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한 Jun 23. 2022

고등동창 모임, 나만 없어 명품백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게 다르다고?

이번엔 진짜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이번엔. 지난달에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넷이서 점심을 먹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루이비통과 프라다가 도착했고, 조금 늦게 구찌가 유모차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나타났다. 구찌 친구가 루이비통을 보고서 알은체를 했다. 자기도 갖고 싶었던 디자인이라며,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어디서 샀냐며, 백 앞부분에 달린 큼지막한 로고를 부러운 듯 매만졌다. 찾아본 적 없어서 갖고 싶었던 적이 없고, 구하려고 하지 않아서 어려운 줄 모르는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명품백들과의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 어깨에는 3년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5만 원에 샀던 레자 가방이 걸려있었다.


사실 그 명품백들과의 회동이 내 마음에 불을 당긴것은 아니었다. 나와 달리 그들이 값비싼 가방을 종종 연간 이벤트로 사모은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나만 명품백 없는 상황이 처음인 것도 충격인 것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이번엔'이라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그날 받은 택배 때문이었다. sns에서 발견한 쇼핑몰 광고에는 인기 브랜드 가방을 초특가에 판매한다고 적혀있었다. 무려 "하나 가격에 두 개!!"라고.. 그래서 열심히 스크롤을 올리고 내리면서 실용성을 따져가며 신중하게 두 개를 골랐었다. 작고 앙증맞은 캥거루가 그려져 있는 저가 브랜드의 가방이었다. 해외배송이지만 이 가격에 두 개라면 한 달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간 매고 다닐 가방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택배는 생각보다 빨리 왔지만, 가방은 생각지 못한 것이 배송되었다. 정말 이렇게 거지 같은 짭퉁은 처음이었다. (영국이 아니라 중국에서 오느라 빨리 왔구나.) 이 조잡한 가방이 무려  .. 혹시나 싶어  볼품없는 가방들을 어깨에 메고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살펴보았지만,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방바닥에 힘껏 집어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저렴한 브랜드도 가품을 만들다니. 집에 있던 같은 브랜드의 캥거루와 비교해보자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틀림없는 짭퉁,  말도  되는 가방과  시간 전에 만났던 친구들의 명품백은 완벽한 대조를 이루었다.  극단적인 대조 덕분인지, 짭퉁 가방에 대한 분노는 초라함과 비참함으로 쓸데없이 확장되어갔다. 그리고 이번엔 진짜 나도 명품백 하나 사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것이다.


다음날 출근길 지하철에서부터 명품백 검색을 시작했다. 흔히 들어본 명품백들은 모두 백만 원을 쉽게 넘었다. 300만 원을 넘는데도 겨우 손바닥만 한 앙증맞은 크기의 백도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샤넬백이었는데, 800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들도 있었다. 그것들을 검색해본 뒤로 지하철에 흔히 보이는 명품백의 주인들은 모두 다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어떻게 몇백을 주고 백을 사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걸까? 그것들이 놀랍고 충격적이라는 것은 아직 명품백을 살 마음의 준비가(사실 금전적인 준비도) 안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이번에도 하나 사지 못하고 마음을 접었다. 그렇다면 이 글이 사치나 허세를 부리지 않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냐고? 전혀.


뜬금없지만 나는 5만 원짜리 보세 가방을 하나 샀고, 명품백을 사볼까 했던 200만 원으로 피부과 시술을 받았다. 여자만 반응하는 명품백보다는 남녀 모두가 반응하는 뽀얀 피부에 투자한 것이다. 루이뷔통 친구는 피부과에 그렇게 쓸 돈이 없다고 했고, 구찌 친구는 애 키우느라 피부과에 갈 시간도 없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우리는 정말 가치를 높게 두는 것이 다르구나? 나는 단톡방에 명품백을 포기하며 대신 받게 될 피부과 시술을 줄줄이 읊었다. 자기 위안이고 자랑이었다. 정말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고? 아니 나도 똑같은데?


명품백을 사고자하는 마음과 피부과에 갔다고 자랑하는 그 마음은 일맥상통하다. '사람마다 원하는게 달라서  나는 명품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하는 말은, '내가 돈이 없냐? 관심이 없지?'라고 강조의 강조를 하며 너절하게 변명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쩔땐 자꾸만 돈으로 내 가치를 보여주는 편이 제일 빠르고 쉽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나는 승진할 일이 없는 프리랜서라서, 남들이 팀장급을 다는 시기에 꼭 고급 세단을 타서 셀프 승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가진 것으로, 돈벌이로, 내 가치는 결정되는 것이니까. 볼품없는 짭퉁 가방에 볼품없는 내 가치를 투영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언제 또 '이번엔' 진짜 하나 사야겠다고 주먹을 쥐게 될지 모를 노릇이다. 내 가치를 보여주는 빠른(결제는 빠르고 할부는 길겠지만) 방법을 찾을 때마다 명품백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때 그 방법에 잘 맞게 돈벌이가 잘 따라와 주어야 할 텐데. 피부과는 더더욱 포기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