안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바늘을 한번 더 넣었고, 팔을 바꿔서 두 번 더 시도했다. 그러는 동안 피가 나오기는 했는데 충분치 않은 모양이었다. 끝나지 않는 채혈 때문에 속이 좋지 않았다. 머리로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서 눈앞이 까매졌다. '저 어지러운데요?'라고 말하며, 나는 드러누워버렸다. 눈을 감지 말라는 간호사의 말에 열심히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침대에 실려가며 나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피를 뽑던 간호사가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문제는 간호사가 아니라 내 힘없는 혈압이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 누워서는 피가 뽑혔다. 상태 좋은 혈관으로 들어간 마취제도 제 역할을 했다. 예상대로 고통 없는 시간이었다.


용종을 떼어냈다고 했다. 변비도 없고 대장 쪽은 자신 있었는데 의외의 소식이었다. 대장 내시경을 하면서 용종을 떼어내는  더러 있는 일이라고 간호사가 설명했다.  제거되었다고 하기에 안심을 했지만, 역시 통증 없이 자리 잡은 질병이 가장 무섭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용종 설명이 끝나자마자 나는 가장 걱정됐던 위에 대해 물었다. 검진 결과는 2 후에 정확히 나오겠지만 그간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것은  다른 고통이었다. 흔한 위염증세가 있지만 무언가 발견된 것은 없다고 했다. 이어서 용종 제거 비용에 대해 설명했다.  비용 얼마였더라?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금액에 상관없이 나는 흔쾌히 그것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불안을 제거하는데 그까짓 십만   내는  대수인가..


젊음을 과신하고 안심하는 주말이 이어졌다. 술을 또 위장에 들이붓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철분제와 헤모글로빈을 사놓았노라고. 피를 뽑다가 정신이 혼미했다는 얘기가 엄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이다. 별것도 아닌걸 엄마에게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다시 내 방문을 열고 엄마가 들어왔다. 영양제 사는데 20만 원이 들었으니 유통기한 지켜서 잘 먹으라는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방치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엄마에게 왜 시키지도 않은 걸 해서 20만 원을 썼냐고 화를 냈다. 안심을 사고 나니 건강에 쓰는 돈이 다시 아까워진 것이다. 필요하면 내가 알아서 사 먹겠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엄마의 걱정이 과해질까 봐, 못돼 처먹은 나는 걱정을 짜증으로 받아낸다.


출근길에 가방을 열자 엄마가 챙겨준 헤모글로빈의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자식이 아픈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내가 건강검진을 예약하며 느꼈던 두려움에 버금갈까? 내 건강을 소홀히 생각했다고 엄마가 사과하는 것이 생경하면서도 익숙하고, 오묘하면서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엄마도 안심을 20만 원 주고 사려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의 안심을 위해 영양제 두 알을 물과 함께 삼켰다. 유통기한 지켜서 잘 먹어봐야지. 술이랑 커피도 좀 줄이고. 엄마한테 짜증 좀 그만 부리고. 우리가 안심하려면 역시 내가 잘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